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통신원 모집 통지]|시작페지 설정
최신고위층동향당건설인사임면부패척결국내경제조선족집거지중앙정책사회인물문화교육과학기획멀티미디어조선뉴스 한국뉴스국제뉴스종합보도 리론관점 스포츠 연예관광생활포토
·우리 나라 50% 이상 눈표범 서식지, 보호구에 포함돼   ·팽려원, 중국-아프리카 에이즈예방 주제회의 참석  ·중국인민항일전쟁 및 세계반파쑈전쟁 승리 73주년 기념 좌담회 …  ·운남 마리포현 침수재해 발생으로 5명 사망, 여러명 실종   ·중국 올해 최대 홈장외교! 중국-아프리카협력포럼 북경 정상회담…  ·대륙에서 대만에 증정한 참대곰 '단단', '원원' 14세 생일…  ·공군 ‘하늘에서 쫓는 꿈’ 주제 항공개방활동 개최  ·전군, 최초로 사회적으로 문직인원 공개모집 통일시험 조직  ·할빈 호텔 화재로 20명 사망, 수색구조작업 모두 끝나  ·폭우 남색주의보: 길림, 절강, 복건 부분적 지역 대폭우 예상  ·폭우 남색주의보: 동북 부분적 지역 대폭우 예상  ·23일-25일 연변주 폭우 혹은 대형 폭우 예상  ·참대곰 자매 길림성 장춘에 정착  ·길림성 동남부 큰비 혹은 폭우 예상  ·폭우 황색주의보: 료녕 동부와 길림 동남부 부분적 지역 대폭우…  ·우리 나라 60% 초과한 야생참대곰 자연보호구에 편입돼 효과적…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 대만 력사교과서 ‘탈중국화’는 량안대립…  ·연태 대흠도 해역 한 로로선 부두에 갇혀, 현재 구조중   ·태풍 ‘버빙카’ 광동에 상륙, 경주해협에 차량과 인원 체류현상…  ·대만 신북 한 병원서 화재 발생해 9명 사망  ·운남 통해 재차 5.0급 규모의 지진 발생  ·광주: 화남참대곰기지 새끼참대곰 두마리 건강검진 받아  ·운남성 옥계시 통해현 50.0급 규모의 지진 발생  ·올해 강소, 절강, 상해에 왜 태풍이 많은가?  ·항주 요성 서쪽 도로서 교통사고 발생해 9명 사망  ·자연보호구: 장강돌고래의 서식지  ·파양호 진귀한 조류 자주 출몰  ·북방과 운남 등 지역 비교적 강한 강수 있어, 6일부터 북방 …  ·평화방주 피지에 도착해 친선방문 진행  ·가장 귀여운 '특공대', 트렁크내의 금지품 냄새 맡을 수 있어  ·태풍 '종다리' 오늘 상륙 예정  ·련속 20일 고온주의보 발부: 천진, 하북, 료녕, 내몽골 부…  ·이번 고온 어떤 다른점이 있는가  ·홍색유전자 전승, 강군 중임 담당 —— 중국인민해방군 건군 9…  ·외교부: 대만지역 지도자 미국 ‘경유’ 문제 관련 미국측에 엄…  ·전국성 종교단체 공동발의: 종교활동장소에 국기를 게양하자  ·국방부, 성대한 초대회 열어 건군 91주년 열렬히 경축  ·평화방주병원선, 남태평양서 건군 91주년 경축 국기게양식 성황…  ·중국참대곰보호연구쎈터 참대곰 야외도입항목 최초로 쌍둥이 아기 …  ·광주: 백쌍의 세쌍둥이, 참대곰 세쌍둥이 위해 생일 축하  ·동물들을 위한 다양한 더위예방조치  ·팽려원 프리토리아 유아교사양성 졸업식에 참석  ·태풍 ‘안비’ 경진기지역 영향  ·태풍우 엄습...북경 잇달아 3중 조기경보 발부  ·팽려원, 파빌라녀자중학교 참관   ·백서: 청장고원지역은 아직도 지구에서 제일 깨끗한 지역중 하나  ·동물들이 즐기는 다양한 '더위해소법'  ·상해 오송구 배 침몰 구조현장서 5명의 조난자 시신 발견  ·황하 류가협저수지 모래배출 및 방류  ·중국과 크로아티아 첫 경무련합순라 정식 가동 

운남 인민해방의 길개척자와 정초자 왕덕삼

2018년 09월 13일 09:30【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운남성 대리바이족자치주 상운현 류창진 왕가장의 고색이 창연한 바이족 전통민가가 바로 혁명렬사 왕덕삼이 청소년시기에 생활하고 학습했던 곳으로서 지금은 상운 ‘홍색전승’ 교양기지의 한 부분으로 지금도 완정하게 보전되여있다.

왕덕삼은 원명이 왕무정이고 자가 정린이며 1898년 7월 운남성 상운현에서 출생했다. 1921년 북경대학에 입학했고 얼마 후 중국 첫 맑스주의학습연구단체인 북경대학 맑스주의학설연구회에 참가했으며 1922년 등중하의 소개로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1924년 가을, 중공북방구위의 파견을 받고 왕덕삼은 섬서에 가 당조직을 건립했으며 섬북지구 공산당조직의 창건자와 중요한 지도자의 한 사람이다.

1925년, 왕덕삼은 북경대학에 돌아와 복학하였으며 선후하여 중공북경구위 위원, 사회주의공청단 북경지구위원회 위원과 경제투쟁위원회 서기 등 직을 맡고 북경로동자운동의 령도사업에 참가했다.

1927년 2월, 그 당시 황포군관학교 정치교관이였던 왕덕삼은 당의 파견을 받고 운남으로 돌아가 사업하게 되였으며 선후하여 중공운남성 특별위원, 림시위원, 성당위 서기직을 력임했으며 당의 제6차 전국대표대회 대표였다.

1927년, 대혁명이 실패한 후 혁명이 저조기에 처했다. 왕덕삼은 운남지방군벌의 실제상황에 근거하여 계속 인민을 령도하여 견결한 혁명투쟁을 전개했다. 중국공산당 ‘8.7’회의 정신에 따라 1927년말, 중공운남성위는 사업의 중심을 철도연선에 옮기자 왕덕삼은 몽자, 개구의 공장, 광산과 운남 남부의 농촌에서 계속 투쟁을 견지했으며 로동자, 농민들 속에 심입하여 간고하게 사업을 전개했다.

1930년 1월, 왕덕삼은 중공운남 제1기 성당위 서기로 당선되였다. 백색테로와 극히 악렬한 환경 속에서 그는 운남성 각급 당조직과 여러 민족 인민들을 령도하여 영용하고도 완강하게 투쟁하였다. 그는 소수민족 집거지역에 심입하여 민족지역에서 당사업의 경험과 교훈을 참답게 총화하였고 소수민족 군중들에게 당의 주장을 선전하였으며 소수민족 형제들의 계급각오를 불러일으켰다. 그는 운남성 남부 소수민족지역의 사업을 대상으로 ‘소수민족문제 대강’의 제정을 주관했는데 이는 운남 소수민족 사업에서 중국공산당의 첫 강령성 문건이다.

1930년 11월, 반역자의 밀고로 왕덕삼은 불행하게 체포되였다. 감옥에서 적들의 위협과 회유에 그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1930년 12월 31일 왕덕삼은 곤명에서 영용하게 희생되였다. 그때 그의 나이는 33살밖에 안된다.

상운현 ‘홍색전승’교양기지관리중심의 주임 왕금경은 전국 각지로부터 해마다 최소 3만명이 왕덕삼 생가를 찾아 영웅렬사를 추모하고있다면서 “왕덕삼은 혁명사업을 위해 귀중한 생명을 바쳤으며 그의 진리를 위하여, 정의를 위하여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은 우리 모두가 따라배워야 할 바이다.”라고 말했다. 신화통신

래원: 연변일보 (편집: 김홍화)
관련뉴스
  [본문 프린트]  [편집에게 편지쓰기]  [E-mail추천]
주의사항:
1. 중화인민공화국 해당 법률, 법규를 준수하고 온라인 도덕을 존중하며 일체 자신의 행위로 야기된 직접적 혹은 간접적 법률책임을 안아야 한다.
2. 인민넷은 필명과 메모를 관리할 모든 권한을 소유한다.
3. 귀하가 인민넷 메모장에 발표한 언론에 대하여 인민넷은 사이트내에서 전재 또는 인용할 권리가 있다.
4. 인민넷의 관리에 대하여 이의가 있을 경우 메모장 관리자나 인민일보사 네트워크쎈터에 반영할수 있다.
메모 남기기:

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