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북경 장아찌가게 력사
2014년 03월 14일 09:18【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mediafile/201403/14/F201403140919596516700606.jpg) |
|
북경 장아찌의 력사는 남북조시기로 거슬러 올라갈수 있다. 원나라때 대도(大都, 당시 원나라 서울)의 장아찌 제조기술 발전 및 명, 청나라때 부식품업의 분화는 북경장아찌 제조업의 형성에 튼튼한 기반을 마련해줬다. 명나라때 북경은 초보적인 장아찌제조업이 형성되었는데
해마다 음력 6월이면 야채 초절이가 시작되였고 9월이면 본격적인 장아찌제조의 성수기에 진입했다. 청나라때 장아찌제조업은 진일보 발전되여 일부 가게들은 장아찌가게로 점차 발전되였다. 륙필거(六必居), 계형재(桂馨斋), 천원장원(天源酱园)은 가공기술이 뛰여나고 제품 맛이 훌륭하여 일찍 궁중 어용식품으로 꼽힌바 있다.
륙필거는 산서성의 조씨가 창설한 것으로서 주로 팔보채(八宝菜)와 포과(包瓜) 등 장아찌를 제조, 경영하는 전통가게이다. 최초의 륙필거는 전문거리에 위치하고있었으며 명나라 가정황제(1530년)때 개업되였다. 청나라 광서 26년(1900년), 팔국연합군이 베이징을 침략하면서 육필거 장원은 불에 타버렸고 다행이도 한 점원이 륙필거 편액을 구해냈기에 오늘까지 그 편액을 보존할수 있게 되였다.
천원장원(天源酱园)은 청나라 동치 8년(1869년)에 개업되였으며 창시인- 유잠선은 당시 옛북경 전당포의 4대 업자중의 1인이였다. 그는 백은 2천냥으로 서장안거리의 한 가게를 구입해 천원장원으로 재건했으며 장아찌를 생산, 경영했다. 천원장원의 장아찌 제조법은 청나라 궁중요리사로부터 전해진것이므로 가공이 섬세하고 맛이 훌륭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뜨거운 인기를 얻고있다.
계형재 장원(桂馨斋酱园)은 청나라 건륭 원년(1736년)에 건립되였으며 중국 남방 풍미의 장아찌를 제조, 경영했기에 "남장원"이라고도 불리운다. 계형재의 창시인은 남방에서 온 한쌍의 부부였는데 최초 그들은 시장에서 노점을 벌여 장아찌를 만들어 판매하던데로부터 점차 큰 가게를 임대하여 계형재 장원을 건립했다. 계형재는 절여서 반건조한 배추, 절여 말린 갓 등이 유명하며 "동채로점(冬菜老店)"이라고도 불리운다. 계형재의 제품은 간이 알맞고 향이 농후하여 시민들의 환영을 받았을뿐만아니라 당시 궁중의 중시를 받기도 했다. 계형재의 전통제품으로서 갓 장아찌는 북경에서 유명하며 전통브랜드- 정명재의 "갓 월병"은 계형재의 갓 장아찌를 주재료로 제조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