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선생 탄생 100주년 특별련재—《해란강아, 말하라!》(20)
2016년 12월 14일 14:44【글자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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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도 일병이「토벌」을 나올 때만은 그 앞장을 서는「자위단」의 세력이 웃 골안 천지를 휩쓸었다。
따라서 그럴 때면 적위대의 주력은 산 속으로 진지 이동을 부득이 하였다。
하나 그것은-「자위단」의 점령은-썰물 때 불녘에 모래로 제방을 쌓는 거나 매 한가지의 헛일이였다。왜냐면 일병만 물러 가면、그리고 밤만 되면 적위대는 막아낼 수 없는 조수마냥 기세 사납게 밀리여 들어 와서는、웃 골안을 어느 한 귀퉁이 빼 놓지 않고 도루 몽땅 차지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러한 형세 하에서 왕남산이와 성길이는 아랫 마을에 그대로 박혀 있을 수가 없게 되였다。그들은 몸만 가지고 웃 골안으로 옮겨 왔다。
그 대신 나루를 맡아 보던 김 서방이「자위단」에 가입하였다。박승화가 끌어 넣었다。하나 기실은 이 쪽에서 계획적으로、말하자면 푸락지로 들여 보낸 것이였다。자기에게는 그런 두 다리 걸고 노는 놀음을 실수 없이 놀아낼 재간이 없노라고 나자빠지는 것을、장검이가 설복에 또 설복을 거듭하여 끝내 승낙시킨 것이였다。
김 서방은 그전에는 박승화가 눈을 가리고 종일 연자를 돌리라면、제 손으로 그 눈 가린 헝겊을 떼지 않고 해가 넘어 가도록 한 자리를 뱅뱅 말 없이 돌고만 있을 그런 사람이였다。그만큼 그는 융통성이 없고、고지식하고、성실한 사람이였다。
그러기에 박승화는 최원갑이의 반대를 물리치고、그를「단」원으로 받아 들이였다。
「그 자가 적위대 눔들허구 한통속이 돼가지구 날 잡아 주려댔는데 아、그걸 단에 받아 들인단 말이요?」최원갑이는 나루터에서의 일을 잊지 않고 꺼집어 들어 가지고 반대하였다。「난 그런 인간허군 가치 일헐 수 없수다!」
하나 박승화는 그것을 문제시 하지 않았다。도리어 김 서방을 두던하여 최원갑이의 말을 이렇게 반박하였다。
「그타문 영수랑 왕남산이랑을 싣구 건너 가다가 놓져버린 것두 그 사람 죄게? 아니야、최 서방은 사람을 볼줄 몰라! 김 서방은-믿을만헌 사람이야……흠이 있기야 하나 있지、뼈다구가 좀 무른 기。치만 강박을 당허문야 무슨 일을 누군 안 저질러? 그렇게 이것 저것 다 가리다간、생각해 보우、누구허구 누가 남겠나? 정말、최 서방、그러다간 우리 둘 바껜 남을 기 없을 거요!」
산야에 초목이 무성하고、밭에 곡식이 빼곡히 들어 차서 사람이 숨어 다니기에 알맞은 계절-한여름에서 가을이 끝나기까지의 사이-에는 일병의「토벌」바람도 좀 찜주룩 하였다。
소득이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풀수렁에서、나무 그늘에서、밭고랑에서 저격 당할 위험이 많았기 때문이였다。
그 대신 가을이 끝나기가 바쁘게、버들 잎들이 돌개바람을 타고 새 떼 모양으로 몰리여 날아 다니기 시작하기가 바쁘게、일병들은 준비 있는、계획성 있는 대규모의 공격을 그들이 일컬어「간도의 암」이라 하는 부락들에다 가하였다。
그리하여 핏 비린내 나는 참극은 해란구 전역에서 또 다시 벌어지였다。
암담한 나날이、저주로운 나날이 굼벙이 보다도 더 느리게、지렁이 보다도 더 느리게、물 맑은 해란강을 걸타고 음산한 그늘을 그 량안의 촌락촌락들에 진하게 지워 주며 기여서 지나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