널뛰기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해석과 전설이 따르고있다. 18세기에 생존했던 류득공은 "경도잡지"에서 널뛰기의 유래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있다. "항간의 부녀들이 흰 널판을 짚단우에 가로 걸쳐놓고 량쪽끝에 갈라 서서 급히 굴러서 몇자쯤 뛰여올라간다. 그때 몸에 찬 옥소리가 쟁그렁쟁그렁울리고 지쳐 그만두는것으로 락을 삼는다.‘그곳 부녀들이 널우에서 춤추는데 이것을 판무라 한다’고 했다. 이것과 비슷하나 리조초에 류구의 사신이 입조할 때 도리여 그것을 사모해서 본받은것인지?" 어떤 학자들은 이런 문헌기록에 근거하여 류구의 한회는 독자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것이 고려시대에 류구로 건너간것이라고 추측하고있다. 또 어떤 학자들은 널뛰기가 말타기나 격구의 영향하에서 생긴것이라고 보고있다. 그리고 민간의 전설에 의하면 봉건사회의 도덕적구속으로 인하여 밖에도 마음대로 나들수 없었던 우리 녀성들이 담장곁에 널을 놓고 뛰여오름으로써 밖을 내다보려는 마음에서, 또한 한 녀성이 봉건관료들에 의해 옥에 갇힌 남편을 걱정하여 높은 담장을 넘겨다보기 위해서 생각해낸것이라는 말도 있는것으로 보아 자세한 것은 알수 없으나 널뛰기가 매우 오래전부터 있었다는 것을 알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