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8월 18일에 진술한 일본 전범 미야카와 사부로의 자백서에 따르면
미야카와 사부로는 1920년에 일본 가나가와현에서 태어났다.
미야카와 사부로는 1942년에 중국침략전쟁에 참가했으며 1945년 8월에 포로됐다.
미야카와 사부로의 주요 죄증은 다음과 같다:
1942년 8월의 어느 날, 산동성 래완(山东省 莱莞县)현의 한 촌 마을에서 12명의 현지의 남성 평민들을 한 집안에 가둬놓고 수류탄을 던져 모두 살해했다. 또 2명의 피난민 농민을 총칼로 각기 두 번씩 찔러 숨지게 했다.
1943년6월, 산동성 당바현(堂巴县)에서 다섯 통의 독카스탄을 사용했으며 군사의 습격을 맊기 위해서란 가상밑에 100여 구에 석유를 뿌리고 한 개 마을을 몽땅 불태워버렸다. 이 전투에서 미야카와 사부로는 서쪽으로 부터 포위해 들어가면서 독카스를 뿌리고 불을 질렀다.
1943년9월, 산동성 조성현(朝城县)에서 한 농민을 붙잡아 발로 차고 몽둥이로 때리고 총칼로 찔러 숨지게 했다.
산동성 양곡현(阳谷县), 래현(莱县) 부근에서 20명의 농민을 붙잡아 경기관총과 보총으로 살상하고 20명의 팔로군포로들에게서 정보를 얻기위해 10명을 나무에 달아매고 때리면서 고문하여 숨지게 했다. 미야카와 사부로는 또 평민 한명을 보총으로 쏴 숨지게 했다.
1943년10월, 산동성 장구현(章丘县)의 한 마을에서 25세쯤되는 녀성을 강제로 조용한 곳에 붙잡아다 놓고 10명의 일본군인들이 륜번으로 강간 했다. 미야카와 사부로는 5번째로 강간했다.
1944년2월, 산동성 장구현(章丘县)의 한 마을에서 25세쯤되는 녀성을 강제로 조용한 곳에 붙잡아다 놓고 3명의 일본군사들이 륜간했다.
1944년 9월, 산동성 태안현(泰安县)에서 30살 쯤되는 남성농민을 붙잡아 침대에 손발을 묶어놓은 다음 입을 틀어맊고 다섯 주전자나 되는 차물을 마구 부어넣으면서 고문하여 숨지게 했다.
1945년6월부터 1945년 7월 13일 까지, 산동성 래완현, 장구현, 력성현, 태안현에서는 일본군이 만들어 놓은 <위안소>에서 10명의 중국 녀성 (20세부터 25세 사이 )과 20명의 조선 녀성(23세 부터 27세 까지) 등 30명을 일본군인들이 강간했다.
래원: 국제방송 | (편집: 김홍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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