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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빈, 그는 누구인가?

2017년 09월 18일 17:09【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주문빈(본명 김성호), 1908년 9월 23일, 조선 평안북도 의주 홍남동에서 태여났다. 아버지 김기창은 조선 독립혁명에 참가했다가 체포됐고 1914년 중국으로 건너왔다. 주문빈은 아버지와 함께 북경 통주에 와서 중국 국적에 가입했다. 중국에서 정착한후 그의 아버지와 형님은 모두 중국혁명에 참가했는데 그들의 영향하에 그도 점차 진보와 혁명을 추구하게 되였다.

1916년에 주문빈은 로하소학교에 입학했고 1921년에 로하중학교에 입학했다. 1926년 북경 중국공산당 지하당조직은 로하중학교에서 혁명사업을 개척했다. 로하중학교 고중 2학년 학생 굉경륭(宏庆隆) 등을 무한로동자운동에 파견하여 학습하게 했으며 주문빈, 장학연, 강경신, 장수태, 신철(조선족) 등을 발전시켜 공산주의청년단에 가입하게 했다. 1926년 3월 북경에서는 국내외를 경악시킨 "3.18"참안이 발생했는데 이때로부터 북방대혁명은 저조기에 들어섰다. 반혁명역류에 직면한 주문빈은 신념을 더 확고히 하고 1926년 7월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그는 학급내에서 “사회주의과학학습소조”를 조직하고 맑스레닌주의리론을 학습했다. 1927년, “4.12”정변후 백색공포하에서도 주문빈은 동요하거나 물러서지 않고 더 확고하게 당과 인민의 옆에서 혁명활동을 진일보 강화했다. 그는 학교에서 계속하여 공청당원 굉경륭, 장수태, 강경신, 김상호(조선족), 장학연 등을 중국공산당에 가입시키고 중공로하중학지부를 설립했다. 주문빈이 지부서기를 맡고 굉경륭, 강경신이 신임지부위원을 맡았다.

이는 통현(通县)에서 처음으로 건립된 중국공산당지부이다.

당지부가 설립된후 주문빈과 동지들은 로하의 사생과 통주인민들을 령도하여 국민당반동파와 견결한 투쟁을 진행했고 평민야간학교를 설립하여 로동자계급계몽운동을 전개하고 로동자의 각오를 높였으며 여러 학교의 선생님과 학생들을 이끌고 시위행진을 진행하여 일본제국주의의 폭행을 반대하고 국민당 반동파의 음모를 파괴했으며 광범한 혁명활동을 전개하여 혁명력량을 발전시키고 부단히 당의 조직을 강대해지게 함으로써 혁명불꽃을 통주에서 빠르게 퍼뜨려 료원의 불길로 타오르게 했다.

주문빈은 로하고중을 졸업한후 무순탄광에 파견되여 자하사업에 참가했다. 1936년 당산 시위서기를 맡았다. 1938년, 주문빈의 령도아래 개란오광(开滦五矿)의 35000명 광부들은 기세가 웅장한 총동맹파업을 진행하여 완전한 승리를 거뒀고 영국제국주의를 심각하게 타격하여 일본제국주의가 손을 쓸수 없게 만들었으며 거대한 정치영향을 산생시켜 기동항일대폭동의 전주곡을 울렸다.

1938년 주문빈은 광구 로동자폭동을 발동했다. 그의 동원과 영향 아래 선후로 7000여명의 봉기로동자들이 기동항일련군(冀东抗日联军)에 참가해 항일투쟁에 완강한 전사들을 수송함으로써 중국에서 도시산업로동자들이 무장봉기를 일으키고 항일에 참가하는 휘황한 기치를 수립했다. 기동대폭동이 끝난후 그는 기동(冀东)지위 서기 겸 팔로군 제1지대 정치부주임을 맡아 기동 동부지역의 항일투쟁을 령도했다. 그는 일이 있으면 모이고 평소에는 분산적으로 활동하는 령활한 방법을 쓰고 인민군중들에게 의존해 적들과 지혜롭게 싸워 기동항일근거지투쟁에서 돌출한 공헌을 했다.

주문빈은 기동지위 지도자중의 한사람이다. 1943년, 기열변구특위(冀热边区特委)가 설립했되였는데 주문빈이 조직부장을 맡았다. 1944년 10월, 변구특위는 풍윤(丰润)에서 회의를 소집했는데 갑자기 적들의 포위를 당했다. 주민빈은 군중과 동지들의 포위돌격을 엄호하기 위해 장렬하게 희생되였다. 그때 그의 나이가 36세 밖에 안되였다.

래원: 인민넷-조문판 (편집: 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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