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군식선생은 애지중지 소장해둔 민속기물들을 중국조선족백년부락에 전시하여 전국관광객들에게 선을 보이고있다. |
한 개인의 애호나 추구가 한 민족의 정신이나 기상과 련결될 때 그속에는 필연코 그 어떤 가치나 보람이 깃들어있는것이다. 도문시건설국 서류관리처의 박군식선생은 세심한 성격과 끈질긴 추구로 사업과 생활에 일관해왔다. 그는 워낙 과외로 우표수집에 애착을 가진 우표수집애호가였다. 90년대초 우연히 한국인들이 두만강지역에 와 조선족민속기물들을 대량으로 수집해가는것을 보고 "귀중한 민속기물은 지금 없어지면 다시 있을수 없는 보물"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였다.
현대생활의 급속한 향상속에 가뭇없이 자취를 감추게 될 옛 민속기물들, 그속에 묻힌 력사와 문화, 그리고 그 나름의 사연들이 바야흐로 사라지고있다는 실정에 못내 안타까움을 느끼게 되였다. 수집애호가로서 소장의 의미를 잘 알고있는 그는 단연 조선족민속공예품 수집에 나섰다. 휴식일이면 자전거를 타고 두만강반의 농촌마을을 돌며 집집이 애지중지 보관하고있는 기물이며 뒤구석에 처박혀있는 고물단지들을 거둬들이며 수천리 수만리 길을 여름 겨울 없이 자전거페달을 밟았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그의 살림집이며 베란다, 창고, 아빠트 복도 어디라 할것 없이 온갖 민속고물들로 넘친다. 창고만 해도 다섯개를 세맡아 보관하고있어도 자리가 마땅치 않아 형제들의 집에까지 실어가니 곁사람들은 아주 질색을 할 정도다.
하지만 그는 아예 고물점까지 차리고 민속기물을 거둬들이고있는데 중첩되는건 팔기도 하며 민속공예품수집에 매료되여있다. 지어 경추병으로 운신에 장애가 왔어도 비용이 딸려 병치료를 늦추면서도 고물수집에는 등한하지 않는다. 그는 "민속기물에 손이 닿기만 해도 정신이 든다"고 한다.
살림집안에 정히 얹어놓은 민속골동을 가리키는 그의 눈빛은 빛났다.
"도자기란 토기와 사기의 총칭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토기는 800-900도 고온에서 굽고 사기는 1200도 이상의 고온에서 굽는 차이를 갖고있지요. 옛날 우리 조상들은 도자기기술을 광범위하게, 보편적으로 장악하고있었습니다. 지금 제가 갖고있는 민속기물들은 수천점에 달합니다. 그러나 류형에 따라 기본형태가 비슷할뿐 꼭같은 기물은 거의 없습니다. 이런 풍부한 도자기문화에서 우리 민족은 상상력이 기발하고 창의력이 강한 민족이라는것을 알수 있습니다".
박군식선생은 신명이 나 계속 뒤말을 이어나갔다. "고려시기에는 청자, 리조시기에는 백자가 흥성했습니다. 저 청자나 백자에는 물속에서 노니는 물고기며 산수풍경이 많이 그려져있습니다. 자유를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며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속에 생활하는 우리 민족의 특성과 성향이라고 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자연미를 강조하는 이런 특성은 인물화에 필묵을 들이는 타민족 문화와 구별되는 점이기도 하지요".
그는 민속골동이 지닌 력사와 소재, 기술, 무늬, 색상 등 구성에 대해 문화적측면으로 분석하면서 보다 깊은 연구를 동반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그는 일찍 중국민간문화유물기금보호위원회에서 조직하는 학습반에 가 학습도 하면서 문화유물을 감별하는 방법과 기술을 장악하였고 문화유물을 보호하는 가치와 필요성에 대해 차원높은 인식을 가졌던것이다.
민속고물을 다뤄온 20여년사이 그는 감명깊은 사연들도 많이 만났다. 량수진의 80여세나는 한 할머니는 시집올 때 친정엄마가 준 동골을 찬장안에 정히 받쳐올려놓고있었다. 정성과 사랑의 마음으로 정교하게 결은 동골은 쫀쫀한 무늬와 결로 한결같이 일매졌고 오랜 세월동안 알뜰한 손다듬질로 윤기가 흐르고있었다. 할머니는 《그 동골은 돈을 받고 파는 물건이 아니니 국가에서 보관하는데 있으면 그리로 보내 영원히 보존하고싶다》고 했다.
항미원조전장에서 2차나 2급 영예훈장을 수여받은 개산툰의 한 이름 모를 아저씨, 비발치는 탄우속에서 적들과 용감히 싸워 영예의 메달을 앞가슴에 달고 돌아왔다. 그러나 영웅전사의 가슴팍 갈비뼈사이에는 총알이 그대로 박혀있었다. 그 가슴을 안고 영예군인이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농사를 짓고있는 영웅아저씨는 메달 2매를 고스란히 그의 손에 넘겨주면서 우리 력사의 견증물이라고 거듭 말씀하셨다.
반질반질 윤기 흐르는 아담한 물동이도 있었다. 도문시의 옛 토기장인이 시집가는 딸한테 손수 만들어준 토기물동이였다. 초물에 닦고닦아 얼굴이 비칠 정도로 빛갈이 유난했다. 사랑과 효심으로 윤을 돋힌 이 물동이는 "사람의 손이 기름"이라는 소박한 철리를 일깨워주기도 하였다.
박군식선생은 "돈을 받고 파는 물건이 아니다"고 신신당부하던 고물주인들의 그 진정을 가슴으로 받아안고있었다. 그는 언젠가는 꼭 민속박물관을 차리고 민속고물속에 묻힌 력사와 문화와 사연들을 그대로 전시하고 그 진의를 대를 이어 전해주고싶다고 한다. "현실에 의미를 가지는 고물은 보물입니다. 지금 약 100여년의 력사를 지닌 3000여점의 민속고물들을 소장하고있는데 한 1만점 정도 소장하여 그것들을 민속박물관에 정히 전시하는것이 나의 꿈입니다."
자신의 의지를 밝히는 박군식선생은 어조에 힘을 실었다.
래원: 길림신문 | (편집: 김홍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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