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토회의 노르베르트 베버 총아빠스 신부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무성영화에서 유교에 바탕한 조선인의 가족주의적 공동체문화와 조선인 개인에 내면화된 겸손을 카톨릭이 뿌리내릴수 있는 토양이라고 본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형성되는 조선인들의 근대적자아는 나라의 운명을 거머쥔 상층부 조선인들의 그것과 정확히 일치한것만은 아니였던것 같습니다.
유럽시각의 이 극동의 반도는 더이상 고요할수 없게 됩니다. 급격하게 변화하는 정치경제적질서속에서 설움-환희, 절망-희망, 사망-소생 등의 여러 층위와 차원의 대립적이고 모순적인 자아의 조선인들이 강을 건너고 산을 넘습니다. 농사에 능한 사람은 농사를, 상업에 능한 사람은 상업에, 문학에 능한 사람은 창작에, 다양한 개인(또는 자아)으로 구성된 조선인들이 다양한 령역에서 묵묵히 열심히 살아가고있었습니다.
이 조선인들은 두만강과 압록강의 북쪽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만족과 몽골족을 만나게 됩니다. 과거에는 국경의 너머에 살고있는 이웃이라고만 생각했지만 이제는 가까이에서 공생해야 하는 진짜 이웃이 되였습니다. 이 민족들이 자신의 터전을 적극적으로 가꾸어나가는것을 보고 조선인들은 삶의 동력과 희망을 얻었을지도 모릅니다. 때문에 어쩌면 이 땅을 이주과정의 한 정거장으로만 간주하지 않고 새로운 고향으로 개척하고자 하는 자아가 자연스럽게 재구성되였을수 있습니다. 그 많은 땅이 개척되고 그 많은 학교가 설립되고 그 많은 사람들이 생활하고있었으니 말입니다.
비슷한 시기 관내의 한족들이 대규모로 동북지역에 들어와 아주 열심히, 그리고 적극적으로 동북을 개척했다고 기록되여있습니다. 조선인들의 수전개척과 한족들의 한전개척은 동북 농업사나 경제사에 등장하는 단골메뉴입니다. 그만큼 농업경제를 구성하는 과정에 동종산업에 분포하지 않았기때문에 필요이상의 경쟁은 피할수 있었다는 의미인것 같습니다. 동북개척의 적극성을 보인 한족인구를 보면서 조선인들의 자아는 다시 재구성되지 않았을가요?
살림살이가 좀 안정되나싶었는데 조선인들은 일본인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일본인은 이주민이나 정주민으로서의 정체성보다 제국의 우월한 일원이라는 정체성을 설정한 사람들이였습니다. “간도”에는 일본 령사관과 파출소 등 식민통치기구들이 설립되고 조선은행 지행 등 식민지 금융기관이 들어섭니다. 길거리에는 일본상인들도 득실거립니다. 이러한 현상은 이 땅의 한족, 만족, 몽골족 모두가 목격하였을것입니다. 덕수궁에서 커피 마시는 쓸쓸한 고종의 형상이 가셔지지도 않았는데 이 “만주”땅에서 또 일본인을 만나게 되니 그 많은 조선인들의 자아는 다시 한번 재구성되지 않았을가요?
그뒤 중국의 조선인들은 중국국적을 부여받게 되고 조선족으로 불리게 됩니다. 생산(대)대의 출현부터 소실까지, 그사이의 문화대혁명을 포함해서 중국공민의 한 구성원으로서 조선족의 자아는 굉장히 복잡하게 재구성되였을것입니다.
개혁개방정책의 시행으로 많은 중국조선족 개인들은 자신의 능력을 적극적으로 발휘하여 산해관을 넘고 국경을 넘어 중국 동남부 연해지역과 대도시, 한국, 일본, 미국, 유럽 등 지역으로 진출하게 됩니다. 새로운 기회와 도전 속에서 중국조선족 개인의 자아는 상당히 복잡하게 재구성되였을것입니다. 왜냐하면 단순 면적으로만 보면 꽤 넓은 곳이지만 문화적으로는 비교적 단일한 동북지역에 거주하던 조선족들이 짧은 기간에 굉장히 다양한 문화와 인종적범주에 편입되였기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조선족의 정체성에 관심을 보입니다. 수많은 관계속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설정하고있는 자아, 그리고 이에 기반한 나 스스로의 성찰의 내용이 아니라 “너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신나게 동조하거나 열심히 답하는것이 작금의 조선족정체성 관련 연구인것 같습니다. 동시에 중국조선족의 정체성을 “그냥 궁금해서 알아보기 위해” 설정된 틀은 사례로서 중국조선족을 전근대적인 주체로 부각시키는 족쇄가 되여버린것 같습니다. 우스우면서 슬픈 작금의 현실입니다.
정체성의 령역과 내용은 정치경제구조와 사회관계의 변화 속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되는것으로 볼수 있을것 같습니다. 이렇듯 만약 중국조선족 개인의 근현대적자아(정체성)가 이 일련의 과정의 산물이라면 역으로 조선족 개인의 정체성은 동아시아의 력동적인 근현대를 설명하는 중요한 사례가 될것입니다. 중국조선족의 근대성은 (최소한) 동아시아의 근대성을 설명하는 리트머스시험지가 될수 있다는것입니다.
막스 베버나 좀바르트 등 학자들은 유태인의 문화(또는 정체성)를 통해 자본주의의 보편적인 특질들을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아직 상상에 불과하겠지만 중국조선족의 근대성(정체성)은 동아시아의 근대를 설명하는 의미있는 “사례”이자 “방법”이 될수 있지 않을가요?
【박우 략력】
성명: 박우(朴佑)
성별: 남
출생년월: 1982.3
소속: 한국 한성대학 교양교직학부
전공: 이민사회학, 정치사회학, 동아시아 이주와 시민권 문제, 한국의 조선족 사회
학력: 한국 서울대학 박사과정 수료
한국 서울대학 사회학 석사
연변대학 식품공학 학사
경력: 한국 한성대학 교양교직학부 전임강사를 거쳐 현재 조교수.
주요 론저:
편저로는《우리가 만난 한국(2012, 한국, 북코리아)、역서로는 《한국과 중국의 사회변동 비교연구》(2013, 한국, 나남), 《중국 동북지역 도시사 연구》(2016, 한국, 진인진)등.
래원: 인민넷 | (편집: 김홍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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