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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가와대장이 군함을 타고 왔다가 관에 누워 나가다 |
3
김학무는 오랜 옛날의 “바람소리 쓸쓸하고 역수(易水)는 찬데, 한번 떠난 장사(壮士)는 영영 돌아오지 않아라.”라는 시의 구절이 생각났다. 그리고 윤봉길이 항시 념려하던 례산고향의 그 년로하신 조부모님네와 부모님네의 본적 없는 모습도 머리에 떠올랐다. 그는 윤봉길을 사랑하였다. 허나 그가 걸은 그 길로는 가지 않았다.
김학무는 북평에서 백방으로 수소문해보았으나 종시 공산당의 지하조직을 찾아내지 못하였다. 당조직을 찾지 않고 단창필마로서야 어떻게 큰일을 성사할수 있을것인가, 그러나 현실은 무정하였다. 김학무가 찾아들어간 골목들은 례외없이 다 막다른 골목이였다. 속을 끓일수록 당조직의 자취는 점점 더 묘연하기만 하였다. 몇달 동안 헛물만 켜고 돌아다니다가 할수없이 그는 처량한 심정으로 북평을 떠났다.
한데 천만뜻밖에도 그는 제남에서 구인 하나를 만나게 되였다. 당조직의 련락원이라고 자칭하는, 김학무보다 나이가 팔구세 가량 우인 그 조선사람의 이름은 리웅이라고 하였다. 리웅의 인품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었다. 그리고 부처님처럼 어깨에 드리울만큼 큰 귀도 인상적이였다. 김학무는 갈증난 사람이 물을 만난것처럼 전심을 쏟으며 그의 감동적인 설교에 귀를 기울였다.
“지금 장개석이 극악무도하게도 도처에서 공산당원들을 검거, 투옥, 학살하고있소. 혁명근거지를 포위하고 토벌을 들이대고있소. 이놈의 야만적행패를 이 이상 어떻게 더 참는단 말이요? 피끓는 프로레타리아전사가 어떻게 이에 대해서 외면을 할수 있겠소? 이 반혁명의 우두머리를 잡아치우지 않고서야 우리가 어떻게 혁명을 이끌어나갈수 있겠소? 내 생각엔 장개석이란 놈을 해치우는것이 동무가 입당을 하는데 가장 좋은 선물로 될것 같소…”
이 망망한 대국의 땅우에서 곤궁에 시달리며 향방없이 당조직을 찾아헤매던 김학무가 어떻게 감동되지 않을수 있을것인가. 끓는 피가 정수리까지 치미는 바람에 그는 상해에서 윤봉길에게 제입으로 한 말들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리웅은 열성적으로 김학무의 행장을 꾸려주었다. 무기로는 미국제 브라우닝권총 한자루와 이딸리아제 란형수류탄 두개를 그리고 활동비로는 중앙은행권 200원을 마련해주었다. 떠나보낼 때 그는 다시한번 김학무의 손을 굳게 잡고 당부하였다.
“공산주의사업의 승리를 위해서 매사에 조심하시오. 그리고 용감하시오.”
이튿날 김학무는 남경 하관역에서 차를 내렸다. 그리고 이틀이 채 못되여 아는 사람 하나를 찾아내였다. 그 김원보라는 사람은 당시 남경에 있는 조선혁명단체의 령도자로서 황포군관학교 제6기 졸업생이였다.
윤봉길의 폭탄사건이 발생한 뒤 격노한 일본제국주의는 프랑스식민주의당국에 중압을 가해서 그로 하여금 긴급조치를 취하지 않을수 없게 하였다. 이때부터 상해 프랑스조계도 다시는 조선반일세력의 비교적 안전한 피난처로는 되지 못하였다. 이러한 시기에 장개석은 생각하는바가 따로 있어서 슬그머니 조선망명가들의 편의를 보아주었다. 이것을 눈치챈 일본제국주의는 즉시 중국정부에다도 또 엄중히 항의하였다. 그중에서 특히 중앙륙군군관학교(즉 원래의 황포군관학교)에 재학중인 조선학생들의 문제를 크게 다루었다. 하여 장개석은 부득이 연극을 놀지 않을수 없었다. 그는 하루사이에 조선학생 전부를 출학처분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다음날로 다 뒤문으로 불러들여서는 다시 등록을 시키는데 이름은 모두 중국식으로 갈게 하고 또 원적은 일률로 료녕, 길림, 흑룡강으로 고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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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원: 인민넷 | (편집: 장민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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