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라하게 끝난 "박근혜시대" |
10일 한국 대통령 박근혜의 탄핵은 한국 력사상 하나의 시대의 종결을 선고했다.
현지시간 11일 24분, 한국 헌법재판소 소장대행 리정미가 8명의 법관 전원이 박근혜의 대통령탄핵안을 찬성했기에 즉시 그녀의 대통령 직무를 파면한다고 선포했다. 이로써 박근혜는 한국 력사상 처음으로 탄핵으로 파면당한 대통령이 됐다.
판결이 선포된후 한국 헌법재판소앞에서 탄핵을 지지하던 사람들은 여러가지 표지판을 흔들며 우뢰와 같은 환호성을 질렀고 서울기차역에서 대형스크린으로 생방송을 지켜보던 민중들은 박수를 치면서 서로 끌어안고 환호했다. 서울 이외의 광주 등 지역에서도 적지 않은 민중들이 자발적으로 함께 모여 승리를 환호하고 탄핵성공을 경축했다.
야당 민주당 당대표 추미애는 성명을 발표해 심판결과를 환영했고 "위대한 국민승리"라고 하면서 전체 국민이 통합하여 낡은것을 몰아내고 새로운것을 세울것을 호소했다.
이와 동시에 서울 삼성동에 위치한 박근혜 사저부근 거리에는 박근혜가 파면된후 귀가하는것을 취재하려고 기다리는 몇명의 기자외에는 다른 사람이 없었고 한산했다. 4년전 박근혜가 이곳에서 출발해 청와대로 취임하러 가던 날 환송하는 주민과 지지자들로 물 샐틈이 없었던것과는 아주 대조적이였다.
침통한 분위기가 맴도는 청와대에서 한국매체 기자는 박근혜가 어떠한 성명도 발표할 예정이 없다고 알려줬다. 박근혜의 비서관은 락담한 표정으로 박근혜가 이날 오전 텔레비죤앞에서 재판생방송을 지켜봤고 직원들은 현재 청와대를 떠날 준비를 긴장하게 진행하고있다고 했다.
2016년 12월 9일, 한국 국회에서 높은 찬성표로 박근혜의 탄핵안을 통과해서부터 서울 종로구 재동에 위치한 헌법재판소에서는 매일 밤 늦게까지 평의를 진행했다. 리정미는 재판관들이 밤을 지새우며 열독한 문서만 48000만페지에 달하고 자료들도 40박스의 분량에 이른다고 했다. 선고 당일 항상 매무시를 중시해왔던 베테랑 녀법관은 1시간 먼저 재판소에 도착했는데 차에서 내릴 때 머리에 헤어롤 두개를 떼내는것을 잊어버렸다.
박근혜에 대한 모든 고발가운데서 헌법재판소는 박근혜의 측근이 국정운영에 개입하고 재단을 설립하여 사익을 추구한것을 확인했다. 박근혜가 형사소추권을 잃은후 박근혜는 한국 검찰기관의 "최순실 국정롱단", 직권람용, 뢰물수수 등 일련의 고발에 대한 심층적인 조사를 피할수 없게 되였고 심지어 감옥에 들어갈수도 있게 되였는바 후임자의 "반면교재"가 되였다.
4년전의 취임연설에서 박근헤는 국민을 위해 희망으로 충만된 새시대를 개척하고 "두번째 한강기적"을 창조할것이라고 약속했다. 4년후의 오늘 박근혜는 후임자에게 실업률이 지속적으로 높고 사회복지약속을 실현하지 못하고 빈부분렬이 날로 가중해지는 한국을 남겨줬으며 한국사회의 불만과 실망은 높아만 가고있다.
4년전 그녀는 지역평화를 창조할것이라고 약속했다. 4년후의 오늘 조한대항이 부단히 악화되고있고 미일한 군사동맹이 날로 강화되고있으며 중로리익을 엄중히 손상시키는 "사드"배치를 진행하여 후임자에게 위기가 도처에 도사리고있고 이웃끼리 화목하지 못한 주변환경을 남겨줬다.
한국 력사상 첫번째 녀대통령으로서 박근혜는 장기적으로 정치에 종사하면서 결혼을 하지 않고 "국가와 결혼한다"고 말한 약속때문에 한국 민중들로 하여금 그녀에 대해 높은 기대를 품게 했다. 2016년 "최순실게이트", 재벌과의 금권거래, "문화계블랙리스트" 작성 등 추문이 부단히 공개되면서 박근혜가 장기적으로 수립한 독립, 렴결의 형상은 순식간에 무너졌고 한국의 대규모집회와 항의활동을 유발했다.
탄핵조사를 가동한후 박근혜는 대응을 잘 못했다. 그녀는 특검의 대면조사를 거절하고 헌법재판소의 재판참석을 거절했으며 여러번이나 특검의 공정성을 의심하고 련속 몇달간 청와대에서 두문불출하여 민심을 상실했을뿐만아니라 그녀가 소재한 정당의 분렬도 조성했다.
탄핵의 영향으로 새누리당 "비박계" 탈당인원들은 새로 바른 정당을 설립했고 "친박계"는 새누리당을 자유한국당으로 개명했다. 한국갤럽회사의 3일 민심조사결과를 보편 77%의 설문대상이 탄핵을 찬성했다. 2016년 11월 박근혜의 지지률은 4%로 하락해 력사 최저치를 기록했다.
집정당과 민심의 지지를 철저하게 잃은 박근혜는 정계의 외톨이가 됐다.
10일, 서울과 부산의 "위안부" 소녀상 동상앞에서 한일 "위안부"협의를 반대하는 시민단체는 박근혜정부가 급급히 일본과 화해한 "매국"행위를 규탄했다. 여러 지역의 경축인파중에서 적지 않은 한국 민중들이 "'사드'반대"라는 표지판을 들었다. "'사드'배치반대 전국행동"의 책임자 윤명은은 기자에게 "사드"는 조선의 핵, 미싸일 위협을 방지하는데 아무런 쓸모가 없고 한국국민을 희생해 미국과 일본을 보호하는 "무용지물"이라고 했다. "사드"를 배치하는것은 박근혜정부의 가장 큰 부패이고 우리는 배치를 즉각 중단할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이날, 박근혜는 전임 대통령의 신분으로 평민생활로 돌아갔다.
이날, 한국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대선을 60일내에 진행할것이라고 선포했다.
이날, 2016년 10월 29일에 시작된 "박근혜탄핵"초불집회는 133차례 진행됐고 참가자수가 1500만명에 달했다. 조직자는 주말에 여러 지역에서 경축활동을 진행할것이라고 선포했다.
분쟁속에서 4년을 집정한 "박근혜시대"는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결속됐다. 초라하게 떠난 박근혜는 한국력사에서 아름답지 못한 뒤모습을 남겼다.
래원: 인민넷-조문판 | (편집: 임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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