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문창: "모래바람을 다스리지 못하면 모래바람에 내가 매장될것이다"
(민족주축)
2016년 07월 06일 13:47【글자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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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afile/201607/06/F201607061348252946703841.jp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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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넷 조문판: 6월 22일, 중국공산당 창건 95돐 전야에 “마음속에 당이 있고 마음속에 인민이 있고 마음속에 책임이 있고 마음속에 경계가 있는 간부(四有干部)”의 모범이며 복건성 동산형 원 현당위서기 곡문창의 조각상이 중앙당학교에서 락성되여 제막했다.
당년에 현지의 모래바람이 살판치는 상황에 직면하여 이 현당위서기는 “모래바람을 다스리지 못하면 모래바람에 내가 매장될것이다”라는 쟁쟁한 맹세를 했다.
그는 현지의 간부와 군중을 이끌고 불모의 땅을 초목이 울창한 생태관광의 바다섬으로 개변시켰다. 오늘날의 동산은 국가생태현으로 되여 년간 관광객 접대수가 연 500만명을 넘어섰다.
하지만 60여년전에는 이곳이 거의 황량하고 척박한 불모지로서 모래바람이 살판치고 백성들이 살아가기 어려웠다. 1950년 남하간부인 곡문창이 고향인 하남성에서 동산으로 내려와 현지군중들의 어려움 생활을 목격하고나서 인민을 고통스러운 환경에서 구해내지 않으면 공산당이 와서 무얼할것인가?”고 대성질호했다.
1957년, 광동 전백연해에서 목마황 방풍림지대 재배에 성공했으며 동산 서산암 림산작업소에서 한 농부가 닥치는대로 심은 세그루의 목마황 묘목이 모래바람이 살판치는 곳에서 완강하게 살아남았으며 동산에서 나무를 심을수 있게 되였다!
한동안의 모색을 거쳐 곡문창은 목마황재배에 관한 “여섯가지 기술요점”을 총화해냄과 아울러 전현에 대규모적으로 재배를 일반화했다. 1959년말에 이르러 전현 범위에서 도합 4만 3000무의 황산조림을 완수하여 80%의 모래를 고정시켰다.
곡문창으로 놓고 말하면 나무와 물은 동산의 목숨처럼 귀중했다. 모래바람을 다스리는데서 효과를 본 뒤 그는 동산인민을 이끌어 저수지를 만들고 우물을 팠는데 22개 저수지와 705개의 크고작은 수리공정을 마무려 동산은 맑은 물과 기름진 밭이 있게 되였으며 백성들이 더는 가뭄과 홍수, 모래바람의 시달림을 받지 않게 되였다.
“사심없이 혁명하고 일심전력으로 인민을 위한다”는 말을 곡문창은 필기책에 적었고 또 한평생 실천에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