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거릿 대처(玛格丽特·撒切尔, 87) 전 영국 총리가 8일(현지시간) 오전 뇌졸중으로 숨졌다.
대처 전 총리의 대변인인 팀 벨 경은 "대처 전 총리가 오늘 아침 뇌졸중으로 운명했다고 가족들이 밝혔다"며 "이런 소식을 전하게 돼 매우 슬프다"고 말했다.
벨 경은 스카이뉴스를 통해 "이제 그를 다시 볼 수 없게 됐다"며 "대처는 영국의 가장 훌륭한 총리중 한명이였다"고 평가했다.또 "대처는 국민의 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해 자신을 바쳤으며 영국을 사랑했다"고 덧붙였다.
영국 왕실은 이날 비보에 엘리자베스 2세 영국 녀왕이 크게 슬퍼했으며, 유족에게 위로의 뜻을 전달했다고 발표했다.영국 정부는 대처 총리의 장례 절차는 본인의 유언에 따라 국장으로 치르지는 않지만, 과거 녀왕의 모친과 다이애나비 장례 때와 같은 수준에서 준비키로 했다고 밝혔다.
존 메이저 전 총리는 "고인은 경제 개혁과 포클랜드 전쟁 승리 등 다른 지도자들이 이루지 못한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며 "진정한 힘을 지닌 인물이었다"고 회고했다.
야당인 로동당의 에드 밀리밴드 당수는 "대처 전 총리는 로선은 달랐지만 전 세대에 걸쳐 영국의 정치를 바꾼 특출한 지도자였다"고 조의를 전했다.
영국 최초의 녀성 총리로 지낸 대처는 1979년부터 1990년까지 세 차례나 총선을 승리로 이끌며 "철의 녀인"으로 불렸다. 로동당 내각이 의회에서 불신임결의를 당하고 해산된 직후인 1979년 총선에서 승리함으로써 영국 최초의 녀성 총리에 취임하였다.
과감한 사유화와 로조의 와해, 교육·의료 등 공공분야에 대한 대폭적인 국고지원 삭감 등 획기적인 정책을 추진한 "대처리즘"으로 찬사를 받기도 했지만, 독단적인 정책 운용으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1990년 유럽통합에 반대하다가 당 지도부의 반발에 부닥쳐 자진 사임했으며 1991년 5월 정계를 은퇴했다. 1992년 남작 작위를 받고 상원의원으로 활동을 재개했으나 10여년 전 뇌졸중 증세로 대외 활동을 자제해왔으며 지난해에는 방광 질환으로 수술을 받기도 했다.
마거릿 대처(玛格丽特·撒切尔, 87) 전 영국 총리는 1948년 옥스포드대학교 화학전공을 졸업했다. 대학시절 보수당에 가입했으며 옥스포드대학교 보수당 협회주석을 담임했다. 1959년 보수당 하원 의원으로 당선됐으며 1975년 2월 보수당 당수로 임명됐다. 1979년 5월 대선에서 승리, 영국 역사상 첫 여 총리로 됐다. 1983년 6월과 1987년 6원 총리직을 연임했다.1990년 11월 퇴임하고 1992년 6월 종신귀족으로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