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진(金毅振), 그의 이름 석자 앞에는 타이틀이 참 많다. 북경일진위업투자자문회사(투자 및 컨설팅)와 북경금협윤과학기술발전유한회사(자동차도장, 복원 가맹업), 북경금협윤설비제조유한회사(기계제조), 대륙주식유한회사(투자), 제주중국성개발(부동산개발)의 동사장, 북진국제여행사 부사장에 북경조선족기업가협회 회장, 중일한경제발전협회(외교부 산하)부회장, 중한기업연의회(전국상공련 산하)부회장, 전국조선족기업인 골프협회 회장, 명예회장, 중국조선민족사학회 이사,중앙민족대학 특별초빙교수 ,민족교육발전기금회 리사장 등을 역임해 오면서 지금까지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왔다.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것 같은 이 많은 일들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올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협회설립까지의진통
2011년 6월 8일 설립된 북경조선족기업가협회는 올해로 설립 3주년을 맞이한다. 하지만 협회 설립까지는 적잖은 진통을 겪었다.
수도 북경에서 조선족이 군체로 생활하기는 사실 50년대부터였다. 개혁개방과 더불어 80년대부터는 지방에서 상경해 사업을 시작한 기업인을 비롯한 많은 기업인들이 나타났다. 불완정한 통계에 의하면 지금은 약 10만명에 달하는 조선족이 북경에서 생활하고 있다. 하나의 성숙된 조선족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또한 상당한 기업인 군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경은 단일 민족의 공식적 단체는 허가가 잘 나오지 않는 등 특수한 객관적인 원인 때문에 그동안 조선족기업인 단체를 출범하지 못했다.
동북3성, 예를 들면 연변이나 심양, 할빈 등 지에서는 보다 일찍 공식적인 조선족기업인 단체를 확보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매번 전국적인 조선족정재계포럼이나 기타 행사를 조직하거나 참가할 때면 입장이 난처한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김의진은 말한다. 북경의 기업인들이 이끄는 기업은 타지역과 비해 제조업이 상대적으로 적은 반면 비지니스의 거의 모든 영역에 진출해 있으며 머리로 승부를 거는 IT를 포함한 하이테크산업,무역과 문화산업, 서비스업이 발달한 특성이 있다.
또한 북경의 유수의 대학의 조선족 졸업생들이 수도에 남아 창업의 꿈을 펼치면서 북경의 조선족 기업인들은 전반적 교육수준이 높은 편이다. 이같은 수도에 기업인단체가 없다니.
김의진은 이러한 현실을 개변하기로 마음먹고 주변의 뜻있는 기업인들을 모아 수도의 이미지에 걸맞는, 사회 전체를 통합할 수 있고 높은 차원의 품위를 지향하는 협회를 만들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왔다. 여러 가지 시도 끝에 당시 외교부 산하의 중일한경제발전협회에서 부회장직을 맡고 있던 김의진은 2011년 6월 8일 이 협회 소속 단체로북경조선족기업인연의회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후에는 행사의 편리와 이미지 등을 고려하여 김의진은 또 북경의 소수민족민간행사를 관장하고 있는 북경시민족연의회와 여러 차례 교섭을 거쳐 끝내 북경조선족기업가협회의 비준, 설립을 도출해내여 오늘의 두개의 타이틀을 확보하게 된다.
래원: 국제방송 | (편집: 김성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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