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린게 그림입니다.”
나이로 치면 고래희를 훨씬 넘긴 78세의 박금숙할머니는 매일 그림도화지를 마주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3년전 몸져누워 삶의 의욕을 상실했을 때 만났던 수채화는 그에게 인제는 친구이자 위안으로 자리잡았다. 지난 2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박금숙할머니는 “취미 삼아 그리던 수채화가 이제는 로년인 내 삶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다”고 벅찬 감정을 드러냈다. 미술을 단 한번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는 그가 붓을 잡은건 아주 우연이였다. 3년전 허리를 몹시 상한 박할머니는 오래동안 허리 통증으로 시달렸다. 그때 집안에서 옮겨다니는것조차 무척 조심스러웠다. 건강회복이 늦어지면서 박할머니의 정서는 날로 소침해졌으며 남편과 자식들의 걱정도 깊어만 갔다. 그러던 어느날 며느리와 손자가 문방구에서 도화지와 수채화물감 그리고 붓을 가져와 혹시 그림을 그리면서 마음을 다른데 집착하면 허리통증이 덜해지지 않을가고 제의해왔다.
“이 주름진 손으로 그림이라니 몸도 마음도 쇠약해져 있는 상태에서 과연 그림을 그릴수 있을가 싶었죠. 하지만 붓을 잡는 순간 새로운 활력소가 됐어요.” 박할머니는 처음 그림 그리기를 지지해나선 며느리에 대해 감격을 금치 못했다.처음에는 그림이 서툴었지만 차츰 모양새가 잡혔다. 그러자 식구들은 눈이 휘둥그레졌고 병문안 왔던 친구들은 그가 그린 그림을 보고 너무나 잘 그렸다고 칭찬이 많았다. 여기서 신심이 생긴 박할머니는 그 뒤로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2시간 정도 수채화를 그렸다. 허리통증은 거짓말처럼 사라지기 시작했다는것이다.
“젊어서는 꿈도 많았지만 자신이 예능에 소질이 있다는걸 미처 몰랐습니다.” 22세에 고향인 길림성 안도현 모 소학교에서 교도주임을 맡아 평생 교육자로 살아온 박할머니는 매일 일상에 쫓기다보니 취미생활같은건 엄두도 내지 못했다는것이다. 지금은 주로 명화가의 그림을 모방하는 초보자 단계이지만 작은 화폭에 핀 꽃에서 이슬 냄새와 새소리가 들려올듯하여 그림 시간은 자신만의 세계속으로 깊이 빠져드는 가장 소중한 시간이 된다고 했다.
박할머니 작업실은 해빛이 잘 들어오는 거실에 위치하고 있었다. 할머니의 집은 거실이고 서재고 침실이고 모두 할머니의 원작으로 벽을 채웠다. 거실 벽면에 상점에서 산 정물 그림 액자가 번듯하게 걸려있었다. 할머니의 아들은 몇번이고 그 그림을 떼버리려고 했지만 할머니는 “그래도 나한테 목표가 있어야 하지 않는가”하면서 말렸다고 한다.“나도 저 그림을 그린 화가와 같은 수준급이 되여 이슬 맺힌 과일이 직접 붓끝을 타고 화폭으로 옮길수 있는 날이 있겠지”하면서 할머니는 환하게 웃어보였다.
“로인들도 도전할수 있다는걸 보여 주고 싶습니다”
박할머니의 그림을 살펴보노라니 서예체로 씌인 시구가 또렷이 박혀있었다. 박할머니는 이는 남편 김창복할아버지(78세)이 쓴것이라고 했다. 박할머니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1년후인 2010년 어느날 김할아버지는 “나도 뭔가 시작해야겠소.”하더란다. 그래도 부부가 비슷한 취미생활을 즐기는것이 방향이라고 하면서 서예를 선택하였다고 한다.
김창복할아버지는 늦게 시작한 서예공부에 충천하는 열정을 보였다. 지난해 10월부터 쓴 서예연습책을 펼쳐보이면서 년말까지 100책을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그 말에 할머니도 어지간히 놀라와했다.
장백산 아래 안도현에서 37년간 교육자, 향 당위서기, 공회주석 등을 력임하면서 길림성 로력모범, 전국 공회 우수공회사업자 등 영예를 적지 않게 받아안은 김창복할아버지는 1994년 60세를 맞는 해 고향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아들이 사업하고 있는 북경으로 진출했다. 그들 내외분은 정년퇴임했다고 위축되지 말자. 이제부터 진짜 인생의 시작이다고 생각하면서 호기심을 키우고 취미생활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로년대학에서 각기 덴스, 기공, 서예, 촬영, 료리, 옷재단 기법을 배웠으며 자신들의 로년생활에 도움이 될지 모른다면서 발안마 기법도 배웠다. 양생운동으로 덴스나 기공에 취미를 붙이려고 했지만 자신의 심성에 맞지 않다는것을 발견하고 후에 김할아버지는 사교무, 박할머니는 조선무용에 취미를 가지고 여태까지 견지해오고 있다고 한다.
“로인이라는 명목으로 자식에게나 주변사람들에게 뭔가 바라는 사람이 되지 말고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눠주고 남을 위해 봉사하는 신세대 로인으로 사는게 목표다”고 하는 그들 부부는 몇년전부터 자금난에 어려운 로인모임에 수천원의 성금을 내놓았으며 2010년 12월에는 금방 설립된 로교사협회에 3200원 어치의 전자풍금을 사주었고 금년에는 활동경비로 2천원, 아리랑로인협회에 1천원을 내놓았다.
주위의 적지 않은 로인들을 보면 마치 세상사를 다 깨우친듯 모든 일에 별다른 관심이 없으며 세상을 다 살아본것처럼 행동하는데 이는 로화를 부른다는것이다. 그들은 북경 생활 20년간 재직에서와 마찬가지로 독보, 독서를 견지하고 있는데 북경석간보, “로년세계”, “로년의 벗”을 줄곧 주문하고 있다고 했다. 그들 부부의 또 하나의 취미라면 각종 박람회, 전시회를 거의 빼놓지 않고 찾아다니는것이다. 일상이 재미없고 지루한건 마음속에 호기심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손에서 신문, 잡지를 놓지 않으며 사회활동 참여의식이 강한 그들은 로년의 고독이나 지루한 느낌을 전혀 모르고 매일 즐겁게 보내고 있다.
박할머니의 그림은 꽃과 새가 많은데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자연을 무척 좋아하는 심성에서 비롯했다고 한다. 그림 제목과 시구를 써넣는건 할아버지 몫이다. 이렇게 두분의 합작으로 한폭의 완성품이 나온다.
"하면 된다"는 말대로 마음속에 호기심을 품고 끊임없이 새로운것에 도전하는 박금숙, 김창복 두 로인의 황혼은 칠색무지개마냥 아름답다.
래원: 중국민족 | (편집: 김홍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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