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중국조선족영화 탄생 85 돐이 되는 해이다. 85돐을 계기로 중국조선족영화 발전맥락을 짚어보는것은 중국조선족영화의 발전을 위해서 의미있는 작업이라 하겠다.
1928년, 전창근의 씨나리오, 정기택의 감독으로 된 중국조선족의 첫 영화 “안중근”이 상해에서 탄생하였다. 당시 국민당당국은 검열시에 영화중의 반일장면과 민족사상이 표현된 부분을 사정없이 삭제했기에 영화의 이야기는 잘 이어지지 못한채 관중들과 대면하였다. 그후 정기택감독은 “세 영웅의 미인쟁탈”, “영사막에 피여난 꽃”(원령옥 주연) 등 9편의 예술영화를 제작하였다.
김염은 중국의 제1대 영화황제로서 당시 상해에서 제일 저명한 영화스타중의 한사람이였다. 그는 1962년에 스크린을 떠날 때까지 33년간 “야초한화”(野草闲花) 등 46부의 영화에서 주역을 맡음으로써 중국영화의 발전에 마멸할수 없는 기여를 하였다.
새 중국이 창건되여서부터 64년간 중국조선족을 제재로 한 영화가 10여부 창작되였다.
1949년에 동북영화촬영소에서 8명의 항일녀전사가 일본군의 첩첩한 포위에 들자 목단강에 뛰여들어 영용히 희생되는 력사사건을 소재로 한 “중화의 딸”을 제작하고 1957년에는 장춘영화촬영소에서 항일녀영웅을 구가한 영화 “김옥희”를 제작하였다. 영화 “김옥희”가 1960년 7월에 향항에서 상영되였는데 련 며칠동안 입장권이 매진되는 성황을 이루었다. 1958년에 리홍규, 황봉룡, 최형동, 최현숙의 합작으로 된 영화 “봄우뢰”가 제작되였다. 이 밖에 조선족인민들의 력사와 생활을 반영한 영화로는 “기러기”(1960년 연길현우전국 리호천의 모범사적을 다룬 영화), “태양을 향하여”(2002년 인민음악가 정률성을 소재로 한 영화), “해란강반의 벼꽃향기”(2012년 현시대 조선족농민들의 생활을 형상화한 영화) 등 10여부가 있다.
영화 “첫봄”(1982년 씨나리오 최정연)은 건국후 처음으로 조선족이 씨나리오와 작곡을 맡고 극중인물의 모든 배역을 담당한 중국조선족 영화사상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불리우고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장률, 박준희, 김광호, 김혁 등 조선족감독들이 중국영화계에 얼굴을 내밀면서 중국조선족영화발전을 위해 기폭제역할을 하였다.
장률감독은 2000년에 첫 단편영화 “11세”로 베니스영화제 단편경쟁부문에 올라 단숨에 주목을 받은 뒤 “망종”(칸영화제, 부산영화제 등 영화제에서 수상), “두만강” 등 7편의 영화를 제작하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외 박준호감독은 “력도산의 비밀”, “철인 왕진희” 등 3부의 영화를 제작하고 김광호감독은 “궤도”(부산영화제 신인작가상), “서서 자는 나무”(촬영중)를 제작하였으며 20대의 나젊은 감독 김혁은 “괄호”, “사신 (私信)” 등 4편의 영화를 제작하였다.
중국조선족영화는 85년이라는 긴 려정을 거쳐 자기의 작가, 감독, 배우를 배출함으로써 독립적으로 영화를 제작할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되였다. 이러한 거족적인 발전에 힘입어 중국조선족들의 생활을 반영한 영화들이 속속 제작되고있다. 하지만 이러한 영화중에 중국조선족의 생활을 전면적이면서도 깊이가 있고 시대감있게 형상화한 영화가 매우 적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우리의 작가와 영화인들에게 주어진 공동의 숙제라 하겠다.
래원: 연변일보 | (편집: 김성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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