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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국가당안국, 일본전범 자백서 제1편 "스기시타 켄조 진술" 공개

2015년 08월 13일 10:38【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중국 국가당안국은 11일 공식 홈페이지에 "일본 중국 침략 전범 서면 자백서 선집" 제1편으로 스기시타 켄조의 자백서를 공개했다.

개요에 의하면 이는 스기시타 켄조가 1954년11월29일에 한 서면 자백서다. 1901년에 기후 현에서 출생한 스기시타 켄조는 1932년2월에 중국 침략 전쟁에 참가했다.

그가 서술한 부분적 죄행은 아래와 같이 렬거된다.

1932년 2월 3일, 우리는 "상해 천락사(天樂寺) 남쪽으로 약 8킬로메터 떨어진 한 마을에 대해 전부 사격하라는 중대의 명령을 받았다. 중국 인민 30명이 참살된것으로 추측된다."

1932년 2월 5일, 우리는 "중국인을 미워하는 마음"으로 "중국인 100명을 참살하기로 결정"했으며 "부하들에게도 이렇게 명령"했다. "나는 상하이 강만진(江灣鎮) 복단대학(復旦大學) 뒷골목의 북쪽 입구에서 7살 정도 된 아이를 붙잡아 돌 위에 세워놓고 다시 돌로 때려죽인뒤 시신을 강물에 던졌다."

1932년 2월 19일, "륙가교(陸家橋) 화재에서 도망가는 6살 정도 된 아이를 붙잡아 문앞 돌 위에 세워놓고 돌로 때려죽인뒤 불난 집에 시신을 던졌다."

1932년 2월 25일, "상해 강만진 부근 지역의 우물 21개에 세균을 투입했다."

1932년 4월20일, "상해 대장진(大場鎮) 남쪽으로 약 1킬로미터 떨어진 진지(陣地)에서 사단이 데려온 중국 민중 10명을 가상적 목표로 하여 부하 제2소대의 사병 60명이 소총과 경기관총을 리용해 전부 사살하게 했다."

1932년 4월 21일, "나는 상해 오송로(吳淞路) 북쪽에 위치한 영화관 앞 기생집에서 17세 녀성을 권총으로 위협한 뒤 성폭행했다."

1937년10월3일, 하북성(河北省) 요산촌(堯山村) 사하(砂河)를 넘을때 "15세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락타를 끌고 가는것을 발견하고" 부하에게 "권총으로 사살"하라고 지시했다.

1937년 10월 30일, "하북성 찬황성(贊皇城)을 침입했다. 북쪽 성문에서 대묘(大廟)에 이르는 거리에 있는 한 상점에서 나이가 30세쯤으로 보이는 중국 남성을 군도로 가슴을 찔러 살해했다." 그외 "40세쯤 되는 남성 2명을 발견한 뒤 14년식 권총을 련속 4번 쏘아 모두 살해했다."

1937년 11월 5일, "산서성(山西省) 석양현(昔陽縣) 송등촌(松登村)에서 마을 서쪽에서 달려오는 50세 중국 남성 한명을 발견하고" 부하에게 "사살" 지시를 내렸다.

1937년 11월 7일, "유차(榆次)현 서북쪽의 륙보진(六堡鎮)에서 나는 중국인 2명에게 누구냐고 물은 뒤 권총으로 그들을 살해했다."

1937년 11월 8일, 유차현 룡전촌(龍田村)에서 전우가 "갑자기 부상을 입은것을 보고 마을 내부를 전부 조사했을 뿐만 아니라 어부 7명을 체포했다. 그중 한명을 교사부(交師部)에 보낸 외, 기타 6명은 마을 북쪽으로부터 2킬로메터 떨어진 논밭의 나무에 묶어놓고 부하 2개 부대에게 소총과 권총으로 사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나는 그중 2명을 권총으로 직접 사격한 뒤 군도로 재차 찔러 죽였다."

[글/ 신화사 기자 최청신(崔清新) 소태경(肖泰景) 번역/ 신화망 한국어판]

(편집: 김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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