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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클린톤 걸어온 길

2015년 04월 14일 14:13【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공부 잘하는 소녀, 정치의 중요성에 눈 뜬 젊은 법조인, 주지사부인과 대통령부인, 상원의원, 국무장관, 그리고 두번째 대통령선거 도전.
12일(현지시간) 마침내 대권도전을 공식으로 선언하는 힐러리 클린톤(68)이 걸어온 길이다.

1947년 10월 26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태여난 힐러리 다이앤 로댐은 보수적인 집안분위기에 맞는 모범적이면서도 공부 잘하는 유년시절을 보냈다.

10대 후반이 되면서 정치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힐러리는 고중졸업 전인 1964년에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배리 골드워터의 지역선거운동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965년 미국동부의 유명 녀자대학인 웰슬리에 입학한 힐러리는 정치학과 심리학을 공부하면서도 ‘공화주의자 클럽’이라는 동아리를 이끄는 등 정치에 대한 관심을 키워갔다.

힐러리가 공화당원에서 민주당원으로 전환한 계기는 1960년대 말부터 미국 전역에 불어닥친 민권운동 열풍이였다. 특히 1968년의 마틴 루서 킹목사 암살사건과 윁남전쟁은 힐러리의 정치지향을 바꾼 주요계기로 지목된다.

1969년 힐러리는 예일대학 로스쿨에 진학했고 곧바로 한살 많은 아칸소주출신 법학도 빌 클린톤을 만나게 된다. 이 두 사건은 힐러리의 장래를 결정한 일로 평가된다.

1975년 10월 빌과 결혼한 힐러리는 남편과 함께 아칸소주로 향한다. 1976년 빌이 아칸소주 법무장관으로 일하게 되자 힐러리 역시 로즈 법무법인에 입사해 본격적인 법조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남편이 꾸준히 경력을 쌓고 1978년 처음으로 당선된 뒤 꾸준히 아칸소주지사로 일하는 동안 힐러리 역시 련방정부기관 이사나 아칸소주 교육표준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정무감각을 유지했지만 빌이 1991년 대권도전을 선언하기 전까지 힐러리는 자신의 일을 가진 주지사부인과 1980년 태여난 딸 첼시의 어머니로서의 역할에 주력했다.

1992년 빌 클린톤이 42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힐러리는 대통령부인이라는 칭호를 얻었지만 분석가들은 빌의 재임기간에 힐러리는 자신의 일과 남편의 일 사이에서의 고민은 물론 사회 각 분야에서 녀성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본격적으로 숙고하기 시작했다고 풀이하고있다.

특히 빌의 첫 임기때 불거진 아칸소주 화이트워터지역 부동산개발 사기사건과의 련루론란인 ‘화이트워터 사건’과 남편의 두번째 임기때에 터진 불륜·탄핵 파문은 힐러리의 고뇌를 한층 더 깊게 만들었고 결국 힐러리가 뉴욕주 상원의원으로 나서는 계기중 하나가 됐다고 분석가들은 설명했다.

상원의원으로 있던 시기에는 두드러진 업적을 냈다기보다는 ‘정치인 힐러리’라는 이미지를 굳혀 가는 과정이였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대통령부인 출신 첫 상원의원으로서 2003년 출간한 회고록 ‘살아있는 력사’에서는 자신이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고있다고 선언한 점도 그런 평가의 바탕중 하나이다.

2007년 힐러리는 드디여 대통령부인이 아닌 대통령이 되고싶다는 꿈을 드러냈다.

꾸준한 준비덕에 선거운동 초반에는 예비주자중 주목받기도 했던 힐러리였지만 일리노이주에서 정치기반을 닦은 ‘초신성’ 버락 오바마의 빛에 압도됐고 결국 2008년 6월 선거운동을 중단하고 오바마후보 지지를 선언한다.

힐러리가 오바마 1기 행정부의 국무장관 자리를 받아들인 일은 오바마의 포용력때문이였다는 설명도 있지만 힐러리 자신의 정치감각이 그만큼 성장했음을 뜻한다는 분석 또한 있다.

미국대통령이 되려면 자국뿐 아니라 세계 주요지역의 문제에 대해서도 답을 제시할수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미국외교의 사령탑인 국무장관의 자리는 좋은 기회였기때문이다.

2013년 2월 국무장관의 자리에서 물러난 힐러리는 그후 약 1년 6개월간 차근차근 두번째 대권도전을 준비해왔다.

워싱톤DC의 정치소식통들은 힐러리가 후보경선 과정에서 과거에 있었던 모든 일과 다시 한번 대면해야 할것이라면서도 그에 대응할 준비가 됐다고 판단했기때문에 대권도전이라는 큰 결단을 다시 한번 했을것이라고 설명했다.

래원: 연변일보 (편집: 장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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