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선생 탄생 100주년 특별련재—《해란강아, 말하라!》(8)
2016년 11월 28일 14:14【글자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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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一 장극민의 예감
다 닳아빠진 낫날 같은 하현의 달이、계모에게 쫓기여 난 어린 아이 모양으로 외로운 밤길을 혼자서 걷고 있는 새벽 가까이、영수는 성길이를 앞 세우고 버드나뭇골 나루테에 당도하였다。
「호로대(부이데기)」와 대치한 야영지에서 밤중에、리 서방 피살의 보에 접한 그는、왕남산이에게 소대의 지휘를 맡기고 그 길로 밤을 도와 달아 온 것이다。
불러도 깨워도 최원갑이가 일어나 줄 리 만무한 것을 잘 알기에、영수는 결심하고 그냥 바지 벗고、물 준、그러나 이가 저리게 찬 해란강을 건너기로 하였다。
그는 성길이를 제 어깨 위에 올려 앉히고 서서히 발 끝으로부터 더듬 듯이 물 속에 들어 섰다。
다 건너 가서 잇발을 덜덜 맞쫗으며 영수는、어깨에서 뛰여 내린 성길이에게서 바지와 신발을 받아 안았다。해도 그것을 입지는 않고 그대로 동네 어구 잎 진 버드나무 밑까지 단숨에 올려 달았다。
뛰여서 몸을 녹혀 가지고 거기서 그것을 입고、그리고 숨을 돌리였다。
첫 닭 울이였다。
아닌 밤중에、비록 급한 일이기는 하지만 남의 집 문을 두드리기 무엇하여 성길이만을 제 집에 들여 보내고、영수는 웃 골안 자기 집으로 올라 왔다。
하나 사람 없어 괴괴한 자기 집 삽작 문 앞에까지 와 다다르고 보니 문득、「오빠、열쇠는 련하 언니헌테 맡겨 놓았으니、거기 가 찾아서 열구 들어 가시우。」하던 영옥이의、야영지를 떠날 때 제 등 뒤에다 대고 하던 말이 생각 났다。
그는 짧은 주저 끝에 결심하고 련하의 집으로 갔다。
소리 안 나게 사쁫 토마루에 올라 서서 살그마니 문창에 귀를 가져다 대였다。처음에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한참을 그리고 섰노라니까 그제야 가벼운 녀자의 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러자 그는 야릇한 충동에 왼 몸이 화끈 달아나는 것을 감각하였다。참을 수 없어서 싸늘한 문 고리를 자기의 단 손으로 잡아 흔들었다。처음에는 살금살금、나종에는 힘을 주어 크게 소리 나게 흔들었다。
「누、누구요?……」깊은 잠을 깨치고 놀라난 녀자의 분명히 떨리는、그러나 지어 자제하는 목소리가 낮게 이렇게 물었다。
「납니다。영수요!」
안에서는 말 없는 혼란이 일어났다。부산히 옷을 주워 입는 알릴락 말락한 천과 천이 마찰하는 소리、이어서 챙챙 감은 문 고리의 쇠줄을 끄르는 소리……
문이 무엇을 받아 안으려고 벌리는 팔 처럼 그렇게 열리였다。
련하는 영수가 밖에다 생각 없이 벗어 놓은 짚신 두 짝을 얼른 집어서 안에 들여 놓고는-아이、누가 보면 어쩌라고?-문을 안으로부터 다시 걸어 잠가버리였다。
그러고 나서 비로소 련하는 밤에 찾아 와 준 사나이의 얼굴을 쳐다 보았다。말 없이 쳐다 보았다。
해도 희끄므레한 조각 달 빛이 그나마도 문창에 가리여서 그 얼굴은、빨아 들이 듯이 들여다 보아도 륜곽을 겨우 알아 볼만 바께는 알리지 않았다。
숨 막히는 시간이、기대가 뱃멀미 처럼 가슴을 울럭거리게 하는 시간이、긴장이 사지를 타 들어 가는 가락잎 처럼 오글아 들게 하는 시간이、지루하고도 또 쾌락한 시간이-웅덩이에 개피는 도랑물 줄기 모양으로 흐르지 않고 거기서 고여서 불어 올랐다。
이 보다 앞서、웃 골안 아낙네들에게 두들기워 쫓기여 내려 와서 잠을 이루지 못 하고、눕기는 누웠으나 해빙기에 해란강을 떠밀리워 내려 가는 두꺼운 어름 장 모양으로 구둘 위를 이리 빙글 저리 빙글 돌고만 있던 최원갑이는、나루터에서 들리는 때 아닌 인기척에 귀를 일궈 세우고 숨을 죽이였다。
그는 무릎으로 서서 바지 끈을 매고 바닥에 내려 가 거적 문을 비써 들추고 조각 달 빛에、강을 바지 벗고 건너 오는 영수와 그 어깨 위의 조꼬만 성길이를 보아 내였다。
그러자 돈 벌이 할 구멍을 묘하게 발견하여 낸 투기 상인의 그것 같은 흥분이 그를 사로 잡았다。굴둑 속 처럼 캄캄한줄로만 알았던 그의 머릿 속을 천재적인 령감의 섬광이 펀득 지나 갔다。
그리하여 얼마 후、영수들이 동네 어구 버드나무 밑에 가 다다랐을 지음、최원갑이는 벌써 제가 타고 건너 온 배를 강의 저 편 기슭에 매고、마반산을 향하여 분주히 활개짓을 치고 있었다。
해도 한편、이런 저런 복잡한、꼬이고 뒤틀린 일들의 생각 밖의 변화를 캄캄히 모르는 련하는、자기의 늦게 이루어진 사랑을 있는대로 다 퍼 바치기에 여념이 없었다。
동 트기 조금 전에 영수는 련하의 집을 나왔다。새벽의 찬 공기가 땀 배인 그의 목덜미에 선득 하였다。이제 되여진 일을 생각하고、그리고 지난 해 여름 조 밭에서의 일을 회상하고 그는 만족과 부끄러움과 그 밖에 약간의 불안이 뒤섞이여 착잡한 웃음을 혼자 웃었다。
이러고 나서 한 시간 만에 영수는、텅 빈 것 같은 자기 집 정주에서 제 손으로 끓인 밥을 반 쯤 먹다 말고 분주소에서 나온 순사들에게 체포되였다。
그는 빨리 먹고 아랫 골안으로 내려 가려고 어지간히 서두른 셈이였으나、보다 더 최원갑이의 걸음이 빨랐던 모양이다。
「왜、뭣 때메?」포승을 꺼내여 묶으려는 순사를 떠밀치며、영수는 강경히 항의하였다。「묶이는!」
하나 그들의 입으로 그것이 리 서방 살해의 혐의라는 것을 알고서는、너무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이 나오는 것을 금ㅎ지 못하였다。그래 그는 곧 자기를 늦추며 이렇게 제의하였다。
「가는 건-좋소、가치 갑시다……치만、묶는 거만은-안 되우。」
「좋아、좋아、그냥 가……」하고 웃으며 닥아 와서、영수의 팔을 끼며 키가 작은 편인 순사가 동의하였다。
그리고 뒤에 서 있는 제 동료를-키가 큰 편인 순사를-돌아 보고 무어라、영수로서는 알아 들을 재간 없는 자기네의 말을 하였다。
영수는 그 말을 선의의 것으로 해석하고、리해성 있는 키 작은 순사에게 호감을 가지며 천천히、그러나 시원시원하게 발을 옮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