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백현조선족중학교 변강민족인재양성의 요람으로 거듭난다
2014년 07월 29일 16:03【글자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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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백조중 허흥규교장 |
"장백조선족자치현 조선족중학교는 1946년도에 설립, 해방전쟁의 초연속에서 간고하게 성장하였고 당의 민족정책의 찬란한 빛발아래 장대하게 발전해왔으며 개혁개방의 봄바람속에서 번영해왔다.학교는 또한 공화국과 함께 성장했고 자치현과 함께 번영해왔다.
오늘 나는 성급 조선문당보인《길림신문》을 통해 우리 학교 500여명 사생들을 대표해 조국의 방방곡곡에서 열심히 사업하고있으며 장기간 우리 학교발전에 따뜻한 관심과 사심없는 손길을 보내준 각 계층 지도자들과 관계부문, 조선족유지인사들에 삼가 뜨거운 감사를 드린다.
민족인재양성이 민족학교의 신성한 의무라고 본다. 우리는 계속 시종일관하게 당의 교육방침을 높이 받들고 우리 학교를 민족교육의 요람으로 우리 민족의 인재양성에 최선을 다할것이다.
바라건데 당과 정부는 물론, 사회각계에서 우리 학교를 적극 지지해주고 우리 학교의 무궁무진한 발전에 다함없는 방조와 도움을 주었으면 한다".
장백조선족중학교 허흥규교장의 속심의 말이다.
압록강반에 우뚝 솟은 민족교육의 요람
압록강반에 우뚝 솟아 68년의 력사를 자랑하는 장백조선족자치현 조선족중학교는 산좋고 물맑은 아름다운 변경소도시-장백현성의 서남부, 압록강반의 북안에 자리잡고있으며 압록강을 사이두고 조선 량강도 혜산시를 마주하고있다.
장백현조선족중학교는1946년 6월 15일, 장백조선족들의 자발적인 조직과 노력에 의해 설립된 민족하교이다. 학교는 해방전쟁, 항미원조와 대약진, 반우경투쟁, "10년대동란"등 정치운동의 소용돌이속에서 갖은 곡절을 겪어오면서 더없이 간고한환경속에서도 학교를 계속 꾸려왔다.
학교는 선후로 장백조선족학교, 장백조선족중학교, 장백현제2중학교로 이름을 불러오다가 2006년도에 장백현조선족중학교로 이름을 고쳤다.
설립초기 학생63명, 교원 5명이던 이 학교는 현재 417명의 학생에 76명의 교직원을 갖고있는 정규적인 성중점 완전중학교로 발전해왔으며 변강민족인재양성의 요람으로 되였다.
학교설립 68년간 학교는 민족특색의 학교, 변강민족교육의 요람으로 나라에 수많은 민족인재를 양성해냄으로써 당의 민족교육사업과 민족지구의 번영창성을 위해 커다란 기여를 해왔다.
활발한 교수연구활동 교수질 제고
근년래 학교에서는 교원대오건설을 강화하고 교수개혁을 심화하며 매 학기마다 모범교수안설계활동과 시범과교수활동, 교원기본기능시합, 학과목교수연구 등 다양한 형식의 교수연구활동을 활발히 진행함과 동시에 로교원이 젊은 교원을 이끌고 서로 배우며 존중하는 훌륭한 기풍을 수립하게 되였다.
학교에서는 또 여러 학급과 학년부에 교수연구소조를 설립하고 학기마다 초, 고중별로 "로교원시범과", "골간교원표현과", "청년교원회보과", "보통교원공개과","교수능수"평선활동 등 교수업무를 연찬하고 교수방법을 창신하는 새로운 교수연구활동을 착실히 벌여나갔다.
본학교의 실정에 비추어 과학적인 교수방법과 엄격한 관리제도를 제정했으며 창신교육을 돌파구로 교육교수방법을 부단히 개진했다.
원래의 45분간 과당수업을 40분으로 정하고 원래의 오전 4과당시간을 5과당시간으로 늘려 조선족학교에서 한어과 한 과목이 더 많아 기타 과목의 과당시간이 부족한 실제문제를 해결했으며 교원들의 창도적인 교수법을 권장한데서 학생들의 학과목과당수업이 현저한 제고를 가져왔다.
이와 동시에 자질교육을 틀어쥐고 창의교육으로 제2과당활동을 활발히 벌여 학생들의 전면발전을 힘써 추진한데서 학교의 재반 사업이 점차 규범화 되고 교원들의 사업적극성을 크게 불러일으켰다.
현재 이 학교는 실무자질이 높고 정력이 왕성하며 학교령도에 복종하고 교수에 능한 우수교원들이 교수일선에 나서고있다.
민족학교의 특색을 살려 교수개혁을 심화>
지난 몇년간 이 학교에서는 10여명의 나젊은 교원들이 외국에 돈벌이를 나갔거나 외지로 전근되여 가면서 교원대오가 몹시 결핍했고 또 많은 학부모들이 한국, 일본, 로씨아, 오스트랄리아 등 발달한 나라와 연해지역에 돈벌이를 떠나면서 학교에는 편부모자식들이 날따라 많이 늘고있는 상황이다.
이런 실정에 비추어 근년래 학교에서는 교원대오건설을 진일보 강화하고 민족학교의 특색을 살려 교수개혁을 부단히 심화한데서 학교의 교육교수질은 현저한 제고를 가져왔다.
이 학교의 허흥규교장, 최옥숙, 김일부교장을 비롯한 학교지도부성원들은 일반 교원들과 마찬가지로 시종 교수일선에서 과당수업을 진행, 교원들에게 모범역할을 보여주고 그들의 사업적극성을 크게 불러일으키고있다.
학교에서는 본학교의 교수실천경험에 비추어 조선어, 일어, 한어와 영어학과를 설치했다. 한어과를 한어로 강의하는 외 기타 과목은 전부 조선어로 강의하게 한데서 학생들이 언어상에서 우세를 점해 전 성 "3가지 언어"경연에서 여러차례나 우수상을 획득했다.
한편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흥취와 애호에 따라 학생들의 특기양성에 힘을 기울이고있다. 선후로 문학소조, 웅변소조, 미술소조와 륙상대, 축구대, 무용대, 악기대 등 활동소조를 설립했으며 해마다 "5.4"문예공연 "12.9" 웅변시합, "6.15"학교운동대회를 진행하고있다. 또 학기마다 주제학급모임, 우수학생평의, 작문써클, 3중어웅변시합, 변론시합, 문예공연 그리고 롱구, 축구, 배구시합과 간이체조시합 등 각종 문체활동을 활발히 벌여 학생들에게 광활한 발전무대를 마련해주고 장끼를 발휘시키고 있으며 그들의 학습흥취를 불러일으켜 과당교수효과성을 크게 제고시켰다.
학교에서는 민족학교의 특점에 따라 학생들의 과당수업을 억세게 틀어쥠과 동시에 그들이 사회의 현실생활에 적응할수있는 생활자립능력, 림기웅변능력 그리고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접수능력을 키웠으며 학생들에 대한 사상품성교양과 애국주의교양, 건강한 심리자질양성을 진행함으로서 학생들로 하여금 덕, 지, 체, 미, 로가 전면발전하도록 했다.
이와같이 한데서 학교는 전에 학생들이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싸우며 유희청에 드나들거나 도박을 노는 등 불량한 현상들이 점차 자취를 가추었다.
정부의 관심으로 학교교수환경 크게 개선
장백현당위와 정부에서는 시종 당의 민족교육사업에 각별한 중시를 돌리고 이 학교에 많은 자금을 투입하고있는바 학교교수환경이 크게 개선되고 있다.
알아본데 따르면 1978년, 현정부에서는 64만원의 자금을 투입해 건평이 2600평방메터에 달하는 3층 교수청사를 짓고 1996년에는 267만원을 투입해 건평이 1000평방메터에 달하는 학교실험실청사를 건설했으며 2004년에는 249만원의 자금으로 건평이 1060평방메터에 달하는 학생기숙사를 새롭게 지었다. 그리고 2007년에는 123만원의 투입으로 교수청사를 훌륭하게 장식했으며 2009년에는 23만원을 지불해 학교창문을 몽땅 비닐강으로 바꾸고 2009년에는 75만원을 투입해 학교변소를 새로 짓고 운동장을 훌륭하게 건설했다. 또한 2012년에는 83만원을 들여 실험실청사를 훌륭하게 장식했다.
이밖에도 현정부에서는 또 지난해 1350만원의 자금을 투입해 지금 한창 새롭게 건설되고있는 학교교수종합청사는 건축총면적이 5520평방메터에 달한다. 학교의 원래 창고자리를 허물어 조선족풍격을 살려 4층으로 훌륭하고 멋지게 짓는데 금년 국경절전으로 시공을 마무리고 새교사에 입주하게 된다.
현재 이 학교는 부지면적이 2만 4417평방메터, 건축면적은 8904평방메터에 달한다. 완벽한 물리, 화학, 생물실험실과 컴퓨터실, 어음실, 무용실, 열람실, 멀티미디어실이 있는가 하면 800여명을 용납할수 있는 대형회의실과 800평방메터의 체육활동실이 있으며 2만4000권의 도서를 장서한 도서실 등 교수시설로 동북3성 조선족완전중학교에서 그 지명도가 비교적 높다.
고등학교입시 좋은 성과 이룩
근년래 장백현조선족중학교의 교수질은 날따라 현저한 제고를 가져왔고 대학입시에서 해마다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2000년도이래 지금까지 선후로 1650여명의 우수학생들을 대학교에 수송, 그중800여명의 우수학생들이 청화대학, 북경대학, 중국인민대학, 중국과학기술대학, 북경사범대학, 상해외국어대학, 중앙민족대학, 복단대학, 길림대학 등 전국 20여개 국가중점대학을 졸업하고 지금 조국의 방방곳곳에서 나라의 현대화건설에 적극 기여하고있다.
뿐만아니라 학교는 다년간 대학교 진학률이 90%이상 중점대학 진학률이 20% 이상을 확보하고있다. 북경대학에 6명, 청화대학에 4명, 중국과학기술대학에 1명, 중국인민대학에 3명, 북경사범대학에 7명 진학했다.
2002년, 서련숙학생은 총점수 615점의 성적으로 백산시문과 3등으로 북경대학에 록취되고 2003년, 이 학교의 허금매학생은 백산시문과장원, 길림성 문과3등이란 우수한 성적으로 북경대학에 진학했으며 2004년에는 김용학생이 백산시 리과장원, 길림성 리과4등이란 좋은 성적으로 청화대학에 진학했다. 특히는 2006년, 장백조중은 대학입시에서 대풍작을 거두었는바 도합 102명의 응시생중 중점선에 든 학생이 22명, 본과선에 든 학생이 66명으로서 각기 21.6%와 64.7%를 차지했으며 대학진학률이 98%에 달했다. 리영수학생은 문과 총점수 675점의 우수한 성적으로 백산시 문과장원, 길림성 문과 7등의 좋은 성적으로 북경대학에 진학했으며 최군건학생은 리과 686점으로 장백현 리과장원, 백산시 리과 6등이란 우수한 성적으로 청화대학에 진학했다. 그리고 전대길학생은 문과 638점으로 중국인민대학에 진학했다.
올해 이 학교에서는 또 한차례의 자랑으로 차넘치는 좋은 성과를 이룩했다. 도합 77명의 고중졸업생이 전국고등학교입시에 참가했는데 그중 중점대학록취선에 든 학생이 15명이고 본과대학록취선에 든 학생이 62명에 달해 각기 27.3%와 81.8%를 차지했다. 이 학교의 김광림학생은 총점수 630점(10점가함)의 좋은 성적으로 전 현 리과 1등을 해 길림대학에 록취되고 량복화학생은 총점수 642점(10점가함)의 우수한 성적으로 전 현 문과 2등을 하여 절강대학에 록취되였으며 김단양학생은 총점수 632점(10점가함)의 좋은 성적으로 전 현 문과 3등을 하여 북경사범대학에 록취되였다. 이밖에도 많은 학생들이 중국정법대학, 산동대학, 동북재정대학, 중앙민족대학, 동북사범대학 등 국가급 중점대학에 록취되였다.
학교의 제반사업 비약적으로 발전
엄격한 교수관리와 전체 교직원들의 다함없는 노력으로 학교의 제반사업이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1995년도이래 학교는 선후로 "전국민족단결진보모범단위", "전국중소학교10대창신학교", "전국교육계통선진집단", "길림성민족단결진보모범집단", "성체육위생선진학교", "성록화붉은기단위", "성실험실선진단위", "성 가장 아름다운 교정학교", "성2급당안실", "백산시민족단결진보선진집단", "시교육진보특별상", "시고중교수우승학교", "시고중교수사업우수단위", "장백현로력모범선진집단", "현문명기준병단위", "현선진당지부", "현정신문명선진단위"등 영예칭호를 수여받았다.
또한 학교에서는 시종 교원대오건설에 모를 박고 높은 중시를 돌렸는바 많은 우수교원들이 용솟음쳐나왔다.
지금까지 국가급우수교원 1명, 성로력모범 1명, 성특급교원 1명, 성기준병교장 1명, 성급우수교원 2명, 성급골간교원 6명, 시급우수교원 9명, 시기준병교장 1명, 시급선진사업자 1명, 시급모범교장 1명, 시급모범교원 2명, 시급교수능수7명, 시급학과목대표12명이 있다. 그리고 230여편의 교원학술론문과 경험문장들이 국가와 성, 시급 전문연구토론회와 각종 신문잡지에 발표되였다.
장백조중은 다년간의 꾸준한 탐구와 실천을 거쳐 학교운영에 특색이 있고 교수에 특점이 있으며 학생이 특장이 있고 환경이 아름다운 민족학교로 부상, 학교는 동북3성 산재지역조선족학교에서 규모가 비교적 크고 지명도가 높은 학교로 발전해왔다.
학교운영과정에 존재하는 문제와 부족점
장백현조선족중학교 역시 학교운영과정에 자금부족과 학생원천 등 방면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있다. 학교운영과정에 존재하는 곤난문제와 부족점에 대해 이 학교 허흥규교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교원부족문제: 장백조중은 편벽한 산간지대, 변강지역에 자리잡고있어 경제, 교통 등 방면에 기타 지역과 비교하면 모두 상대적으로 락후한 편이다. 각방면에 우수한 모교의 학생들은 대학입시에서 일반적으로 사범류 대학을 지망하지 않는다. 사범류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은 또 본지방에 돌아오려고 하지 않는다. 그나마 학교의 일부 능력있고 나젊은 우수교원들은 몇해전에 벌써 교원사업을 버리고 외국으로 출국하거나 연해지역에 장사를 떠나는 바람에 학교에는 골간교원수가 엄중히 결핍한 상황에 놓이게 되였다.
2. 학생원천 결핍문제: 장백현은 전 현 인구가 8만명을 넘기고있다. 비록 조선족자치현이라고 하지만 그중 조선족인구가 겨우 1만4000명 밖에 안된다. 그나마 근년래 장백현은 많은 조선족들이 로무송출, 외국나들이로 정든 고향을 떠나갔고 대부분 대학졸업생들이 외지에서 취업하고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계획출산 등 원인으로 말미암아 장백조중은 최근 10년사이 학생수가 절반으로 줄었다. 지금은 해마다 50명학생을 모집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학교에는 조선족외에 한족을 포함한 기타 민족의 학생들도 적찮게 있다. 그들은 비록 소학교 때부터 조선족학교에 다니며 조선어를 배워왔지만 조선어문기초가 박약하여 조선어를 위주로 교학하는 이 학교실정에 적응하기 어렵다.
허흥규교장 프로필:
장백현조선족중학교 허흥규교장은 1963년도 장백현에서 출생, 1982년 장백조중을 졸업한후1982년 7월부터 1986년 6월까지 동북사범대학 생물학부에 전공했으며 1986년 7월부터 지금까지 장장 29년간 줄곧 장백조중에서 교원사업에 종사해왔다. 학교에서 초, 고중생물학을 가르쳤고 남다른 열정과 적극적인 사업태도로 실무자질을 부단히 제고한데서 선후로 교무처부주임, 정치처부주임, 주임직을 맡았으며 2002년8월부터 부교장을 력임하다가 우수한 사업성과로 하여 2013년 8월에 정식으로 교장직을 짊어지게 되였다.
1995년부터 2004년까지 백산시정협 제3기, 제4기 위원, 상무위원을 력임했고 2000년 중학교 부고급교원으로 평의되였다. 2003년 중국공산당 가입, 선후로 "백산시 고중생물학과 새별", "백산시 생물학과 선두자", "시우수교원", "시모범교원" 등 영예칭호를 수여했다. 현재 전국조선문교재심사위원회 위원을 겸하고있다(최창남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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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지도부 성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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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교직원 일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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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학을 연찬하고있는 학년부 주임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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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내운동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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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찬 교원대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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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무용대에서 출연하는 조선족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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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내에서 진행하는 조선족씨름경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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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허물게 되는 지금의 교수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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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허물게 되는 지금의 교수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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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준공하게 될 새교수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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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교육계통선진집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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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단결진보모범단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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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교장 최성남 (전국10대창신교장, 성로력모범, 성우수당원, 성중소학교 정고급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