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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 자식농사라는것이 있다

-두 자녀를 북경대학에 보낸 김동규선생 인터뷰

 □ 서정옥

2013년 12월 03일 14:13【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한번 망치면 돌이키기 어려운것이 자식농사이다. 자녀를 옳바른 인성과 인격을 갖춘 사람으로 키우고 싶지 않은 부모는 없을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얼마나 많은 부모들이 자식교육의 모범답안을 찾느라 고민하고 있는가.

얼마전 두 자녀를 모두 북경대학에 보낸 흑룡강성교육학원 조선어문부 주임 김동규교수(1955년생)를 만났다. 어떻게 그렇게 훌륭한 자식을 키웠는가 하는 필자의 물음에 “우리 부부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독서를 즐기는 아이, 사람을 사랑하는 아이, 자연을 즐기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 노력했을 따름입니다. 독립성 양성도 무척 중요하지요.”하는 김동규선생으로부터 그 성공비법을 들어보았다.

부모가 자녀와 같이 책 읽는것 최고의 가정교육

아무리 인테리어가 잘된 집이라도 책이 보이지 않으면 마치 령혼이 없는것과 같다고 하는 김동규선생은 “우리 집은 거실 쏘파 주위는 물론, 주방, 밥상머리, 화장실 어디나 사람이 잠시라도 머무는 곳에는 모두 책을 두어 쉽게 책을 펼칠수 있게 되여 있습니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책 읽는 습관이 길들어진 사람은 독서를 통한 지혜와 지식을 축적할수 있다. 자식이 성장해 부모곁을 떠나 사회인으로 성공하고 마음을 바로 하고 인생의 지혜를 쌓아가는데는 독서만큼 좋은 수단이 없는것이다. 그리하여 그들 가정은 저녁 식사후 남들이 TV를 보는 시간대에는 뉴스를 시청하는 외에 부모와 아이들 모두 책을 읽고 때로는 서로의 독후감상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진다. 어렸을 때부터 교육자인 부모의 책 읽는 모습을 보아온 아들 김광(1983년생)과 딸 김미령(1988년생)은 자연히 책과 친해졌고 책에서 감동을 느끼고 차츰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습관을 양성하게 된것이다.

김동규선생은“개별지도나 학원으로 보내는것 대신 부모가 자녀와 같이 책 읽는것이 정말 최고의 가정교육인것 같습니다.”하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더 좋은 대학으로 갈수 있었지만 공부할 기회가 없었으니 자식들이 좋은 대학으로 갔으면 하고 늘 바랐지만 아들을 이어 딸까지 모두 우리나라 최고학부인 북경대학의 입학통지서를 받았을 때 날것만 같은 기분이였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고사리같은 손에 책을 들고 아빠엄마를 따라다니며 여러가지 물음을 곧잘 묻는 아들애였다. 유치원에 다닐 때 선생님은 “이 애를 아예 2학년에 입학시키세요.”하고 권고해왔다. 집에서 조선어 자모음을 다 뗀 아들애는 6살에 소학교 2학년 들어갔다. 1999년 김동규선생은 아성시조선족중학교로부터 흑룡강성교육학원으로 전근되면서 그의 가족 모두가 할빈으로 이사하였다. 그때 아들 김광은 초중 2학년이고 딸 김미령은 소학교 3학년생이였다. 두 아이는 도시의 새 학교로 전학했지만 금방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공부를 썩 잘했던것이다.

이중언어교육이 한몫 막아주었다

김동규선생의 아들 김광과 딸 김미령은 모두 조선족중소학교 출신으로서 이중언어교육의 성공적인 사례이다. 할빈시조선족제1중학교에서 고중을 졸업한 김광은 2000년 대학입시에서 향방구 문과 1등, 흑룡강성 8등으로 북경대학에서도 으뜸으로 꼽는 광화관리학원 회계학부에 입학하였다. 2007년 역시 향방구 문과 장원으로 중국인민대학에 입학한 김미령은 졸업후 대학측의 추천으로 무시험통과로 북경대학 로씨야어전업 연구생 과정을 밟고 있다.

그들 두 남매는 중소학교 과정에 학원을 다니거나 가정교사를 청해 개별보도를 받은적이 한번도 없으며 과당강의에 집중하고 지식을 제때에 소화시켜오면서 우수한 성적을 줄곧 보존하였다.

그날 김동규선생은 딸 미령에 대해 많이 이야기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속담이 있듯이 장기간의 독서습관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효과가 엄청컸다. 김미령은 어려서부터 글재주가 뛰여나 소학교를 졸업하는 11세 때 《엄마의 미소》이라는 작품집을 연변교육출판사에 의해 출판해 꼬마작가로 소문났으며 중소학시절부터 다재다능한 학생으로 학생회 주석, 학생방송실 편집, 아나운서, 사회자로 활약했고 학교와 성 방송국에서 조직한 랑독, 랑송, 강연에 참가하는 여러 가지 경력을 지녔다.

2006년 김미령은 대학시험에서 작은 실수로 원래 지망했던 북경대학을 스쳐지나 중국인민대학 로어전업의 입학통지서를 받게 되였다. 일찍 중학시절에 북경대학을 “고찰”한적이 있는 그는 북경대학의 현대와 전통이 잘 어우러진 건물들, 방학임에도 불구하고 각 교실마다 도서관마다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학구열, 더우기 북경대학의 명소인 미명호가 깊은 인상으로 남았으며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가는 저녁해, 미명호 호수에 길게 드리워진 락조의 모습이 너무나 매력적이였다. 언녕부터 북경대학에 목표를 두고 전력해 왔던 그는 중국인민대학의 입학통지서를 받게 되자 아예 한켠에 밀어두고 재수생으로 며칠간 보습반에서 공부하였다. 그러다가 생각을 고쳐먹고 중국인민대학에 가게 된것이다.

그는 세계에서 배우기 어렵기로 이름 있는 3대 언어중의 하나인 로어를 령으로부터 시작하여 배우면서 강한 승벽심에 힘입어 학습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이중언어교육을 받아온 바탕과 천부적인 언어자질이 한몫 막아준것이다. 그는 대학기간 련속 3년 우수장학금생으로 뽑혔으며 2008년~2009년에는 학점만점인 4점의 성적으로 인민대학 외국어학원의 유일한 교육부 특등장학금을 수상하는 영광을 지니기도 했다. 그는 국가 류학기금회 전액장학금생으로 선발되여 대학 3학년 때 로씨야 똘스또이국립사범대학에서 1년간 공부할수 있는 행운을 누리게 되였다.

2009년 10월 졸업을 앞두고 학교측으로부터 북경대학 로어전업 연구생으로 추천받았다. 현재 북경대학 연구생 3학년생인 그는 졸업후 계속하여 박사과정을 밟을 계획으로서 앞으로 북경대학 강단에 오를 꿈을 무르 익히고 있다.

지난 9월 25일, 리극강이 인민대회당에서 모스크바대학 200여명 학생을 접견하는 장에서 김미령은 중국측 학생대표로 발언할 행운을 가졌다. 그는 똑똑한 로씨야어로 야무진 발언을 하여 장내의 열렬한 박수를 받았으며 리극강동지도 만족의 웃음을 지었다. 그 장면이 CCTV 19시 뉴스를 뜨겁게 달구었다.

아버지의 어록:자기절로 할수 있는 일 자체로 해라

자녀교육에 있어 가장 중요한것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모두 혼자 내버려두는것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아이들에게 자유를 주고 단순하며 느긋하게 자녀를 키우라는것이다. 그러나 많은 부모들이 사랑이란 이름을 내걸고 자녀들에 과잉보호를 강행한 결과 자녀와의 갈등을 빗어내고 지어는 자녀교육을 포기하기까지 이르렀는가. 그러나 필자가 만난 김동규선생은 “과잉보호는 자녀들에게 결과적으로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것입니다. 차라리 적당히 풀어주고 독립적인 시간을 줄 때 그에 상응한 의무감을 요구할수 있는것입니다.”고 하였다.

그는 아들 김광이 북경대학으로 떠날 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첫째, 18세 이후부터 자체의 길은 자체로 설계하라. 둘째, 졸업후 산해관 이북으로 돌아오지 말라. 셋째, 대학에 입학했으니 부모들 임무는 끝났다. 대학등록금은 대주지만 앞으로 리자까지 쳐서 갚아야 한다 이 세가지였다.

대학으로 떠나는 아들에게 너무 야속하게 굴지 않았는가 하는 물음에 김동규선생은“우리 자식들은 얼마든지 그렇게 할수 있습니다.”고 자신하였다.

자기절로 할수 있는 일 자체로 해라. 이는 아버지로서 김동규선생의 어록이다. 그들 부부는 모두 부모님을 일찍 여인 연고로 두 자식은 어려서부터 한족집에 맡겨 키웠다. 더우기 부부가 모두 교원이다보니 아침 일찍 출근하고 밤늦게까지 학생들 숙제검사, 교수안 짜기에 바삐 보냈다. 이러한 부모님의 로고를 헤아려 두 남매는 어려서부터 자립성이 매우 강했다. 딸 김미령은 소학교 3학년 때부터 집에서 학교까지 예닐곱 정거장 되는 거리를 혼자서 뻐스를 타고 등교하였다. 문예대원인 그는 어려서부터 자주 할빈이나 외지로 공연을 나갔다. 다른 아이들은 부모 아니면 할머니가 따라가서 시중을 들어주었지만 김미령은 종래로 혼자서 공연복을 챙기고 생활을 자립했던것이다. 후에 로씨야에서 1년간 류학하는 동안 부모들은 딸의 생활문제를 두고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동규선생의 가정은 민주적인 분위기가 농후하다. 그들 네식구는 웬만한 일은 자체로 결정하고 만약 가정에 내놓고 토론할 일이라면 될수 있는한 본인의 의견을 존중하는 훈훈한 가정문화를 줄곧 유지하고 있다. 자식들이 고중에 올라와 문과를 선택하느냐 리과를 선택하느냐 할 때도 부모로서 참견하지 않았으며 졸업후 취학이냐 취직이냐 하는 문제에서도 충분히 자신의 의사를 존중하였다.

2004년 대학을 졸업하면서 김광의 앞에는 세갈래 취직방향이 나타났던것이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되여 상무부 공무원으로 들어갈수 있는것, 중국인민은행에 취직하면 집 70만짜리 주택을 분배해주는 대신 15년간의 로동계약을 체결하는것, 또 다른 하나는 세계적 컨설팅 및 회계 전문기업체인 KPMG 인터내셔에 취직하는것이였다. 부모들은 공무원을 선택했으면 하는 바램이지만 본인의 선택대로 KPMG에 들어가게 되였다. 그 회사에서 8년간 근무한 김광은 경리로 발탁되였다.

자식노릇도 잘하고 부모노릇도 잘해

누구나 부모가 될수 있지만 모두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은 아니다. 김동규선생은 자신이 1977년 첫 대학입시에서 락방한 그날부터 앞으로 결혼해서 자식을 낳으면 자식을 꼭 대학생으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는것이다.

10대의 어린 나이에 량친을 여의고 형제도 많지 않고 친척도 적은 가정에서 자라면서 부모의 사랑과 가족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실감하여 온 그였다. “문화대혁명”기간 소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흑룡강성 해림시 신안진의 고향마을에 눌러앉게 되였다. 운명적으로 농사군의 아들로 태여난 그는 한평생 실농군으로 살아가리라 마음먹고 착실하게 농사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24세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생산대 회계 3년, 대장 3년, 촌 대대장 등 경력을 지녔다. 그때 마침 전국적으로 대학입시제도가 회복되면서 아무런 준비도 없는 그는 대학시험장에 들어가게 된다. 첫 대학시험에서 미역국을 먹었다. 그 이듬해는 아예 시험을 포기하였다. 그러나 “대학”이란 두 글자는 자석마냥 그의 마음을 잡아끌었다.

1979년 대학입시에 참가할 때도 그는 대장직을 맡고 낮에는 촌민들의 앞장에서 일에 몸을 휘둘리다가 일밭에서 돌아와 저녁술을 놓기 바쁘게 복습자료를 펼쳐들었다. 아무런 기초도 없는데다가 짬짬이 하는 늦깎이 공부가 너무나 힘들었던것이다. 시험날자가 닥쳐와 어리둥절 시험을 보았는데 예상밖으로 신안진중학교에서 유일한 전과생으로 오상사범학원 입학통지서를 받았다. 24세의 그는 17, 18세의 어린 친구들과 한교실에서 공부하게 되였지만 어렵사리 찾아온 학습기회를 소중하게 여겼다.

졸업후 아성시조선족중학교에 배치 받아 1997년 성교육학원에 전근하기까지 15년간 그는 보통 교사로부터 교연조 조장, 교도주임을 력임하였으며 그 동안 할빈시교육계통 선진인물, 골간교사 등 영예를 수차 지닌 교수이다.

부인 리금선선생(1958년생) 역시 오상사범대학 졸업생으로서 아성시조선족중학교 교원을 거쳐 현재 할빈시조선족제1중학교 교도주임을 맡고 있다. 그는 할빈시 선진일군, 우수 공산당원, 모범 담임교사 등 영예를 수차 지닌 교육자이다.

“도둑질도 손발이 맞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김동규, 리금선 부부는 자녀교육에서 찰떡궁합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그들 부부는 아무리 바빠도 일요일이면 온가족이 자전거를 타고 산이나 들에 나가 자연과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다. 그들은 교외로 나가 맨발바람으로 농민들과 함께 벼모를 꽂기도 하고 산에 자라는 나무와 풀, 여러 가지 짐승들을 익히기도 하고 넓은 공터에서 공을 차고 유희를 놀면서 자연친화를 통한 사랑공부를 해왔다. 이런 생활체험은 온종일 책상에 마주앉아 참고서를 뒤적이는것보다 훨씬 효과적인 공부시간이였다. 그의 가정성원들은 독서 외에도 흥취가 다양한데 기타, 전자풍금, 장구, 축구, 배구 등 여러 가지 장끼를 갖고 있다. 축구에 강한 취미가 있은 김동규선생은 송화강지구 축구 우승을 따낸적도 있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축구에 흥취를 가진 김광은 고중에서 국가 2급 운동원 자격증서를 따냈으며 할빈시조선족제1중학교 축구대 대장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국가 2급 운동원, 성 3호학생, 우수 학생간부인 김광은 대학입시에서 20점 가점할수 있었지만 우수한 성적을 따내 그 혜택을 받지 않고도 북경대학에 쉽게 입학한것이다.

유기농 자식농사라는 말이 있다. 이제부터 고비용, 저효률 교육에서 벗어나야 한다. 김동규선생과 같이 아이들에게 흥미 키우기를 통한 자기주도 학습습관을 양성시키고 독서를 통해 지혜를 쌓고 자연과 함께 하는 창의력을 키워가는 길, 학원가는것을 자제하고 집에서 학습토론하고 려행을 자주 다니는 유기농 교육을 도입해야 할 때가 온것 같다.

래원: 중국민족 (편집: 김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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