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고향에 내려갔다가 우연히 친구가 운영하는 택시를 타게 되였다. 자가용으로 마련한 차를 농한기때마다 몰고나와 택시부업을 하고있다는 친구는 6년째 고향에서 규모농사를 지으며 남부럽지 않는 삶을 살고있었다. 해외나 연해도시에 나가야 출로가 있는줄로 생각하며 농사일을 기피하고있는 우리 사회에 당시 20대 문턱을 갓 밟은 친구의 농사일선택은 아주 “파격”적이였다. 그 “파격”적인 선택으로 친구는 한때 동네사람들의 비웃음거리로 되였고 집에 어린애가 있는 부모들은 “너도 커서 모모처럼 농사질할래?”하는 식으로 애들을 공부하라고 닥달했다.
필자도 마찬가지였다. 마침 필자가 대학교에 입학하는 해부터 친구가 농사일을 시작했기에 간혹 먼지를 뒤집어쓰고 일밭에서 돌아오는 친구와 마주칠 때면 련민의 눈길을 줄 때가 많았다.
친구에게도 외지나들이길이 없었던것은 아니다. 한동안은 연해도시를 전전하며 꿈을 찾아 헤매기도 했지만 친구는 어차피 배운 지식이 없어 밖에서 일해봐야 남에게 시기만 당하고 밥벌이가 힘들다고 생각하고는 귀향했다. 그리고는 한국으로 떠나려는 아버지에게 한국행을 포기하고 자기에게 농사일을 배워달라고 졸랐다고 한다.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으며 농사를 시작했지만 부지런하기만 하면 잘될줄 알았던 농사도 결코 쉬운것만은 아니였다. 글이 짧은탓에 한전에다 치는 농약을 잘못 알고 논밭에다 뿌려 벼산량을 절반이나 감소시켰고 농약을 뿌리다 배가 고픈 나머지 손을 씻는것도 잊은채 빵을 뜯어먹다가 농약중독으로 병원에 가 구급을 받은적도 있었다. 하지만 해를 거듭하면서 농사일에 미립에 터 18무나 되는 밭을 어려움없이 가꿀수 있을뿐만아니라 이앙기, 수확기, 뜨락또르 등 농기구는 물론 자가용을 마련하고 살림집도 아담하게 장식해 얼마전엔 예쁜 색시를 찾아 결혼식까지 올렸다고 한다.
“농사는 일년에 일할 시간이 3개월남짓이야. 그 남은 시간에 그냥 앉아 놀기는 아깝잖아. 그래서 수박을 심어 여름이면 팔기도 했었고 요 몇년은 택시부업을 쭉 견지하고있어. 꾸준히 하니깐 농사일도 제밥 할만하네…”
친구가 게면쩍게 웃으면서 하는 말이다.
“이젠 농사일도 기계화다보니 힘을 쓰는 일이 거의 없어. 자유스럽고 남들이 버리고 간 땅을 도급맡아 규모농사를 지으면 해외나들이 못지 않게 수입이 톡톡하거든. 그래서 지난해엔 웃동네에서도 한 젊은애가 귀향해 농사를 지었다더라.” 옆에 같이 탑승한 아저씨가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해주는 말이다.
일에는 귀천이 없다고 했다. 당시 비웃음거리로 되여 온 동네 사람들의 말밥에 오르내리던 친구의 그 “파격”적인 선택이 이젠 우리 젊은 청년들에게 “자기 노릇”을 톡톡히 할수 있는 새로운 출로가 되지 않았냐는 생각이 들면서 오늘따라 고향마을이 더욱 활기차보인다.
래원: 료녕조선문보 | (편집: 김홍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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