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중국이 창건된후 중공중앙은 과학기술발전에 고도의 중시를 돌렸다. 1956년 1월, 중공중앙은 지식분자문제에 관한 회의를 소집했으며 회의에서 주은래가 “지식분자문제에 관한 보고”를 하고 전당과 전국인민에게 “현대과학으로 진군”하라고 호소했다. 모택동이 회의 마지막날에 연설을 발표해 전당에 과학기술지식을 힘써 학습하여 세계과학의 선진수준을 신속히 따라잡기 위해 분투할것을 호소하여 광범한 과학기술사업자들을 크게 고무해주었다. 회의후 전국적으로 과학으로 진군하는 열조가 신속히 일었다. 광범한 과학기술사업자들은 참답게 과학기술을 탐구하고 용감히 과학의 고봉에 올랐다. 동시에 국가의 대폭적인 지지로 관련 부문에서는 계산기연구제작사업에 착수했다. 각고의 노력을 거쳐 1958년부터 1959년 사이에 련이어 중국 첫 소형전자관계산기와 대형전자관계산기를 연구제작했다. 이것이 중국 제1대 계산기이다. 1965년, 중국은 자체로 계산속도가 초당 5만차에 달하는 3극소자전자계산기를 연구제작하는데 성공했다. 이것이 중국 제2대 계산기이다. 20세기 70년대초, 상해에서 계산속도가 초당 11만차에 달하는 중국의 첫 집적회로 통용디지털전자계산기 시험제작에 성공했다. 이것이 중국 제3대계산기이다. 중국이 초당 운산속도가 10만차 이상에 달하는 전자계산기를 제조할수 있다는것은 계산기공업의 거족적인 발전을 표징한다. 1973년, 북경에서 운산속도가 초당 100만차에 달하는 중국의 첫 집적회로전자계산기 시험제작에 성공했다. 이어 이 계산기는 3000시간 이상의 시험계산과 운행을 통해 성능이 안정되고 질이 량호하여 예정한 설계요구에 도달했다. 이는 중국과학기술발전에서 하나의 중대한 성과이며 중국전자계산기발전에서 하나의 중요한 리정표이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전자계산기발전은 나날이 새롭게 변하고 부단히 새로운 업적을 창조했다.
래원: 연변일보 | (편집: 김홍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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