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중국침략시기, 일제는 길림 료원탄광을 강점했으며 8만명 로동자들의 생명으로 침략전쟁의 석탄자원을 바꾸었다. 지금까지 보존된 료원광부묘지는 동북지역에서 가장 큰 광부묘지이다.
“그때 서안(료원)탄광은 하나의 거대한 감옥이였다.” 86세의 손원신은 70여년전 일본침략의 지난 일을 회상하면서 지금까지도 본능적인 공포를 느끼고있다.
“일본침략시기, 이곳에서 죽은 중국동포가 약 8만여명이 된다.” 료원광부묘지 진렬관 문물관리원 리굉영은 현재 료원광부묘지에 보존된 많은 유적들은 중국동포의 고난의 력사를 증명해준다고 말했다.
모집, 체포, 협박, 기만… 14년의 식민통치에서 현지에서뿐만아니라 일본식민자들은 하남, 하북, 산동, 산서에서 각종 방식으로 대량의 로동자를 잡아 료원탄광에 압송해왔는데 그때로부터 이런 로동자들은 지옥속에서 살아야 했다.
어떤 로동자는 굶어죽고 어떤 로동자는 병으로 죽었다. 일본침략자와 매국노들은 시신을 운반하여 단체적으로 산에 매장했는데 지금까지 관련 부문에서는 이미 중국광부의 유골을 잔뜩 쌓아놓은 6개의 만인갱을 발굴해냈다. “방가분(方家坟)”이라는 산골짜기는 단지 1년 8개월만에 유골로 가득 채워졌다. “일본인은 또 서파에서 ‘련인로(炼人炉)’를 지었으며 수천수만의 시신을 넣어 태워버렸다. 심지어 숨이 아직 붙어있는 사람들도 함께 넣어 태워버렸다.” 생존자 마금방의 말에 의하면 그 시기 련인로는 밤낮으로 검은 연기가 피여올랐으며 지금까지도 유적에서 한자 두께의 골회와 초토를 볼수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