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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실력파 청년화가 리산호의 작품세계를 들여다보다

2015년 08월 12일 11:01【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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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산호 략력】

1981년 4월 24일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태여남

학습경력:

1999년8월~2003년7월 중국 연변대학교 미술대학 유화전공

2005년3월~2007년8월 홍익대학교 대학원 회화과 석사학위 취득

직무:

2000년9월~2002년9월 연변대학교 미술학원 학생회 회장

2005년6월~2007년7월 주한중국대사관류학생총회 미술동맹회 회장

2008년5월~2009년12월 북경 쿠아트센터 예술총감독

2010년1월~현재 중국조선족청년미술동맹회 회장

2012년10월~현재 북경송좡환구공예품유한회사 대표

구학경력:

어려서 3살에 오른손을 잃고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불우한 유아기를 경험. 이후 그림그리기를 좋아한다는것을 발견한 어머니는 4살때 황길수 선생님의 집에서 개인지도를 받게하였으며 6살부터는 화룡시 연극원 미술보습반에 다니기 시작. 9살때 이미 석고상 소묘과정을 전부 마치고 수채화, 공예, 조소 등 다양한 미술장르를 학습,경헙 하였음. 1991년 한국에서 개최된 세계청소년미술대전에서 최우상을 받았으며 1993년 중국청소년서화가신동백과대사전에 작품이 수록됨. 13살때 부터 더 많은 미술공부를 위하여 연변전역를 돌아다니면서 수소문 하여 미술 선생님을 찾아다녔었고, 18살 되던 해에 미술대학 진학을 위하여 김동운 교수님의 추천과 최헌기 작가님의 도움으로 천진미술대학의 손건평(孙建平)교수님을 찾아서 떠나게 됨. 반년간의 가르침을 받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연변대학교 미술학원에 최우수 성적으로 입학하였으며 4년간의 학업을 마치고 한국 류학의 길을 결심함. 한국에서 현 중앙미술대학 김일룡 교수님의 추천으로 홍익대학교 회화과에 입학하게 되었으며, 이두식 학장님과 신종식교수님의 가르침하에 4년간의 류학과정을 원만히 마치고 귀국함. 2007년 7월 북경 최헌기 작가님의 작업실에서 1년간 함께 생활하면서 많은 훌륭한 선배작가들과의 견습기회를 가지게 되었으며 현재 중국 송장 예술구에서 미술창작의 길을 견지하고 있음.

1. 언제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까? 미술창작에 종사한 경력을 알고싶습니다.

그건 저의 아주 특별한 경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3살때 한차례 불행한 사고때문에 엄지손가락을 뺀 네 손가락이 잘려나갔어요. 4살때 어머니는 엄지손가락만 남은 저의 오른손을 잡고 화룡시영화관에 있는 황길수선생님의 미술반으로 찾아갔어요. 제 기억 속에 당시 미술반에는 모두 저보다 나이가 몇십세는 족히 많은 어른들이 낡은 군용외투를 입고 그림을 배우고있었지요. 나중에 제가 연변대학교 미술학부에 입학해서야 그들이 바로 문화혁명이 끝난 뒤 제1기 미술전공 입시생들임을 알게 되였습니다. 그 중에는 지금의 연변대학교 리승용원장님도 계셨고 전 조소과(雕塑专业) 김춘일교수님도 계셨습니다.

난로를 둘러싸고앉아 “괴물”을 그리는 기괴한 아저씨군단과 저는 그때부터 같이 그림을 그리게 되였어요. 당시에 저는 어머니가 옆에서 지켜보는가운데 아동그림책에 있는 사과며 오리며 비행기 같은것을 그렸는데 처음에는 연필 잡을줄도 몰라서 자꾸 연필심을 끊어먹었지요. 어머니는 제옆에서 계속해서 연필을 깎아주다가 나중에는 선생님이랑 한가지를 의논했는데 그것은 바로 제가 그림 한폭을 완성할 때마다 옆의 극장에 가서 영화를 한편 볼수 있게 해주는것이였습니다. 이 보상을 얻기 위해 저는 제 예술인생에서 가장 어마어마한 도전을 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한손으로 연필을 깎는것이였습니다. 결국 약 2개월이 지나서야 저는 드디여 영화 한편을 보게 되였습니다. 내용은 잘 기억되지 않지만 무지하게 깨고 부수며 싸우는 액션영화였는데 나중에야 그것이 “곽원갑(霍元甲)”이라는 영화였음을 알게 되였지요.

어렸을 때의 이런 기억들은 저의 유년시절 내내 이어졌는데 7살 되던 해에 저는 또 하교길에 기이하고 충격적인 경험을 하게 되였습니다. 그것은 어느 여름날 저녁이였습니다. 하늘에는 저녁노을이 예쁘게 물들어있고 작은 개울가 옆에는 저보다 수십살은 많음직한 아저씨들이 앉아서 컬러로 된 “괴물”을 연출해내고있었어요. 저는 그들에게서 그 비법을 배우기로 결심했어요. 그러나 그들은 저에게 한가지 조건을 내걸었는데 그것은 바로 자전거타기였답니다. 그리하여 제 인생의 두번째 도전, 바로 한손으로 자전거타기 도전이 시작되였어요. 약 한달뒤에 저는 그 컬러”악마”들을 배울수 있었고 그것이 수채화임을 알게 되였습니다. 몇년간의 고된 련습끝에 12살 즈음 되였을 때 저는 그 당시 선생님들을 초월하게 되였고 저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제자들도 두게 되였답니다. 당시 자전거로 20~30리 되는 길을 타고 산이며 협곡이며 다니면서 각종 모험도 많이 했는데 그 영광의 상처자국들이 지금도 몸에 남아있답니다.

그뒤 대학입시준비를 할 때는 연변대학 김동운교수님과 천진미술원 손건평교수님, 입시반 김용철교수님 등의 가르침을 받아 연변대학 미술학부 유화전공에 합격하게 되였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할 즈음에 학교에서 전국예술고찰과정으로 장춘 원동미술관에 가서 참관하게 되였는데 제 눈에는 어떻게 봐도 금상과 은상 작품이 리해가 안되였습니다. 오히려 저는 동상작품(리철호교수)이 더 수긍되였고 은상이나 금상보다 더 잘 그렸다고 생각되였습니다. 두번째로 참관한 곳은 오래동안 기대하고 갈망해온 전국미술전이였는데 이것 또한 금상작품이 도통 리해되지 않았습니다. 그 뒤에는 송장(宋庄)에 가서 박광섭, 리용 등 선배님들의 화실을 탐방했는데 저는 더욱 혼란스러워졌지요. 그때서야 저는 크게 뭔가 깨닫는바가 있었습니다. 제가 여태껏 배워온것들이 오히려 이들 예술작품을 리해하는데 큰 방해가 되여왔음을 말이지요.

이 충격을 안고 저는 계속해서 심각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러다가 결정한것이 바로 한국행입니다. 당시 저는 넉넉하지 않은 가정환경에 자비로 류학하고 생활비까지 충당하려면 최대한 짧은 시간 안에 모든것을 마치고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한국은 언어적인 측면이나 생활적인 측면이나 바로 그런 조건에 부합되는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선생님들은 모두 한가지 리유때문에 저를 만류했습니다. 남들보다 부족한 한손으로 이국땅에 가서 어떻게 시험을 볼것이며 또 높은 학비와 생활비는 어떻게 감당할것이냐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런 념려들이 오히려 저한테는 더 큰 도전의지를 불러 일으켜서 저는 제 인생의 세번째 도전인 “한손으로 한국 류학하기”를 실천하기로 결심하게 되였습니다.

홍익대학교 들어가서 연구생 첫 수업때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분석하고 창작방향에 대해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저는 이제껏 이와는 상반된 교육을 받았던터라(제가 기억하기로는 저의 학부 교수님들은 그림은 입으로 하는것이 아니라 눈으로 하는것이라고 노상 말씀하셨지요) 대중앞에서 무언가를 발표한다는것은 영 어색한 일이였습니다. 무엇을 말해야 할지도 몰랐고 머리속은 이미 하얀 백지장이 되였습니다. 제가 하는 얘기를 그들은 하나도 못 알아들었고 그들이 하는 얘기 또한 제 머리속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어요. 결국 교수님은 저에게 “중국 촌놈”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셨어요. 이 비극적인 순간을 저는 아마도 영원히 잊지 못할것입니다. 중국에선 그토록 촉망 받았던 미술인재가 한국에 와서 한순간에 “미운 오리새끼”로 전락하다니! 그때부터 저는 저에게 “새도 아니고 쥐도 아닌 박쥐”라는 또 다른 별명을 지어줬습니다. 이 또한 저의 예술인생에서 자기 정체성을 발견하는 순간이기도 했어요. 그때 저는 비로소 한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였는데 그것은 “삶에서 손 하나가 없는것이 문제가 아니라 사고할수 있는 머리가 없는것이 더 큰 문제이다”라는것입니다.

그리고 저와 최헌기화가님의 인연은 1998년으로 거슬러올라갑니다. 당시 저는 미술입시를 준비하고있었고 김동운교수님은 저에게 명문미술학원에 들어가려면 “고수”의 가르침이 필요하다며 그 당시 미술계에서 명망 높은 최헌기선생님을 추천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최헌기선생님은 당시 중요한 작업때문에 은거중이였고 사람들과의 접촉을 끊고있었던터라 저를 직접 가르치지 못하는 대신, 천진미술학원의 손건평선생님에게 저를 소개시켜줬습니다. 그렇게 서로 한번도 뵙지 못한 상태에서 2004년, 한국에 류학 와서야 저는 최헌기선생님이 마침 한국에서 전시준비를 한다는 소식을 우연찮게 전해 듣게 되였습니다. 기쁘고 떨리는 마음을 주체 못한채 바로 전시장으로 달려가 6년만에 저는 그렇게 보고싶었던 최헌기선생님과의 일면식을 치르게 되였습니다. 그후부터 저희는 줄곧 련락을 이어왔으며 석사졸업후 북경으로 간것도 최선생님한테서 그가 이룩해놓은 예술경험과 사회경험을 배우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는 제가 나중에 전시를 총괄하고 감독하는 일을 하게 된것과 상당히 밀접한 련관성을 갖습니다.

최선생님의 작품과 예술에 대한 시각은 제 또래의 젊은 조선족예술가에게 아주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최선생님은 현대의 다양한 재료를 부단히 시도하고 또한 평면작품중 회화언어에 대한 한계를 돌파하려고 부단히 노력해왔습니다. 선생님과의 인연은 이렇게 오늘까지 이어져내려왔는데 선생님은 저의 작품방향에 대한 조언과 비평들을 아낌없이 주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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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원: 인민넷(편집: 김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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