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네뛰기는 리조시기에 들어서면서부터 더욱 성행하여 전민적인 놀이로 발전되였다. 이 시기에 이르러 그네뛰기는 단순한 오락일뿐아니라 일정한 기준을 정하고 높이 뛰여오르기를 다투는 경기적인 성격을 띤 놀이로 되였다. "성종실록"에 의하면 15세기에 서울인민들은 단오가 되면 서울 한복판 종로 네거리 뒤골목에 화려하게 그네터를 설치하고 서울시내를 남북 두패로 나누어 내기를 하였는데 그런 때에는 서울안의 부녀자들이 모여들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또한 15세기의 시인 성현이 지은 시에 의하면 벌써 15세기에 경기에서 그네가 솟아올라가는 높이를 측정하기 위하여 그네줄앞에 높게 방울줄을 다는 방법이 있었다.
조선민족 녀성들의 전신운동에 유익하고 민족적특성이 농후한 그네뛰기는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자기의 생명력을 과시하였고 지금도 인민들속에서 성행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