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 원사 김홍광의 숨겨진 "전설"(5)
2014년 05월 21일 10:59【글자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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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afile/201405/21/F201405211548367436707350.jpg) |
세미나 현장에서 발제하고 있는 김홍광 원사 |
시냇물은 어디로 흘러갈까
대학에 입학할 때 김홍광의 성적은 학급에서 꽁무니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그의 성적은 1학년 때부터 금세 상승선을 그었고 대학기간 계속 고공행진을 했다. 학급 "학습위원"의 이름은 당연히 김홍광의 차지였다. 그에게 반한 학교 지도부는 김홍광을 반 강제적으로 학교에 남기려고 했다.
실은 그 시절 대학교에 교원으로 남는것은 흔치 않은 혜택이었다.
이때 중국과학원 장춘 분원(分院)에서 특별모집을 왔다. 알고 보니 모집자 명단에는 북경대학이나 청화대학 등 유명대학 졸업생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동력부문의 전공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
김홍광에게는 고개 너머 높은 산이 나서고 있었고, 또 그만이 활보할 수 있는 길이 보이고 있었다. "제가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무대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 남는 것을 포기하고 과학원을 선택했어요."
김홍광은 과학자에게 환경이 잘 갖춰져야 하지만 목표 역시 필수적이라고 거듭 말한다. 예전에 그는 일본에 갔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일본의 많은 동업자들은 국제적으로 선두에 있는 프로젝트를 연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족 학자들을 비롯한 중국학자들은 거개 기업에서 후원하는 프로젝트에 매달려 있었다고 한다.
"그들이 생계 때문에 기업의 프로젝트에 몰두해야 하는 게 정말 아쉬웠습니다."
그때 김홍광은 유엔개발계획 방문학자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대우가 상당히 높았다고 한다. 그는 또 도쿄공업대학에서 선후로 보조연구원, 부교수로 있으면서 두둑한 로임을 받았다. 이와 함께 박사공부를 동반하면서 국제 전연적인 연구 과제를 내놓아 일본 문부성의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다.
"뒷근심이 없었기 때문에 오로지 과제의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었지요."
솔직히 김홍광이 들려준 진실한 이야기는 주변에서 들어본 적 있는 그런 평범한 이야기의 연속이었다. 바로 시초의 작고 하찮은 이 이야기들이 한데 모여 나중에 "원사"라는 과학계의 하나의 전설을 만들었던 것이다.
"시냇물이 모여 강을 이루고, 강이 모여 바다가 된다."라는 옛말을 새삼스럽게 상기시키는 대목이다.
(편집: 김홍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