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당안국 "일본 중국 침략 전쟁범 서면 자백서 선집" 제3편
미우라 요시오 진술 공개
2015년 08월 18일 15:44【글자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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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범 미우라 요시오의 1954년 8월 16일 진술에 따르면 미우라 요시오는 1920년 일본 치바 현에서 출생. 1940년 일본 대 중국 침략전쟁에 참가, 1948년 8월 포로가 됨.
주요 죄행:
1941년 8월, 산동(山東)성 태안(泰安)현, 신병 와스 교육소대. "고지 근처 밭에서 일을 하고있는 8명의 농민을 붙잡아 움푹한 웅덩이에 꿇어 앉혔다". "바람이 불어오는 쪽에서 95식 중형 '적통'에 불을 달아 연기를 피웠다", "땅바닥에 엎드려 있는 5, 6명의 피해자를 일으켜 가스를 들이키게 했다".
1941년 9월, 산동성 래무(莱芜)현에서 "은닉한 무기를 략탈하기 위해 농민 2명을 베어죽였다"
1942년 4월, 산둥성 신태(新泰) 현에서 "민가에 뛰어 들어 27, 28세쯤 돼 보이는 중국 녀성을 총검으로 위협한 뒤 강간했다".
1942년 6월, 산동성 장구(章丘) 현에서 "마을 민가에 뛰어들었다. 27, 28세 되어 보이는 중국 녀성이 있기에 구들위에 쓸어눕히고 강간했다". "은닉한 무기를 략탈하기 위해 농민 9명을 집단 참수했다". 8월 하순까지, 숨겨 놓은 무기를 빼앗기 위해 "74명의 농민을 구타하고 고문했다. 그중 11명은 내가 직접 고문하고 학살했다".
1942년 7월, 장구현에서 일당 3명이 "체포한 농민 1명을", "깊이가 약 20미터인 마른 우물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내가 100근 좌우의 돌을 던져 넣어 농민을 잔혹하게 죽였다". 장구현 부근에서 농민 1명을 잡아왔다. "입 위에 수건을 덮은뒤, 20리터에 달하는 찬물을 부어넣었다. 호흡 곤란을 일으키고 배가 부어올랐다. 그리고나서 대변을 가져다 먹게 했다. 그리고 또 멜대로 배와 사타구니, 머리, 발 등을 구타했다. 약 1시간가량 혹독한 고문을 가해 죽게 했다"
1942년 8월, 장구현에서 소탕을 벌일때, "농촌 녀성 1명을 체포" "고문을 한 뒤 당장에서 칼창으로 찔러 죽였다". 이밖에 "이 마을에 뛰어 들어 수색하던중 방에 약 30세쯤 돼 보이는 중국 녀성(임신 중, 약 6개월쯤 되어 보임)을 발견, 강간했다".
1942년 11월, 산동 복산(福山)현. "오하시 다쓰오 상등병과 함께 부근 민가에서 20세 좌우 되어 보이는 녀성을 발견하고 륜간했다".그리고 "밤에 14, 15명의 녀성이 모여 있는곳에 뛰어 들어 총검으로 위협해, 사람들 앞에서 27, 28세 되어 보이는 중국 녀성을 강간했다"
1942년 12월, 산동성 황(黄)현. "한 민가내에서 20세 좌우 되는 중국 녀성을 총검으로 위협 주고 강간했다"
1943년 2월, 관도(馆陶)현에서 30세 좌우의 농민(남) 1명을 체포해 "총검으로 찔러 죽였다".
1944년 10월 상순, 태안현에서 부하를 시켜 "13명 중국 국민을 팔로군과 내통한다는 핑계로" 총살했다. 10월 중순, 일당 1명과 함께 중국 국민 1명을 "팔로군과 내통했다는 핑계로" "총살했다"
번역:김선화 감수:전영매 [CCTV.com한국어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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