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비록 장애지만 자립자강으로 인생을 보람차게 살아가는 부부가 있다. 그들이 바로 장백조선족자치현 십사도구진 안락촌의 금년에 51세에 나는 최동희, 신명순(동갑나이)부부이다.
어린시절 그들도 아름다운 꿈이 많았지만 소아마비후유증으로 둘 다 장애자로 되였다.
남편 최동희씨는 머리가 총명해 어릴때부터 공부를 잘하고 남을 돕기 좋아해 선생님들과 학생들의 칭찬이 많았지만 고중을 졸업하고 농촌에 돌아 온 후 가정생활이 어렵고 또 몸도 장애다 보니 대학교시험도 포기한채 고향마을에서 농업생산에 종사해야만 했다.
안해 신명순녀성은 중학교를 졸업한후 지금의 금화향 산포촌에 돌아가 줄곧 농사일에 종사해왔다.
1985년 최동희, 신명순부부는 마음씨 고운 사람들의 소개로 백년가약을 맺고 다정한 부부로 되였다. 그때로부터 그들은 서로서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생활의 모진 어려움을 적극 극복하면서 알뜰살뜰 화목하게 살아왔다.
최동희는 한가지 포부가 있었다. 바로 농민들의 병을 봐주는 농촌의사가 되는것이였다. 비록 몸은 장애였지만 매일같이 낮에는 일밭에 나가 농민들과 함께 생산로동에 참가했고 저녁이면 밤늦게까지 독학으로 농촌의료위생지식에 관한 서적들을 부지런히 탐독했다.
그는 자비로 장백위생학교를 졸업하고 또 선후로 여러차례나 성, 시위생계통에서 조직한 향촌의사양성반에 참가해 자신의 실무자질과 문화지식을 부단히 제고했으며 끝내 우수한 성적으로 의사시험에 합격되였다. 이리하여 그는 1986년부터 촌위생소에 출근하게 되였다.
신명순녀성은 시집을 오자부터 시집형제들과 서로 믿고 도우며 아주 화목하게 지냈다.
장애인 몸으로 남처럼 일밭에 나가 육체로동을 할수없는 상황에서 그는 집 한칸에 소매점을 꾸리고 촌위생소에서 사업하고있는 남편의 일을 적극 도와 나섰다. 그러면서 남편과 함께 두 딸을 낳아 애지중지 키우면서 생활의 모진 어려움을 이겨냈다.
장애자로서 네식구의 생계를 유지한다는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였다. 이들 부부는 아침일찍부터 저녁늦게까지 손발이 놀새없이 부지런히 일해야 했다.
근 30년간 이들 부부가 아글타글 일한 보람으로 가정생활이 날따라 꽃펴가고 있다.
현재 그들은 촌중심에 150평방메터에 달하는 큼직한 살림집을 갖고있으며 집 한켠에 촌위생소를 도맡아 꾸리고 한켠에는 일상용품상점을 차려놓고 마을사람들을 위해 열심히 봉사하고있다.
특히 근년래 두 딸을 고중까지 졸업시키고 일본에 출국시켜 살림이 날따라 피여나고있다. 성소재지인 장춘시에 100평방메터에 달하는 난방아빠트 주택을 구입하고 또 집에는 자가용까지 갖추어 놓아 도시사람들부럽잖게 잘 살아가고 있다.
가정생활이 구차하여 그처럼 어렵게 살아가던 그들이 인젠 손에 돈이 있고 부유해지자 마을사람들을 적극 돕고있다.
일부 곤난호들에 옷과 쌀, 콩기름, 학용품을 사다주는가 하면 또 봄파종, 가을걷이 등 농망기에는 이웃들을 도와 일손을 돕기도 한다. 하여 사람들은 이들 부부를 남을 잘 돕는 후더운 사람들이라고 혀를 끌끌 차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오늘도 최동희, 신명순부부는 몸은 비록 장애이고 나이 또한 50고개를 넘었지만 그 누구의 도움도 필요없이 자립자강으로 보람찬 삶을 살아가고 있다(송용걸,최창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