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연길현(현 룡정시) 지신구 지신촌에서 태여난 양춘성(한족)은 중국의 걸출한 조선어번역가로서 선후로 조선로동당중앙으로부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2급훈장을 수여받았고 2001년에는 중국에서 첫패로 “중국선임번역가(中国资深翻译家)”라는 영예칭호를 부여받은 인물이다.
“퇴직후 부친은 늘 저를 데리고 함께 룡정시 지신촌 고향집 옛터로 찾아간다고 약속했는데 끝내는 실현하지 못했어요”
일전, 연길에서 만난 그의 아들 양림은 매우 아쉬워하며 말했다.
1951년, 연변지방위원회(延边地委)에서 사업하던 그는 주덕해주장으로부터 달랑 한장의 인사명령장을 받고 낯선 북경으로 올라가 중공중앙대외련락부의 창립사업에 참가하게 되였다.
중공중앙대외련락부가 성립된후 조선어와 일어에 정통한 그는 인민대학 외교계에 입학해 로어를 학습하게 되였지만 졸업하기전 중국과학원에서 조선어인재를 급히 수요하자 얼마간 중국과학원에 차출되기도 했다. 양춘성은 중국과학원에서 맡은바 임무를 출중하게 완성후 다시 중공중앙대외련락부(中联部)로 돌아와 1990년 퇴직할 때까지 사업을 꾸준히 하였다.
만년에는 중공중앙대외련락부에서 국제문제조사연구원으로 조선문제연구사업에 정력을 몰부었고 선후로 “조선당내투쟁정황분석”, “조선로동당주체사상 및 발전과정”, “중조관계와조선전쟁”, “조핵문제와 중조관계”등 연구보고를 편찬했다.
2013년, 양춘성이 향년 85세로 돌아간뒤 아들 양림은 사진을 정리하면서 부친의 인생려정을 탐색해보았다고 한다. 그의 사진첩에는 진귀한 력사적순간을 기록한 사진들이 많았다. 전용렬차에서 조선의 최고수령 김일성과 나란히 서서 찍은 사진, 모택동주석께서 조선과학원 강영창원장을 회견하면서 통역을 담당했을 때의 사진, 최근으로는 2011년 “당의 대외사업 90주년 및 중공중앙대외련락부 건부 60주년 기념대회”에서 당시 습근평 국가부주석과 악수하는 사진도 있었다(리미민 기자,사진제공:양림)
■ 양춘성 프로필
1948년 5월-1950년 10월
길림성 연길현위원회 선전부간사.
1950년 11월-1951년 8월
길림성 연변지방위훤회 선전부간사.
1951년 9월-1952년 8월
중앙대외련락부 조선조연구생.
1952년 9월-1955년 8월
중국인민대학외교계에서 학습.
1955년 9월-1960년 6월
중국과학원대외련락국 과장(파견).
1960년 7월-1969년 5월
중국화학원대외련락부조선조 부조장.
1969년6월-1970년 7월
중앙대외련락부 “5.7”간부학교 2련 부지도원.
1970년 8월-1980년 11월
중앙대외련락부 아시아2국 조선처 처장.
1980년 12월-1988년1월
중앙대외련락부 아시아2국 부국장.
1986년 5월-1987년 5월
조선주재 중국대사관 정무참사, 당위위원.
1988년 2월-1990년 4 월
중앙대외련락부 자료편집중심 부국급연구원.
래원: 연변일보 | (편집: 김홍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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