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자와 카즈에(金泽一江)가 1954년 8월 18일 자백한 진술에 따르면, 그는 1943년 중국 침략 전쟁에 참가했고 1945년 8월 포로가 됐다.
주요한 죄행은 다음과 같다.
1944년 10월, 하남(河南)성 영양(荣阳)현에서 항일전쟁에 참가한 중국인 3명을 취조했다. 부하 2명에게 시켜 "촛불로 중국인(남성) 2명의 코를 지지고 중국 민간인 여성 한 명의 하의를 벗겨버린 후 선향(線香) 한 줌에 불을 붙여 그녀의 몸에 대고 눌러 태웠다. 또 이들 3명의 허벅지를 긴 의자에 묶고 발꿈치 아래 벽돌을 받쳐 종아리부위를 위로 구부러지게 했다. 이런 방법으로 약 2시간 취조했다."
이틀 후 "명을 받고 중국인 3명을 찔러죽였다.", "신병에게 사람을 찔러죽이는 동작을 가르치고 찔러죽이는 과정에 신병들의 동작을 바로잡아 주기도 했다"
찔러 죽일 때 중국인이 죽지 않을까 걱정된 일본 군 모 중사는 부하 한 명에게 명을 내려 "중국인을 한 명씩 찔러 죽일 때마다 머리 뒤에 대고 보총을 쏘게 했다.", "그래서 앞골이 깨져 뇌장이 튀어나오게 했다. 그리고는 시신을 웅덩이에 차 넣었다."
1944년 10월부터 11월까지 영양현에서 "일본제국주의 침략자들이 설립한 강간소에서 17~18살 되는 중국인 여성 한 명을 강간했다."
그리고 모 진의 강간소에서 "20살 쯤 돼 보이는 중국인 여성 한 명을 강간했다."
1944년 11월, 영양현에서 "중국 침략 일본 장병들의 동물적인 성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주둔 분대장의 명령에 따라 병사 2명을 지휘해 주둔 분대 옆의 빈방 한 칸을 강간소로 만들게 했다." 그후 "정주(郑州)시에서 중국 여성 2명을 강제로 데려왔다......그리고 하루 밤을 감금해 감시한 후 주둔 분대 병사 14~15명을 시켜 윤간하도록 명령했다."
1945년 6월, 하남성 정주시의 "강간소에서 22살 쯤 돼 보이는 조선인 녀성 한명을 두번 강간했다."
래원: 국제방송 | (편집: 김홍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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