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국가당안국(기록보관소)은 17일, 공식 홈페이지에 《일본 중국 침략 전범 서면 자백서 선집》 제7집: 야마무라 카즈마를 발부했다.
제7집의 개요에 따르면, 야마무라 카즈마가 1954년 8월 11일에 제출한 서면 자백서에 따르면 그는 1919년, 일본의 야마구치현에서 태어났으며 1940년에 중국 침략 전쟁에 참가, 1945년 9월에 포로됐다.
그의 중요한 죄행은 다음과 같다:
1940년 6월, 호북(湖北)성 형문(荊門)현에서 4명의 중국 농민을 살해하는 데 동참했다.
1942년 8월, 호북성 응산(應山)현에서 "18살 좌우의 중국 녀성 1명을 강간했다".
1943년 2월, 호북성 의창(宜昌)현에서 해부실험을 위한 경계근무를 담당했고 신타니 위생 병장이 중국 농민(35살 좌우의 남성) 1명에게 "수은을 주사해 살해한 뒤 군의관 야마카와가 날카로운 칼로 맹장을 끊고 장을 꺼냈고 오장을 하나하나씩 도려내며 설명했다".
1943년 4월, 호북성 의도(宜都)현에서 중대장이 "련대 본부에서 중국 농민 모양의 포로(35살 좌우의 남성) 1명을 데려왔다", "신병들에게 총검술 훈련교육을 시키기 위해 그를 중대 마당앞 나무에 묶은 뒤 중대장이 오타 나오카즈에게 찔러죽일것을 명령했다. 그리고 나서 신병들이 순서대로 줄서서 총검으로 찌르기 훈련을 하게 했다".
1943년 5월, 의창현에서 민가에 침입해 집주인에게 "밖에 가 술을 사오라 한뒤 그의 아내(20살 좌우)를 실내에 끌어들여 강간했다"; 23살 좌우의 중국 녀성을 이른바 물자거래소 창고로 속여서 데리고 가 "강간했다". 22살 좌우의 중국 녀성 1명을 "돼지우리로 강제로 끌고가 강간했다". 22살 좌우의 중국 녀성 1명을 공소처 근로자 기숙사로 속여서 데리고 가 "공소계 보좌관 미야카와다가 간음하게 한뒤 나도 륜간했다".
1943년 7월, 이두현에서 제233련대 제1중대장 타테야마 중위가 포로된 4명의 중국 평화 인민으로 병사들에게 참살교육을 시켰다. "하나오카 견습 사관, 하타베 군조, 아키모토 타츠오 군조, 야스모토 후보생에게 일본 군도로 한명씩 참살할것을 명령했다."
1943년 8월, 의도현에서 30살 좌우의 중국 녀성 1명을 "강간했다". 그외 상병 카와무라에게 명령해 서른 대여섯살돼 보이는 남성의 눈을 가리게 하고 "50메터 밖에서 보총으로 그를 쏴죽이게 했다".
1943년 12월, 의도현에서 50살 좌우의 중국 녀성 1명을 "보총으로 위협해 강간했다"; 의도현 신강구(新江口) 근처에서 "30살 좌우의 중국 녀성 1명을 총검으로 위협해 강간했다". "20살 좌우의 중국 녀성 1명을 보았고 야마모토 요시오가 간음하게 한뒤 나도 륜간했다". 30살 좌우의 녀성 1명을 상대로 "분대원 타키 유우 이치에게 명해 총검으로 녀성이 바지를 벗게 위협한 뒤 5센치미터 굵기에 15센치미터 길이의 고구마를 여성의 하문에 넣게 했다. 그렇게 련속 네차례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며 모욕, 폭행한뒤 고구마를 하문에 넣은채 내버려두고 자리를 떴다".
1944년 7월, 호남(湖南)성 형양(衡陽)현성 상강(湘江) 맞은편 기슭에서 "야스 무라 사다지와 오카모토 한에게 명해 중국인민들을 체포해 략탈한 돼지를 나르게 했다. 그들은 피난하는 중국 녀성들을 뒤쫓아 권총으로 위협해 강간했다".
1944년 8월, 호남성 뢰양(耒陽)현에서 "차나무 숲속에서 피난하는 4명의 중국 녀성을 보고 강간하려는 의욕으로 올라갔다. 나는 골짜기 방향을 향해 17살 좌우의 녀성 1명을 뒤쫓았고 이 녀성은 30메터 높이의 골짜기에서 떨어져 죽어버렸다. 나머지 녀성 3명도 도망치고 있었고 나는 23살좌우의 녀성 1명을 붇잡아 권총으로 위협한뒤 강간했다". 그외 뢰양현성 남쪽에서 23살좌우의 중국 녀성 1명을 "권총으로 위협한뒤 강간했다". 또 25살 좌우의 중국 여성 1명을 발견했고 "권총으로 위협한뒤 그를 끌어내 강간했다". 또 강간을 목적으로 어느 마을에 침입해 25살, 30살 좌우의 중국 녀성 두명을 "폭이 20메터에 달하는 강으로 내몰아 익사시켰다".
1944년 8월 하순, 호남성 형양현에서 식량과 여물을 약탈할 당시 "30명 중국 농민이 반항에 부딪쳤다.", "보총으로 사격해 농민 4명을 죽였다". 형양현에서 "나는 중국 평화 녀성 4명이 집안으로 도망치는것을 보았고", "바로 실내로 쳐들어가 18살 좌우의 녀성 1명을 붙잡은뒤 권총으로 위협해 나머지 3명을 집밖으로 쫓아내고 전자를 강간했다". 어느날에는 중국 복장을 입고 27살 좌우의 여덟 아홉살 정도의 남자아이를 데리고 피난하는 녀성 1명을 뒤쫓아 "권총으로 위협해", "강간했다". 또 중국 복장을 입고 민가에 쳐들어가 13살 좌우의 녀성 1명을 "권총으로 위협해 강간했다". 또 20살 좌우의 녀성 1명을 "권총으로 위협한뒤 강간했다". 그외 "23살좌우의 중국 녀성 1명이 밭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고 권총으로 위협해 민가로 데리고 가서 야마다 쇼우 이치가 강간하게 한뒤 나도 륜간했다".
1944년 12월, 광서장족자치구(廣西壯族自治區) 계림(桂林)현에서 류주(柳州)사이의 마을에서 40살 좌우의 중국 남성 한명을 발견했고 "나는 50미터 밖에서 총을 한방 쏴 그를 살해했다". 류주시에서 민가에 침입한 뒤 "40살 좌우의 중국 녀성 1명을 발견했고 바로 권총으로 위협해 강간했다". 또 한 민가에 쳐들어가 "25살 좌우의 녀성 1명을 강간했다". 물자를 략탈하기 위해 중국 복장을 입고 민가로 쳐들어가 3살배기를 안고있는 25살좌우의 중국 녀성 1명을 "권총으로 위협한 뒤" 강간했다. 그리고나서 "오오타키 한이 륜간하게 했다".
1945년 4월 13일, 호북성 곡성(谷城)현에서 "민가 문어구에 20살 좌우의 중국 녀성 1명이 서있는 모습을 보고 총검으로 위협한뒤 실내로 끌고들어가 강간했다".
1942년 7월~1945년 4월, 호북성 응산현, 의창현, 의도현, 당양(當陽)현, 한구(漢口)시, 형문현과 호남성 상담(湘潭)현, 장사(長沙)시의 "이른바 '위안소'에서 27명 여성을 43차례 강간했다".
래원: 국제방송 | (편집: 임영화) |
주의사항: 1. 중화인민공화국 해당 법률, 법규를 준수하고 온라인 도덕을 존중하며 일체 자신의 행위로 야기된 직접적 혹은 간접적 법률책임을 안아야 한다. 2. 인민넷은 필명과 메모를 관리할 모든 권한을 소유한다. 3. 귀하가 인민넷 메모장에 발표한 언론에 대하여 인민넷은 사이트내에서 전재 또는 인용할 권리가 있다. 4. 인민넷의 관리에 대하여 이의가 있을 경우 메모장 관리자나 인민일보사 네트워크쎈터에 반영할수 있다. |
많이 본 기사 | 24시간 | 48시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