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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넷 조문판>>김학철>>《항전별곡》

김학철선생 탄생 100주년 특별련재—《항전별곡》(9)

2016년 04월 29일 13:59【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7. "권식가"


또 일요일이 돌아왔다. 모두들 짝을 무어 거리에 나가는데 나는 대견하게도 강진세작은아씨와 짝을 뭇게 되였다. 본디 그와 나의 성격은 팔팔결 달라서 두 극단이라 해도 좋을만하였다. 나는 소문난 덜렁쇠였지만 그는 언제나 새색시같이 안존하고 또 침착하였다. 아무도 그가 성내는걸 본 사람이 없으니까 말다툼 같은거야 더 말할나위도 없다. 하건만 그와 내가 뜻이 맞는 친구로 되였으니 세상일은 헤아리기 어렵다 아니할수 없다. 하긴 그와 내가 다 술담배를 쓴 외 보듯하고 사탕, 과자를 즐겨먹는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잖으면 둘이 다 문학서적을 탐독하는때문인가? 하여간 그와 내가 뜻이 맞은것만은 사실이였다. 당시 나는 디켄즈의《두 도시의 이야기》라든가 오경재의《유림외사》라든가 하는 책들도 다 그의 소개를 거쳐서 비로소 읽어보았다. 그 분야에 있어서—아니, 모든 분야에 있어서—그는 나의 어엿한 선배였다.

그날 우리는 시내 번화가에 위치한 고급료정—강남주루의 문앞을 지나다가 마침 안에서 나오는 세 동급생과 맞닥뜨렸다. 그중 한 사람—박문(박무)은 벌써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김만(김창만)이와 리조(리준)에게 곁부축을 받으며 걸어나왔다. 한데 그 박문이가 거슴츠레한 눈을 들어 잠시 여겨보더니 이내 우리를 알아보고 입을 비죽거리며 시까스르는것이였다.

“어, 까마귀가 해오라기하고 짝을 지었군.”

리조가 곁에서 웃으며 우리에게 손을 내저었다.

“내버려두고 어서들 갈길이나 가십시오. 이 친구 오늘 든든히 취했습니다.”(경상도친구인 리조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깍듯이 경어를 쓰는것이 특색이였다.)

“뭐가 어째? 취하긴 누가 취했단 말이야?”

하고 박문이는 잡힌 팔죽지를 뿌리치려고 애쓰며 두덜거렸다.

“좀 똑똑히 말을 하란 말이야.”

우리가 웃으며 제 갈길을 가는데 등뒤에서는 박문의 떠드는 소리가 여전히 들려왔다.

“다시 들어가자, 이왕 마실바엔 한번 통쾌하게 마셔야지!”

그들 셋은 다 광동 중산대학에서 전학을 해왔는데 그중의 박문이는 술고래이자 담배귀신이였으나 김만이는 밀밭만 지나가도 취하고 담배대만 보아도 가슴이 답답해날 지경의 청교도요 고행승이였다. 그는 다만 교제적인 례의로 이러저러한 리태백의 후예들과 휩쓸리는체할뿐이였다.

김만이는 함경남도 고원사람이고 리조는 경상남도 동래사람, 그리고 박문은 황해도 해주사람이였다. 당시 우리 중대에는 오직 한 사람 상해 동제대학에서 전학을 해온 리강민이만이 중공당원으로 되였으며 또 항일의 봉화가 타오르는 태항산에서 오륙년씩 가렬한 전투의 세례를 받았다.

우리 그 학교에서는 비록 휴일이라 할지라도 외출을 한 학생들은 반드시 기대에서 기를 내리기전에 돌아와야 하였다. 한데 이날은 어찌된 영문인지 저녁식사시간이 다되도록 중대에 사람 하나가 모자랐다. 점검을 해본 결과 그 모자라는 하나가 다름아닌 박문이라는게 드러났다. 알고본즉 그는 김, 리 두 사람에게 끌려서 일단 돌아왔다가 술이 술을 부르는 바람에 다시 몰래 빠져나간것이였다.

식사시간에 우리가 이미 “시작!”을 하였을 때에야 비로소 박문은 비트적거리며 식당안으로 들어왔다. 직일관은 그 꼴을 보자 얼른 손에 들었던 저가락과 밥공기를 내려놓고 일어나 가서 낮은 소리로 꾸짖듯(중대장을 기탄하여) 서라고 하였다. 박문은 그 명령에 복종하여 걸음을 멈추고 서기는 하였으나 군인으로서 상관앞에 섰을 때 의당 한데 모아야 할 두다리는 모으지를 않았다. 직일관은 그 군기에 어긋나는 꼬락서니를 보고 더욱 성이 나서 매몰차게 꾸짖었다.

“어째 차렷을 안해? 차렷!—”

그러나 지각을 한 주정뱅이는 차렷을 할 대신에 도리여 우습강스러운 동작으로 상대편의 다리를 가리키며 대꾸질을 하는것이였다.

“당신… 당신은 어째 차렷을 안하지? 당신 먼저… 차렷!”

나는 식탁에 엎드려서 웃음을 참느라고 혀를 깨물고 눈물까지 내였다.(하긴 원래 웃음이 헤픈축이였지만) 내 비슥맞은편의 강진세는 못 본체 고개를 소곳하고 앉아서 밥만 먹는데 기실은 그도 가까스로 웃음을 참는것이 환히 알리였다.

직일관은 부아통이 터져서 박문더러 당장 밖에 나가 두시간 동안 벌을 서되 잠시도 쉬지 말고 계속 “차렷”을 부르라고 명령하였다. 그리고 손목시계를 내밀어보이며

“지금 다섯시 15분이니까… 일곱시 15분까지 계속 불러야 해, 알았나? 목청껏 불러!”

그리하여 우리는 창문밖에서 박문주정뱅이가 목청이 떨어지라고 계속 불러대는 차렷소리를 권주가 아닌 “권식가”로 들으며 그 한끼의 저녁밥을 다 먹어야 하였다.

그후 항일전쟁의 어려운 시련의 나날에, 이날 박문의 “권식가”를 들으며 식사를 한 우리 100여명 동급생들중의 절대다수는 옳바른 혁명의 길에 들어서서 중국공산당 및 그의 영용한 군대와 더불어 생사고락을 같이하며 끝끝내 항일전쟁의 승리를 전취하였다.

허나 우리와 손을 나누고 딴 길을 선택한 극소수의 사람도 없지는 않았다. 그중의 한 례로 장의를 들수 있다. 장의는 상해 대하대학에서 전학을 해온 학생인데 그의 부친(조선사람)은 국민당군대의 공군대좌였다. 그리고 그의 누님은 무한대학을 나온 얼굴이 밉게 생긴 로처녀였다. 한데 장의는 군관학교의 졸업장(출세의 보증서)을 받아쥐자 곧 우리와 갈라져서 제 애비를 따라갔다. 그는 미구에 국민당에 들고 또 얼마 아니하여 국민당의 벼슬아치로 되였다. 그후에 그가 어찌되였는지, 그의 누님은 또 어찌되였는지 나는 모른다.

래원: 인민넷 (편집: 김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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