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 프로필
중국인민대학 재정금융학원 졸업.
중국국제신탁투자회사(CITIC)와 북경북의우성진공기술유한회사에서 근무한 적이 있음.
현 북경시정치협상위원회 위원, 중한경제련의회 부회장, 북경세박투자그룹 리사장.
그는 지난 10년간 북경시에 150억원을 웃도는 외자를 유치해왔다. 그는 조선족이라는 특수한 신분을 리용하여 한국의 우성진공주식회사, 화성고무, 삼진정공, 광진상공 등 제조업체들과 한국증권거래소, 한국신한은행 등 현대금융기업들을 성공적으로 북경에 유치해왔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한국삼성그룹과 한국포항그룹의 중국본부 설립 프로젝트를 북경시 조양구에 성공적으로 유치하는데 성공함으로써 조양구인민정부에서 발급한 외자유치 특별공헌상을 수여받았다.
이렇듯 북경시 경제문화건설에 큰 기여를 해온 주인공이 바로 북경세박투자그룹(北京世博投资集团)의 박철 리사장, 현재 북경시 조양구 정협 상무위원, 북경시 정협 위원으로 활약하는 그는 북경시 외자유치계의 달인으로 불린다.
외자유치가 가져다주는 즐거움
2000년대 초반에 들어서면서 중국은 이미 개혁개방정책을 실행한지 20여년이 지났다. 하지만 그 당시 북경에서 중외합자기업을 찾아보는것은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니였다. 그러던 2002년 10월 18일, 북경자동차투자유한회사와 한국현대자동차그룹이 공동으로 출자하여 등록자본 12.2억 달러, 총투자금액 31억 달러로 북경현대자동차유한회사를 설립하였다.
“북경현대”는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후 처음으로 비준한 자동차생산령역의 중외합자프로젝트로서 북경의 현대제조업을 진흥시키고 수도경제를 이끄는 솔선적 역할을 발휘하는 중임을 떠맡았다. 그러나 당시 북경시는 자동차제조업을 처음으로 인입한 원인으로 여러 면에서 자동차를 제조하는데 필요한 기반이 채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였다.
박철은 그중에서 상업기회를 발견하고 자동차분야에 관련된 서포팅업체(配套商)들을 북경시에 인입하는데 주력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선후로 북경주변의 순의(顺义), 평곡(平谷), 통주(通州), 회유(怀柔), 밀운(密云) 등 곳에 한국의 화성고무, 삼진정공, 광진상공, 독일의 헨켈 등 80여개 제조업관련 기업과 투자항목들을 끌어들였는데 지금까지 첨단제조업에 관련된 외자유치금액만 해도 20억원을 초과하였다.
그후, 박철은 2004년 년말에 북경세박투자회사를 설립하고 북경시공업촉진국(北京市工业促进局)의 추천하에 한국과 일본을 빈번하게 방문하면서 당지정부 및 업계협회들을 찾아 중국기업계와의 상호신뢰를 강화하고 합작교류와 무역상담을 적극적으로 달성시켰다. 이로부터 그의 외자유치 사업은 부단히 발전 장대하면서 하나하나의 금시초문의 신화를 창조해나간다. 2005년 6월, 박철은 한국수입업협회와 손을 잡고 한국의 30여개 기업과 중국의 100여개 기업간의 투자무역상담회를 조직하였고 2006년 9월에는 북경현대자동차유한회사 및 북경시순의구정부와 손을 잡고 400여명의 한국기업가들이 참석한 무역상담회를 펼쳐 여러개의 대형프로젝트가 순의구에 락찰되도록 촉진시켰다. 뿐만아니라 2007년부터 현재까지, 그는 거의 매년마다 한국과 일본의 기업들을 요청하여 무역상담회를 가지면서 수많은 외자들을 유치하였다.
2007년, 북경시 산업발전방향의 조절과 함께 박철은 회사의 외자유치 업무방향을 전면적으로 조정하게 된다. 그는 단순히 전통적인 제조기업을 외자유치의 대상으로 삼던데로부터 금융서비스업, 생물의약업, 주식투자업 등 다양한 현대서비스업과 신흥분야로 눈길을 돌린다. 집약형의 국내유명기업과 다국적회사를 끌어들여 북경에다 중국본부를 두고 투자항목을 실시하게끔 하는것이 박철의 새로운 외자유치방향이였다. 박철의 적극적인 노력하에 2008년에 한국증권거래소 북경대표처가 설립되였고 한국제2대금융그룹이 신한은행이 북경에서 법인을 등록하였으며, 2010년에는 세계500강기업인 한국포항제철그룹(POSCO)과 상해록지그룹(上海绿地集团)이 각각 총투자금액 4억달러와 인민폐 40억원을 들여 북경에서 본부건설항목을 실시하였다. 그리고 2011년에는 세계500강 삼성생명보험주식회사와 삼성물산주식회사가 련합하여 북경CBD핵심지역에 7억달러를 투자하는 “삼성빌딩” 건설프로젝트를 실시하게 되였는데 역시 박철의 활력적인 추진으로 이루어진 일이다.
일반인들이 생각지도 못하는 대형외자유치항목들을 척척 실현해 나아가는 박철의 이야기를 들으며 기자는 그에게 있어서 외자유치는 아주 손쉬운 일로만 느껴졌다. 그리하여 외자유치는 대체 어떠한 일인지를 묻자 그는 “죽도록 고생만 하고 좋은 소리 못 듣는 일”이라고 허심탄탄하게 표현하였다. 회사 설립초기 박철은 그동안 모아두었던 백여만원을 모두 투입하였지만 올바른 프로젝트가 없어서 직접적인 경제적 효익을 보지 못하는 어려움도 겪었었다.
“외자유치는 여러 방면의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고 각자의 리익을 모두 보장해야 하며 아주 세밀한 절차마저 반복적으로 협상해야 하는 힘든 일입니다. 다만 외자유치의 과정은 비록 힘겹다하더라도 그 결과가 가져다주는 단맛은 무궁무진한것입니다.”
박철의 해석에 의하면 외자유치는 공영을 이루는 지름길이였다. 정부에게 있어서 외자유치는 산업갱신을 추진하고 지역경제발전을 이끌수 있으며 취업, 세수, 재정 등 일련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유익할것이다. 그리고 외국기업으로서는 새로운 해외시장을 개척하여 기업의 장원한 발전에 새로운 활력을 주입시킬수 있다.
“외자유치는 가장 효과적이고 가장 빠른 공영의 도경입니다. 2008년 한국신한은행이 북경에서 법인을 설립할 때 동성구(东城区)와 서성구(西城区)는 모두 비교적 우수한 투자환경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생존환경을 고려해볼때 당연히 조양구(朝阳区)에 투자하는것이 타당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신한은행의 주요업무대상은 한국기업과 한국인이고 북경에서 한국기업과 한국인들이 가장 밀집된 곳이 바로 조양구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다방면의 노력하에 신한은행은 최종 조양구에서 법인을 설립하게 되였고 업무령역을 부단히 넓혀 선후로 왕징지역과 순의구에 지행을 설립하게 되였습니다.”
2012년 9월 19일, 제13회 북경CBD비즈니스축제에서 박철의 회사는 북경시 조양구인민정부로부터 발급한 외자유치 특별공헌상을 수여받았다. 그 리유로는 바로 한국삼성그룹과 한국포항그룹의 중국본부 설립 프로젝트를 북경시 조양구에 성공적으로 유치하였기 때문이다. 표창대회에서 박철은 “각급정부와 상관부문의 지지와 협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며 앞으로 더욱 많은 우수한 기업들이 북경CBD에 입주하도록 노력할것이다.”라는 소박한 소감을 발표했다.
신탁회사 근무경력은 나의 성공기반
2001년, 중국인민대학재정금융학원에서 졸업한 박철은 중국국제신탁투자회사(中国国际信托投资公司)에 취직하였다. 신탁회사에서 근무하는 동안 그는 수차례나 대형건설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시야를 넓혔을 뿐만아니라 외자유치의 길을 위해 기반을 닦아놓았다.
“2001년부터 2002년까지, 신탁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저는 대학교 교과서에서 배울수 없었던 수많은 사회경험들을 쌓게 되였습니다. 특히 고속도로건설, 도시철도건설 등 대형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한국, 일본 등 나라의 국제적인 다국적은행과 접촉할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바로 이런 경력들이 외자유치를 하는 기반이 된것이죠.”
당시 그는 평일에는 신탁회사에 근무하고 주말에는 한국유람객들을 위해 통역하는 아르바이트를 맡아 항상 바쁜 시간들을 보냈었다. 2001년 10월, 북경에 유람하러 온 한국손님의 통역을 맡았던 박철은 우연하게 그가 접대한 한국손님이 북경에 투자하여 공장을 설립하고싶다는 정보를 알게 된다. 그 손님이 바로 당시 진공펌프령역에서 세계 4위를 차지하는 한국우성진공주식회사의 사장이였던것이다.
신탁회사에서 이미 상당한 수준의 무역상담경험을 쌓은 박철은 인차 국내에서 진공펌프를 생산하는 북경의기공장(北京仪器厂)을 떠올렸다. 당시 북경의기공장은 산업개조를 직면하여 기술, 경제적 효익, 직원들의 실직 등 여러가지 문제점들이 존재하였다. “우성진공”과 “북의(北仪)”간의 합작을 달성시키기 위해 박철은 “중외합자경영법”을 한국어로 번역하였으며 쌍방의 교류를 부단히 촉진하고 문제점들을 하나하나씩 풀어 나아갔다. 드디어 2002년 10월말에 쌍방의 합자관계가 이루어짐으로 북경북의우성진공기술유한회사(北京北仪优成真空有限公司)를 설립하게 되였다.
처음으로 외자유치의 단맛을 보게 된 박철은 아주 큰 기쁨을 느꼈으며 자아가치를 실현하는 방향을 알게 되였다. 서로의 합작을 촉진하고 국제화의 각도에서 문제를 분석하는것은 신탁회사에서의 일보다 더 흥미로웠다. 그리고 당시 북경에는 아직 한국기업과 합자관계를 맺은 전형적인 기업이 없었던 시점이라 박철의 외자유치는 더욱더 큰 의미를 가진 셈이다.
2012년 9월, 박철은 한국 서울에서 박원순 시장과 회담을 가졌고 서울시 정무부시장 김형주를 위주로한 대표단을 북경CBD비지니스축제에 초청하였다.
“12차 5개년계획 기간, 북경은 중국특색이 있는 국제도시로 건설하는것을 목표로 삼고 있고 북경CBD건설은 이 목표를 실현하는 핵심적인 위치에 놓여있습니다. 앞으로 외자유치의 방향은 CBD산업의 발전에 유익한 서비스업 분야를 끌어들여 북경CBD에서 국제적인 교류가 더욱 편리하게 이루어지도록 돕는것입니다.”
북경창업청년발전련합회를 창립할것을 건의함
북경에서 10년간 산전수전을 겪으며 오늘날의 성과를 거둔 박철은 창업으로 성공을 갈망하는 청년들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여 북경시 조양구 정치협상위원회 위원으로 당선되서부터 그는 늘 청년들의 직업생활을 주목하여왔다. 얼마전 북경시 정치협상위원회 위원으로 당선되자마자 그는 “북경창업청년발전련합회(北京创业青年发展联合会)”를 창립하여 창업을 갈망하거나 창업을 하고 있는 젊은이들을 위해 꿈을 심어주고 무대를 만들어주자는 제안을 제기하였다.
박철의 연구조사에 의하면 창업을 하러 온 젊은세대들이 북경시 류동인구의 4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젊은이들은 창업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어려움을 부딪치게 됩니다. 그중에는 북경시의 창업정책과 창업환경에 대해 료해가 부족하여 제시간에 정부의 도움을 받을수 없는것이 있으며 또한 정부의 창업보장정책이 완벽하지 못하는 등 문제들이 있습니다. 따라서 창업청년들을 위한 비영리성적인 련합회를 조직하여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고 경험을 교류하는 무대를 마련하는것이 시급합니다. 이러한 련합회는 과학적으로 젊은세대들을 인도할수 있고 정부의 해당정책을 제때에 제정하고 실시하는데도 매우 중요한 지침이 될것입니다.”
지금까지 박철은 기업가로서의 사회적 책임과 정협위원으로서의 직책을 착실히 완수하여 오면서 “외자유치특별고문칭호”, “기술전이특별공헌상”, “북경시창업청년수도공헌상금상”, “북경시조양구우수청년” 등 수많은 영예를 한몸에 껴안았다. 그야말로 “북경시 외자유치계의 달인”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다.
취재를 마치면서 성공을 갈망하는 젊은이들에게 조언을 부탁하자 그는 “사람은 항상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갖추고 착실하게 노력해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래원: 중국민족 | (편집: 김홍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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