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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음문화칼럼90] "우리", 가족과 우리네 삶

리화

2017년 12월 04일 14:17【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정음칼럼에 내는 글은 우리 민족을 주제로 다루어야 바람직할거라는 나름대로의 강박감때문일가. 필자의 글 제목마다 따라붙는 "우리"라는 대명사. 어찌 보면 인젠 질릴 법만도 한데 이번 글 또한 례외없이 일단은 "우리"부터 자동입력 해놓고서야 안심하고 다시 주제 선정에 고심하는 자신이 우습기도 하고 묘하게 납득이 가기도 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우리네 삶 속에서 차지하는 "우리"의 비중과 그 의미에 대해 새삼스레 생각해본다.

주지하다싶이 인간과 자연, 초자연(超自然) 그리고 인간 간의 관계성은 인류가 생존하고 진화하는 과정에서 피해갈 수 없는 가장 보편적이고 중요한 관계들이다. 다만 문화가 부동함에 따라 상기 세 종류의 관계에 대한 중시도(重视度) 역시 차이를 보이는바 우리 민족을 포함한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문화권의 경우 래세(来世)보다는 현세(现世)에 집착하는 경향이 짙다. 그 일례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종교활동이나 조상숭배 즉 조상에 대한 제사 등 초자연과의 교섭행위 역시 그 어떤 사후초월(死后超越)보다는 그러한 초자연적인 힘을 빌려서 현실의 세속적인 삶을 무난하게 영위해나가려는 공리성이 다분히 실려있다는 사실을 들수 있다.

이렇듯 현세 및 현실 속의 인간관계를 중요시하는 문화적정서안에서 우리는 주위 사람들을 대체적으로 "우리"와 "남"이라는, 어찌 보면 그 경계가 지극히 애매모호한 두개의 집합으로 구분 짓는다. 즉 사람과 사람 사이에 물리적으로는 정확하게 잴수 없는 친밀성의 거리 내지는 마음의 울타리를 만들어놓고 때로는 고집스레 때로는 유연하게 "우리"가 "남"이 됐다가 "남"이 "우리"가 되기도 하는 변덕스런 과정들을 거듭한다. 동시에 이러한 밀당을 통하여 인간들 사이의 간격을 쉼 없이 조절함으로써 "우리"에 소속됨으로 얻는 심리적 안정감과 관계성의 욕구를 충족시켜왔다.

사전적인 해석에 따르면 "우리"란 자기와 함께, 자기와 관련되는 여러 사람을 다 같이 가리킬 때, 또는 자기나 자기편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라 한다. 그렇다 할 때 반대어로서의 "남"은 자기와 따로, 자기와 관련 없는, 자기편이 아닌 사람들을 칭하는 말이리라. 때문에 "우리"는 소중한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내편"-"우리"속에서도 굳이 꼭 우선순위를 매기라고 한다면 당연히, 두말할것도 없이 가족을 꼽는 사람들이 대부분일것이다.

가족, 말만 들어도 촉촉하게 스며오는 따뜻함, 편안함과 든든함. 인간은 가족속에서 생명의 탄생을 고하고 또 살아있는 동안 다양한 가족을 만들기도, 만나기도 하다가 그속에서 생을 마치며 죽어서도 가족에 의해 봉사(奉祀)를 받는다. "나"와 소소한 일상을 공유해주고 질풍노도의 시각들을 함께 버텨주는, "나"를 가장 잘 알고 리해하는, 그래서 내 치부마저도 스스럼없이 드러내놓고 맘껏 숨 쉬며 살수 있는 공간이, 사람들이 다름 아닌 가족이기에. 그래서 가족은 소중한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착각하는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 보편적으로 지니고있는 가족에 대한 고정관념과 가족관계를 향한 과도한 합리화 내지는 일종의 환상이라 할수 있겠다.

인류학, 사회학뿐만아니라 거의 모든 사회과학령역에서 사전적인 의미로 인용되고있는 Murdock의 정의에 따르면 "가족/가정(Family)은 공동거주, 경제적협력, 그리고 생식이라는 특성을 지닌 사회집단이며 성관계를 허용받은 성인 남녀와 그들이 낳은 자녀 혹은 입양한 자녀로 이루어진다"(Murdock 1949).

어찌 보면 우리가 흔히들 생각하는 "정상가족"의 모델이라 할수 있겠다. 그러나 정작 세계상의 적지 않은 민족들을 볼 때 우리 나라 운남성의 나시(纳西)족이나 인도 남부의 나야인(Nayar)처럼 자녀의 생물학적아버지를 제외한 외할머니, 이모, 외숙부 등 어머니의 혈통만으로 구성되는 모계가족이 있는가 하면 아프리카 수단의 어떤 부족처럼 녀자끼리 결혼하여 결성되는 가족도 있다. 우리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부계(父系)적가족제도 역시 조선시대 후기에야 정착된것으로 그 이전까지만 해도 아버지, 어머니의 조상 모두를 족보에 기록했다. 동성동본불혼(同姓同本不婚)의 원칙을 고수하는 우리 민족과 달리 가까운 일본에서는 현재까지도 사촌끼리의 결혼이 허용된다.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는 나라들이 늘어나고있으며 대리모, 정자은행 등 새로운 출산방식들이 출현하고 복제인간의 탄생까지 꿈꾸는 시대가 왔다.

즉 성과 혈연을 기본적인 뉴대로, 성원들의 공동거주를 주요한 특징으로 이루어지는것이 자명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우리의 고정관념과 달리 가족은 실제로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는 문화적산물에 불과하며 설령 동일문화에 있어서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지닌다는것이다.

1990년대 이후 조선족사회는 전례 없는 인구이동의 소용돌이속에서 거대한 변혁을 겪고있으며 그 중심에는 시종일관 가족이 자리하고있었다. 근 30년래 조선족사회 변천의 표상 혹은 담론의 주제가 가족의 변화에 집중되는 가운데 "결손가정/가족"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고 빈번히 사용되기 시작했다.

우리는 흔히 같은 집 공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로 구성 된 세대/가구(household)를 개념적으로 가족과 혼동하는 경향이 짙다. 개인단위 이동이 위주라는 특징으로 말미암아 조선족의 이동은 많은 수의 조손세대, 독신세대, 편부모자녀세대 등 소위 "정상"범주를 벗어난 "비정상적세대"를 량산했다. 따라서 이를 곧 우리 관념속의 "정상가족"과 련관지어 비정상적인 "결손가족"으로 정의하며 심지어 "가족의 해체"에까지 직결시켜 해석한다.

하지만 세대와 가족은 분명히 다른 차원의 개념이며 공동거주성이 무너졌다고 해서 가족성원들이 더 이상 가족이 아닌것이 아니며 가족이 해체되는것은 더더욱 아니다. 우리 자신들의 가족과 주위만 살펴보더라도 대부분의 가족이 주어진 사회적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전략으로 나름대로의 뚜렷한 미래 지향적목표를 가지고 분산거주를 선택했으며 일상의 실천속에서 기존의 가족 리념과 규범을 바탕으로 국경을 초월하여 가족을 영위해왔음을 알수 있다.

따라서 오늘날 이동속을 살아가는 조선족가족은 "결손가족"이 아니라 초국가적련결망을 특징으로 영위되여가는 새로운 정상가족의 한 형태로 보는것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이와 같이 가족은 문화적산물이며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지닌다. 그렇다면 "가족이기때문에, 가족은 당연히 그럴거야/그래야만 해"라는 본능적인 명제 또한 재검토가 필요한것이 아닐가.

사실 우리는 가족으로 인해 마냥 행복한것만은 아니다. 특히 피줄의 조화로움과 끈끈함을 그 어떤 인간관계보다도 더 강조하는 우리민족 특유의 가족주의질서속에서 가족은 무조건 사랑하고 나누고 희생해야 하는것, 가족이라면 리유 없이 그냥 그래야 하는것으로 각인되여왔다. 이렇듯 과분하게 리상화된 가족상 그리고 견고하게 정형화 된 가족제도의 틀안에서 오늘날까지도 우리의 수많은 누이, 녀동생들은 철없는 남동생, 오빠를 위해 무고한 희생을 강요당하고 안해들은 가장구실도 못하는 남편을 인내하고 안팎으로 바삐 돌아쳐야 하며 맏아들은 장자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 해야 하고 늙으신 부모님은 허리가 휘도록 자식을 위하여 재산을 남겨주고 손자녀를 돌보는 "임무"를 완성해야 한다. 부모와 자녀, 형제자매들 사이에서는 분에 넘치는 "주고받음"으로 괴로워하고 힘들어한다. 얽히고 설킨 가족의 끈, 가족이기에 사랑하고 희생하고 행복하기도 하지만 가족이기에 더 숨 막히고 아프고 슬프기도 하다. 그래서 "남보다 못한 가족"이 되여가기도 한다.

Levi-strauss는 가족은 법적뉴대, 경제적, 종교적 및 그외의 의무와 권리, 성(sex)적 권리와 금지, 애정, 존경, 경외 등 다양한 심리적정감으로 이어져있다고 함으로써 공동거주를 가족의 중요한 지표로 지목한 Murdock의 주장과는 달리 가족구성원간의 정서적 뉴대 및 결합의 중요성을 호소한다(Levi-strauss 1956).

맞는 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러한 정서적 결합과 친밀성이 결코 필연적이고 자명한것은 아니라 "남"이 "우리"가 되고 가족처럼 되는데까지 쏟아 부어야 하는 그 이상의 진심과 배려와 리해가 무엇보다 필요함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에게 있어서 "우리"라는 친밀성의 욕구를 만족시키는데 가족보다 더 적합한 상대는 없는것 같다. "남같은/남보다도 못한 가족", "가족같은/가족보다 가까운 남", 짓궂은 말장난 같지만 가족은 주어지기만 하는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것이다. 소중하기때문에 더 조심스레, 더 소중하게 가꾸어야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내편"-"우리", "가족"이 만들어지지 않을가.

래원: 인민넷-조문판 (편집: 김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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