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국가당안국은 5일 공식사이트를 통해 "일본 중국침략 전범 서면자백서 선집" 제26집-키바야마 키하치로를 발표했다.
제26집 개요에 따른 키바야마 키하치로의 1954년 7월 15일 서면자백서에 의하면 그는 1922년에 출생했으며 일본 도쿄사람이다. 1940년 중국침략전쟁에 참가했으며 1945년 8월에 포로되었다.
중요한 죄행은 다음과 같다.
1940년 5월, 산동성 자양(滋陽)현에서 중기관총의 위력을 점검하기 위해 "멜대를 메고 지나가는 40~50세 중국인민을 겨냥하여" "30발을 쏘았으며" "5명의 중국인민을 학살"했다.
1941년 12월 산동성 래무(萊蕪)현에서 50세 정도의 농민에게 물을 억지로 마시게 하고 고문한 뒤 한 공범이 "군도로 목을 쳤는데 죽지 않아 내가 다시 총검으로 그의 흉부를 찔러 학살"했다.
1942년 7월 산동성 관(冠)현에서 50세 정도의 농민을 체포해 공범과 함께 그를 사닥다리에 포박해 놓고 "물을 억지로 마시게 했으며", "내가 95식군도로 그의 배를 찔러 학살"했다.
1943년 6월 산동성 료성(聊城)현에서 감금된 국민당 포로 중 "12명의 대장염 환자가 발생했는데 그 환자들을 치료해주지 않았으며", "아무런 음식도 주지 않았고 12명(25세 정도의 남자)을 학살"했다.
그후 또 5명의 환자가 속출했는데 "5명의 감시병들더러 이 5명 환자를 동창(東昌)성 북문근처의 오목지대에 데리고 가게 했으며 이 항일군 사병 2명을 찔러 죽이고 3명을 사살하도록 명령"했다.
1943년 7월 "병력이 부족할 즈음에 반드시 독가스로 보조"할데 관한 비밀문서를 직접 제3중대장에게 넘겨주었으며 "동시에 독가스: 적통소형 60개, 청통소형 20개를 넘겨주었다". 그달 하순 팔로군과의 작전중 중대장이 "독가스를 퍼뜨리라는 명령을 내렸고 결국 홍청(紅靑)통 소형 독가스 6개를 퍼뜨렸다".
1943년 9월 림청(臨淸)에서 "위하(衛河)방파제 파괴 음모"계획의 조직, 집행에 참여했는데 목적은 "위하의 수위상승을 리용해 방파제를 무너뜨려 해방구가 물에 잠기게" 하기 위해서였다.
공범이 "방파제를 넓이 150메터로 뚫었는데" 결국 "인구 약 100만명, 가옥 약 20만세대가 수재피해를 봤다. 수확전에 식량이 결핍하고 전염병이 발생해 굶어죽은 사람이 2만여명이나 되었다. 수재로 논밭 10만헥타르가 파괴되고 농작물 48만톤이 피해를 봤다. 수재로 무너진 가옥이 약 2000세대에 달했다".
1945년 1월 산동성 도(陶)현 모촌에서 "텅 빈 마을 100세대 가옥 방화"에 참여했다. 2월 관현에서 "200세대 빈 가옥 방화"에 참여했다. 3월 산동성 치평(茌平)현에서 "60세대 빈 가옥 방화"에 참여했다.
1940년 9월부터 1945년 5월사이 산동성 연(兗)주, 래무현, 료성현, 양곡현, 림청현, 제남(濟南)시, 우성(禹城)현 등지에서 "합계 30명(중국녀성 16명, 조선녀성 14명)"에 달하는 "위안부"를 성폭행했다.
래원: 국제방송 | (편집: 임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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