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수 있는 예술- 산서 밀가루 조각
2014년 02월 14일 09:55【글자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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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가루 음식의 고향 산서성은 오랜 옛날부터 전국, 전세계에서 칭찬을 받아왔다. 세계의 밀가루음식은 중국에 있고, 중국의 밀가루음식은 산서에 있다는 좋은 말이 있다. 력사자료 기재에 의하면 동한시기로부터 시작해 1000여년의 발전을 거쳐 산서성은 밀가루음식 제조법에서 밀가루 반죽, 썰기, 삶기, 증발, 튀김 등 다양한 제조방법을 형성했다. 산서성의 밀가루음식은 "백가지 먹는 법이 있다"라는 칭찬을 받고 있는만큼, 밀가루 음식제조법과 먹는 법은 기타 지역에서 따를수 없이 풍부하고 다양하다. 일반 밀반죽이더라도 산서인의 손에서는 중국식 라면, 칼국수 등 백가지 종류의 양식을 만들수 있으며 농후한 지방특색이 흘러 넘쳐 국내외로 유명하다.
이런 문화전승속에서 근로한 산서사람들은 색다른 밀가루음식 제조법 즉 밀가루 조각으로 자신의 내면세계와 생활에 대한 아름다운 희망을 표달했다.
밀가루조각은 민간에서 "밀가루 인형(面人)", "밀가루 양(面羊)"이라고도 불리운다. 각지에서 불리는 명칭이 다르고 모양도 다양한 밀가루조각은 예전부터 산서 농촌마을 주부들의 뛰여난 솜씨에 의하여 만들어진것이다. 밀가루조각은 주로 밀가루를 주재료로 반죽, 모양잡기, 찌기, 색상 옮기기 등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는데 모양이 풍부하고 간결, 소박하며 민간과 지방의 특색이 담겨져 있다. 밀가루조각 제조법은 그뒤로 도시까지도 널리 알려졌으며 예술가들의 능숙한 솜씨를 통해 정교하고 생동하며 이야기내용이 담겨진, 문화적 의미가 내포된 관상용 밀가루 예술품이 탄생되였다.
밀가루 인형에 관한 전설
해마다 음력 2월 19일이 되면, 산서성 모 거리에서는 전통적인 절간장 행사가 있는데 공회(貢會)라고도 부르며 활동의 주요형식은 "공물 진렬(擺貢)"이다. 이는 밀가루조각형식으로 민간대중들의 진, 선, 미를 추구하는 제사활동이기도 하다.
전한데 의하면 현지에는 혜련이라고 부르는 어질고 착한 며느리가 살고있었는데 시집온후 얼마 안되여 남편이 세상을 뜨고 시어머니도 슬픔속에 모대기다 결국 실명을 초래하게 되였다고 한다. 힘든 역경속에서 혜련은 줄곧 선량한 마음으로 시어머니를 모시고 생활을 가꾸어 나갔다. 하지만 생활이 어려워 두사람은 사처에 돌아다니며 구걸까지 하는 애처로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어느 겨울 밤, 두사람은 인적이 드문 낡은 절간에 묵게 되였는데 추위과 기아에 시달리다 못해 결국 두사람은 정신을 잃고 쓰러지게 된다. 어렴풋한 시선속에서 혜련은 햐안 옷을 차려 입은 할머니가 손에 불진(拂塵)을 쥐고 나타난것을 보았다. 할머니가 불진으로 시어머니 두눈을 가볍게 스치자 눈을 감았던 시어머니는 다시 반짝이는 눈을 번쩍 뜨게 되였다. 이에 크게 감동한 혜련은 할머니에게 큰절을 들여 감사의 뜻을 표했다. 할머니는 또한 혜련에게 병을 치료하는 비법을 가르쳐 아픔에 시달리는 가난한 사람을 구할수 있도록 도와줬다. 그뒤로 혜련은 고향의 백성들을 위해 만병을 치료해줬으며 마을사람들은 그녀를 친절히 신의(神醫)라고 불렀다. 혜련은 90세까지 살다가 좌화(坐化)했는데 백성들은 그녀를 기념하기 위해 좌화한 자리에 절간을 세워 그녀가 좌화해 신선이 된 날- 음력 2월 19일을 매년의 기념일로 정하고있다.
해마다 기념일이면 현지 백성들은 정교한 밀가루조각 공물을 바쳐 마음속의 보살을 기념하군 한다.
또한 사람들은 성의를 표달하기 위해 저녁 4시전이면 공물(밀가루조각)을 진렬하는데 더욱 빨리 진렬할수록 더욱 길하다는 뜻을 상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