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키리 세이자부로의 1954년 8월17일 자백서 따르면 그는 1915년 일본 니가타현에서 출생했고 1936년 중국침략전쟁 참가, 1945년 8월 포로가 되였다.
주요 만행: 1936년 6월, 할빈 륙군병원에서 "의학 및 신병 교육을 리유"로 다른 일본군과 함께 40세 좌우의 중국 남성을 "생체해부"했다. "인체구조를 연구하기 위해 수술대에서 내장을 꺼내 직접 해부함으로써 피해자를 살해했다."
1936년 12월-1937년1월 사이, 무단장 륙군병원에서 일행과 함께 "독가스 효력을 실험하기 위해" 3명의 30세 좌우 남성을 "외과실험실에 감금한 뒤 가스를 피해자(손을 뒤로 묶은 상태)의 온몸에 바른 뒤 확산상황과 시간을 측정하고 살해했다."
1937년 9월, 찰합이성 천진현에서 "부대가 현성을 공격한 후 칼창과 기총 소사로 1000여명 평민을 사살했다".
1937년8월-11월, "조선녀성을 유인하여 감금한 후 열하성 승덕에서 1명을 강간, 산서성 대동에서 2명을 강간했다".
1942년6월-12월, 산동성 래무에서 "감금중인 조선녀성 1명을 20차례 강간했다."
1943년 9월, "12군 59사단 고위급의 계획에 따라 노서지역에서 콜레라균을 퍼뜨렸다. 유포후 전염효과를 확대하기 위해 임청부근의 위하댐을 3곳 파헤치고 2만 여명(44대대가 조사한 피해자수, 확실한 피해자수는 이를 초과함)을 살해했다."
1942년 12월-1944년 10월, 산동성 태안에서 "감금된 조선녀성 1명을 80차례 강간했다."
1944년 11월, 산동성 청수백 부근에서 "30, 40세 좌우의 남자가 마을에 접근했다. 그때 2명의 일행과 함께 말에 앉아 농민을 뒤쫓은 뒤 찔러 죽였다."
1944년 11월, 산동성 한 마을에서 일행과 함께 "군도의 칼날을 실험한답시고 잡아 온 농민 1명의 목을 잘랐다."
1944년 12월-1945년 3월, 태안현에서 "감금 중인 중국 녀성 3명을 4차례 강간했다."
중국 침략기간, "무기로 가정주부 12명을 협박한 뒤 강간했다." "감금중인 중국 녀성 5명을 강간했다." "감금중인 조선 녀성 9명을 강간했다." 모두 26명을 강간했다.
래원: 국제방송 | (편집: 장민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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