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통신원 모집 통지]|시작페지 설정
최신고위층동향당건설인사임면부패척결국내경제조선족집거지중앙정책사회인물문화교육과학기획멀티미디어조선뉴스 한국뉴스국제뉴스종합보도 리론관점 스포츠 연예관광생활포토
·길림성 동남부 큰비 혹은 폭우 예상  ·폭우 황색주의보: 료녕 동부와 길림 동남부 부분적 지역 대폭우…  ·우리 나라 60% 초과한 야생참대곰 자연보호구에 편입돼 효과적…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 대만 력사교과서 ‘탈중국화’는 량안대립…  ·연태 대흠도 해역 한 로로선 부두에 갇혀, 현재 구조중   ·태풍 ‘버빙카’ 광동에 상륙, 경주해협에 차량과 인원 체류현상…  ·대만 신북 한 병원서 화재 발생해 9명 사망  ·운남 통해 재차 5.0급 규모의 지진 발생  ·광주: 화남참대곰기지 새끼참대곰 두마리 건강검진 받아  ·운남성 옥계시 통해현 50.0급 규모의 지진 발생  ·올해 강소, 절강, 상해에 왜 태풍이 많은가?  ·항주 요성 서쪽 도로서 교통사고 발생해 9명 사망  ·자연보호구: 장강돌고래의 서식지  ·파양호 진귀한 조류 자주 출몰  ·북방과 운남 등 지역 비교적 강한 강수 있어, 6일부터 북방 …  ·평화방주 피지에 도착해 친선방문 진행  ·가장 귀여운 '특공대', 트렁크내의 금지품 냄새 맡을 수 있어  ·태풍 '종다리' 오늘 상륙 예정  ·련속 20일 고온주의보 발부: 천진, 하북, 료녕, 내몽골 부…  ·이번 고온 어떤 다른점이 있는가  ·홍색유전자 전승, 강군 중임 담당 —— 중국인민해방군 건군 9…  ·외교부: 대만지역 지도자 미국 ‘경유’ 문제 관련 미국측에 엄…  ·전국성 종교단체 공동발의: 종교활동장소에 국기를 게양하자  ·국방부, 성대한 초대회 열어 건군 91주년 열렬히 경축  ·평화방주병원선, 남태평양서 건군 91주년 경축 국기게양식 성황…  ·중국참대곰보호연구쎈터 참대곰 야외도입항목 최초로 쌍둥이 아기 …  ·광주: 백쌍의 세쌍둥이, 참대곰 세쌍둥이 위해 생일 축하  ·동물들을 위한 다양한 더위예방조치  ·팽려원 프리토리아 유아교사양성 졸업식에 참석  ·태풍 ‘안비’ 경진기지역 영향  ·태풍우 엄습...북경 잇달아 3중 조기경보 발부  ·팽려원, 파빌라녀자중학교 참관   ·백서: 청장고원지역은 아직도 지구에서 제일 깨끗한 지역중 하나  ·동물들이 즐기는 다양한 '더위해소법'  ·상해 오송구 배 침몰 구조현장서 5명의 조난자 시신 발견  ·황하 류가협저수지 모래배출 및 방류  ·중국과 크로아티아 첫 경무련합순라 정식 가동  ·사천 강안현 한 공업단지 중대 폭발화재사고 발생, 19명 사망  ·동북범표범국가공원 표식 사용 시작  ·삼협, 매초 6만립방메터에 달하는 홍수 맞이  ·만단의 준비로 초강력 태풍 '마리아'에 대응  ·중앙기상대 침수위험 기상예보 발령  ·외교부, 발리섬려행 중국관광객들에게 합리한 일정안배와 안전주의…  ·길림성 동북호랑이원 자연돌려보내기 활동 개최, 16마리 야생동…  ·여러 지방 퇴역군인사업에 대한 ‘제1 책임자’공정 실시  ·향항 2018년 훈장수여 명단 공포  ·[개혁개방 40년] 도시의 변화된 모습과 변화없는 모습   ·외교부: 일본 전 총리의 한적(汉籍)기증 높이 평가  ·개혁개방 40주년, 옛 물품으로 새로운 변화 증명  ·오문 참대곰 '건건', '강강' 만 2세 맞이 

죽을지언정 굴복하지 않은 로농운동의 선봉자 구양락

2018년 08월 21일 09:22【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강서성 영신현 로계향 남부촌의 마을어구에는 백년자란 오랜 녹나무 세그루가 조용히 서있는데 구양락은 어릴 때 이 세그루의 나무아래에서 공부하고 진보적인 서적들을 읽었다.

구양락의 원래 이름은 모춘방이였고 1900년에 출생했으며 강서 영신사람이다. 1922년에 남창 제1사범학교에 입학하였고 늘《향도》, 《홍등주간》 등 진보적인 간행물들을 읽었으며 조성농, 방지민 등이 령도하는 강서군벌 반대투쟁에 적극적으로 참가했다. 1923년에 사회주의청년단에 가입하고 1924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1925년 1월, 당조직의 파견을 받고 구양락은 길안에 가서 당의 사업에 종사하여 10여명의 당원을 발전시켰다. 그해 9월 그는 영신으로 돌아와 혁명사업을 전개하고 농민운동을 지도했으며 당의 대오를 장대시켰다.

1926년 7월, 중공영신지부가 설립되고 구양락이 지부서기직을 맡았으며 선후로 하자진, 하민학 등 당원들을 발전시킴과 아울러 농민협회와 농민자위군을 조직했다. 북벌군이 영신에 진입한 후 그는 새로운 정권기구-현행정위원회 위원장과 현농민협회 위원장직을 맡았다. 구양락은 광범한 농민들을 지도하여 토호렬신과 지주를 타도하고 소작료와 리자를 낮추는 투쟁을 벌렸으며 또 낡은 풍속과 습관을 고치고 사회의 낡은 관습을 개혁하는 교육을 전개하였으며 신속히 금연운동을 실시했다. 그의 지도하에 영신의 농민, 로동자, 학생 등 각 계층 각 분야가 모두 동원되여 로농운동은 전례없는 고봉기에 들어섰다.

1927년 4월, 중공영신 림시현위가 설립되였고 구양락이 서기직을 맡았다. 4.12반혁명정변 이후 국민당우파분자, 토호렬신들은 토비들과 결탁하고 반동무장을 긁어모아 영신현성을 공격하고 많은 공산당원과 혁명군중을 체포했다. 구양락은 동지들을 조직해 긴급이전시키는 한편 녕강, 안복, 련화 3개 현의 농민무장과 련계하여 7월에 세갈래로 나뉘여 영신현성을 진공해 반동파들을 몰아내고 체포된 당원과 군중들을 구출했다.

7월 하순, 강서성당위의 지시에 따라 구양락은 8.1남창봉기에 참가했다. 봉기부대가 남하한 후 그는 간난신고를 거쳐 상해에 가서 당조직을 찾았고 모춘방으로 이름을 고쳐 호동구에 파견되여 로동자운동을 지도전개했으며 후에 호동구당위 서기직을 맡았다. 그는 로동자군중 속에 심입해 세심하게 선전, 동원하여 중국공산당원과 사회주의청년단원을 발전시켰으며 파업을 조직하고 로동자들의 권익을 수호했다. 노력을 거쳐 호동구의 주요 공장마다 모두 당조직이 설립되였고 정상적인 사업을 회복했다.

1929년 6월, 구양락은 호서구당위 서기로 전근되였으며 여러가지 투쟁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여 호서구의 사업이 새로운 활기를 띠였다. 1929년 9월, 당중앙은 호북성당위를 재구성하고 구양락을 성당위 상무위원 겸 선전부 부장으로 임명하기로 결정하였다.

1930년 2월, 구양락은 호북성당위 서기 겸 조직부 부장직을 맡았다. 4월 5일, 반역자의 밀고로 구양락은 체포되였다. 감옥에서 여러가지 모진 혹형을 당했지만 시종 굴함없이 싸웠다. 적들의 위협과 회유 앞에서 구양락은 “대장부는 죽으면 죽었지 절대 투항하지 않는다!”며 떳떳하게 대답했다. 그가 영용하게 희생될 때 그의 나이는 30살밖에 안되였다.

현재 영신현혁명렬사기념관 입구에는 구양락렬사의 동상이 우뚝 솟아있고 기념관안에는 그의 부분적 유물과 그의 사적을 소개한 자료들이 진렬되여있다. 해마다 청명절과 렬사기념일이 되면 당지의 중소학교 학생들은 이곳을 찾아 추모와 기념행사를 진행하면서 구양락의 동상 앞에 꽃바구니를 진정하고 나라를 위해 몸바친 이 혁명선렬을 추억하고 있다.

영신현혁명렬사기념관 관장 하신평은 “구양락은 확고한 혁명신앙을 가진 전사이다. 그는 혁명사업을 위해 귀중한 생명을 바쳤다. 이와 같은 정신은 초심을 잊지 말고 분발전진하도록 줄곧 후대들을 격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래원: 연변일보 (편집: 김홍화)
  [본문 프린트]  [편집에게 편지쓰기]  [E-mail추천]
주의사항:
1. 중화인민공화국 해당 법률, 법규를 준수하고 온라인 도덕을 존중하며 일체 자신의 행위로 야기된 직접적 혹은 간접적 법률책임을 안아야 한다.
2. 인민넷은 필명과 메모를 관리할 모든 권한을 소유한다.
3. 귀하가 인민넷 메모장에 발표한 언론에 대하여 인민넷은 사이트내에서 전재 또는 인용할 권리가 있다.
4. 인민넷의 관리에 대하여 이의가 있을 경우 메모장 관리자나 인민일보사 네트워크쎈터에 반영할수 있다.
메모 남기기:

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