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봉선(-1938, 희생 당시 20여세): 동북항일련군 제2로군 제5군 부녀단 소속, "8녀투강"영웅사적속의 한 주인공
목단강시 강빈공원광장에 우뚝 솟은 《팔녀투강기념비》는 중국공산당이 령도한 동북항일련군의 8명 녀전사가 일본침략자들과 영용히 싸우다가 왜놈들에게 사로잡히지 않기 위하여 목단강에 뛰여들어 순국한 영웅사적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조각군상이다.
1938년 봄, 일본관동군은 송화강하류에서 《3강대토벌》을 감행하였다. 당시 동북항일련군 제5군 제1사에는 30명으로 구성된 녀성단이 있었는데 그들 중에는 랭운(원명 정지민), 호수란, 양귀진, 곽계금, 황귀청, 리봉선, 왕혜민, 안순복 등 8명이 있었는데 리봉선과 안순복은 조선족이였다.
그해 10월의 북방날씨는 매우 차가웠다. 추위를 몰아내기 위해 전사들은 강변에 모닥불을 지피고 숙영했다. 일본괴뢰특무 갈해록은 모닥불을 발견하고 항일련군이 강변에서 휴식하고 있는 소식을 일본수비군에게 고자질했다. 하여 항일부대는 야밤에 일본군과 괴뢰군 천여명에게 포위되였다. 날샐녘에 항일련군이 일본군을 발견하고 포위를 뚫고나가려 할 때 랭운과 7명 녀전사는 적들을 유인하는데 성공하여 항일련군이 적의 포위를 성공적으로 뚫고 나갈수 있도록 도왔다. 그러나 8명의 녀전사들은 배후로 습격한 적들의 포위를 뚫을수 없게 되였다. 포로가 될수 없다고 생각한 전사들은 마지막 수류탄 하나를 뿌려 적들이 엎드리는 틈을 타서 결연히 차디찬 강에 뛰여들어 《팔녀투강》의 장려한 편장을 엮었다. 8명 녀용사들은 조국의 해방을 위하여 나젊은 생명을 바쳤는데 나이가 제일 많은 전사가 25살이고 제일 어린 전사가 13살이였다.
해방후 나라에서는 《팔녀투강》을 제재로 《중화의 딸》이라는 영화를 제작하여 그들의 영웅적기개를 찬양하였다. 1986년 9월 7일, 팔녀용사를 기념하기 위하여 목단강반에 《8녀투강기념비》를 세웠다. 전국정협 부주석 강극청이 《팔녀영령은 영생불명하리라》는 친필제사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