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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항일영웅-박길송

2015년 07월 23일 15:22【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박길송(朴吉松), 1918년 8월 길림성 왕청현 영창동(永昌洞)의 한 가난한 농민가정에서 태여났다. 청소년시기, 공산주의사상의 영향으로 고향의 학생진보단체에 참가하고 1933년 공청단에 가입하였으며 항일구국활동에 참가하였다. 1935년, 반역자의 밀고로 체포되여 수감되였지만 나이가 어려 석방되였다. 감옥에서 나온후 그는 항일련군대오에 투신하여 선후로 전사, 반장, 패장, 련장, 조직과장, 정치부 주임, 지대장 등 직무를 맡았으며 1937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

1938년, 박길송은 항일대오와 함께 철려(铁骊)에 왔다. 그해 10월, 그는 항일련군 전사들을 이끌고 철려이툰 괴뢰자위단을 습격하고 6명의 포로를 잡고 많은 총을 빼앗았다. 1938년 11월, 그는 30여명의 항일련군 전사들과 함께 철령성북의 밀림에서 200여명의 일본토벌대와 만나 며칠간 공방전을 벌이며 적들을 깊은 산속으로 유인한후 일부분의 도망간 적들외에 모두 밀림속에서 섬멸하였다. 1941년 2월 15일, 그는 5명의 전사들을 이끌고 괴뢰경찰옷을 입고 석장(石长)기차역 남쪽 20킬로메터 떨어진 곳에 있는 항일련군부대에 량식을 운반하였다. 그해 4월, 20명의 전사들을 이끌고 항일련군 제6지대장 장광적(张光迪)대오와 회합하여 철려남산에서 항일구국선전활동을 진행하였다. 12월, 그는 선후로 철려서남 연와산(燕窝山), 령운산(凌云山) 일대에서 일본토벌대와 여러차례 전투를 벌였다. 1942년 5월, 그는 25명의 전사들을 이끌고 제9지대 손국동(孙国栋)이 령솔하는 20명의 전사들과 련합하여 왕양기차역(王杨火车站), 왕양철도 경호단분주소(警护团分驻所)와 도산기차역(桃山火车站), 도산철도 경호단분주소(警护团分驻所) 및 지방괴뢰경찰분주소(地方伪警察分驻所)를 습격하여 적들의 무장을 해제시켰다. 1943년 1월 4일, 그는 부대를 이끌고 경성괴뢰경찰서(庆城伪警察署)를 습격하고 밀영으로 돌아오던 도중 경성 일본토벌대와 조우하였다. 전투에서 그는 부대의 전이를 엄호하다가 부상을 입고 적에게 잡혔다. 그해 8월 12일, 박길송은 북안위만감옥(北安伪满监狱)에서 살해당했다. 그때 나이가 겨우 25살 밖에 안되였다.

래원: 인민넷 (편집: 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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