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통신원 모집 통지]|시작페지 설정
고위층동향당건설인사임면부패척결국내경제조선족집거지중앙정책사회인물문화교육과학기획멀티미디어조선뉴스 한국뉴스국제뉴스종합보도 지식·자료실 리론관점 스포츠 연예관광생활포토
·외교부: 우리 나라 방문 온 국빈차대에 대한 오토바이경호 회복  ·연변 조선족소녀 김봉영 "소년중국강"서 천재적 암산능력 과시  ·천안문광장 새 화단으로 APEC회의 맞이  ·세멘트사이로 자란 초대형 배추 직경 1m 달해  ·영국 한 녀성 출산 9달만에 세쌍둥이 출산  ·"코끼리"로 태여난 도야지   ·광동 한 녀성 카드삼킨 현금인출기 맨손으로 뜯어내  ·섬서성 태백현 황백원에서 야생 참대곰모습 포착  ·열대우림에서 잡은 대형박쥐 “론란”  ·일반인보다 100배 민감한 시력 가진 녀성 화가   ·아태경협기구 제22차 지도자 비공식회의 및 관련 행사 북경서 …  ·국가공무원시험 응시생 26만여명, 1466개 직위 아직까지 심…  ·인민넷 10.13-10.17 일주일 열점뉴스 종합  ·훅호트백탑공항 응급구원훈련 거행  ·[포토] 북경 경찰측 반테로훈련 전개  ·영국의 한 가정,집에 149마리 동물 키워  ·절강 한 화페운송차량 강에 빠져, 현금 11상자 실어  ·멀리서 바라본 안서호 APEC 회의장  ·절강 한 고중 학생들 운동회개막식서 cosplay로 인기  ·중국과 몽골 수교65돐 공동 경축  ·인류의 빈곤감소력사상 위대한 실천-당중앙 빈곤구제개발사업 관심…  ·호북 벼랑끝에 매달린 "벽걸이 도로" 아찔  ·옥상에서 쿨쿨 잠든 권총강도들, 깨고 보니 경찰이...   ·운남성 건설현장 건설사 주민 충돌사건 발생   ·외교부,일본 총무대신 등이 신사 참배를 고려하는것과 관련해 담…  ·우룸치 “스위치만 누르면 경찰에 신고 가능”한 시스템 시험장치  ·량진영: “도심점령”, 보통선거문제 해결하지 못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젖소, 신장 2메터에 달해  ·말기 암 아빠와 세 딸의 마지막 춤…감동 사연  ·[포토] 무인구 젊은 90년대생 병사들의 “늙은 손”  ·남편, 안해를 위한 “폭풍속 화보” 촬영  ·50전짜리 동전으로 장식한 자가용 눈길  ·인도서 10대 소녀 강간하려던 남성 생식기 잘리워  ·중국 여러 지역 기온 대폭 하락  ·섬서 도로공사 현장산사태 19명 사망   ·중국 귀주 보잉747려객기 드날들수 있는 “세계 최대 동굴” …  ·무게가 2058파운드에 달하는 호박   ·인민넷과 중국공산당 력사넷 “군중 로선 혁명 성지행" 행사 주최  ·외교부:중국과 로씨야 협력 제3자 상대하지 않는다  ·향항사무는 중국내정, 각국은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  ·인민넷과 로씨야투데이 협력협의 체결  ·산서 5.2억원 복권 당첨자 카툰차림으로 나타나  ·중앙기관 및 그 직속기구 2015년도 공무원시험채용 공지  ·일본 도꾜 금발미녀 북금곰 끌고 산보, 행인들 경악  ·"어머! 지붕 꼭대기에 축구장을?"  ·[포토] 스모그 지난후 북경 천안문광장 야경  ·[포토] 동화세계 흡사한 감숙 숙남위구족자치현 설경  ·중앙 기관 및 직속기구, 2015년도 2.2만여명 공개 초빙  ·하반신 마비 신부의 "우뚝 선 감동의 결혼식"  ·올해 중앙 첫 순시정돈정황 사회에 공포 

연변이 낳은 조선어번역가 —양춘성

2014년 10월 22일 14:47【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1929년 연길현(현 룡정시) 지신구 지신촌에서 태여난 양춘성(한족)은 중국의 걸출한 조선어번역가로서 선후로 조선로동당중앙으로부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2급훈장을 수여받았고 2001년에는 중국에서 첫패로 “중국선임번역가(中国资深翻译家)”라는  영예칭호를 부여받은 인물이다.

“퇴직후 부친은 늘 저를 데리고 함께 룡정시 지신촌 고향집 옛터로 찾아간다고 약속했는데 끝내는 실현하지 못했어요”

일전, 연길에서 만난 그의 아들 양림은 매우 아쉬워하며 말했다.

1951년,  연변지방위원회(延边地委)에서 사업하던  그는 주덕해주장으로부터 달랑 한장의 인사명령장을 받고 낯선 북경으로 올라가 중공중앙대외련락부의 창립사업에 참가하게 되였다.

중공중앙대외련락부가 성립된후 조선어와 일어에 정통한 그는 인민대학 외교계에 입학해 로어를 학습하게 되였지만 졸업하기전 중국과학원에서 조선어인재를 급히 수요하자  얼마간 중국과학원에 차출되기도 했다. 양춘성은 중국과학원에서 맡은바 임무를 출중하게 완성후 다시 중공중앙대외련락부(中联部)로 돌아와 1990년 퇴직할 때까지 사업을 꾸준히 하였다.

만년에는 중공중앙대외련락부에서 국제문제조사연구원으로 조선문제연구사업에 정력을 몰부었고 선후로 “조선당내투쟁정황분석”, “조선로동당주체사상 및 발전과정”, “중조관계와조선전쟁”, “조핵문제와 중조관계”등 연구보고를 편찬했다.

2013년, 양춘성이 향년 85세로 돌아간뒤 아들 양림은 사진을 정리하면서 부친의 인생려정을 탐색해보았다고 한다. 그의 사진첩에는 진귀한 력사적순간을 기록한 사진들이 많았다. 전용렬차에서 조선의 최고수령 김일성과 나란히 서서 찍은 사진, 모택동주석께서 조선과학원 강영창원장을 회견하면서 통역을 담당했을 때의 사진, 최근으로는 2011년 “당의 대외사업 90주년 및 중공중앙대외련락부 건부 60주년 기념대회”에서 당시 습근평 국가부주석과 악수하는 사진도 있었다(리미민 기자,사진제공:양림)

■ 양춘성 프로필

1948년 5월-1950년 10월
길림성 연길현위원회 선전부간사.
1950년 11월-1951년 8월
길림성 연변지방위훤회 선전부간사.
1951년 9월-1952년 8월
중앙대외련락부 조선조연구생.
1952년 9월-1955년 8월
중국인민대학외교계에서 학습.
1955년 9월-1960년 6월
중국과학원대외련락국 과장(파견).
1960년 7월-1969년 5월
중국화학원대외련락부조선조 부조장.
1969년6월-1970년 7월
중앙대외련락부 “5.7”간부학교 2련 부지도원.
1970년 8월-1980년 11월
중앙대외련락부 아시아2국 조선처 처장.
1980년 12월-1988년1월
중앙대외련락부 아시아2국 부국장.
1986년 5월-1987년 5월
조선주재 중국대사관 정무참사, 당위위원.
1988년 2월-1990년 4 월
중앙대외련락부 자료편집중심 부국급연구원.

래원: 연변일보 (편집: 김홍화)
  [본문 프린트]  [편집에게 편지쓰기]  [E-mail추천]
주의사항:
1. 중화인민공화국 해당 법률, 법규를 준수하고 온라인 도덕을 존중하며 일체 자신의 행위로 야기된 직접적 혹은 간접적 법률책임을 안아야 한다.
2. 인민넷은 필명과 메모를 관리할 모든 권한을 소유한다.
3. 귀하가 인민넷 메모장에 발표한 언론에 대하여 인민넷은 사이트내에서 전재 또는 인용할 권리가 있다.
4. 인민넷의 관리에 대하여 이의가 있을 경우 메모장 관리자나 인민일보사 네트워크쎈터에 반영할수 있다.
메모 남기기:

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