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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단결] 산과 나무와 촌민과 동무하는 "사령원"

촌민들의 치부길을 열어주는 전임 부사령원 김문원을 만나다

2012년 12월 07일 08:38【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안도현민족종교국의 방명일과 얘기를 나누고있는 김문원

연변군분구 전임 부사령원인 올해 61세 나는 김문원은 리직한후 전기도 없는 심심산골에서 살면서 나무를 심고 경제작물을 심고 농업합작사를 꾸려 촌민들의 치부길을 열어주고있다.

김문원은 직접 시범해 보고 거듭되는 실패로 얻은 경험을 촌민들에게 보급해 될수 있는 한 촌민들의 경제손실을 줄이려고 한다. 그가 이끈 보람으로 당지 촌민들의 인구당 년 수입은 3000여원에서 6000여원으로 늘어났다. 그가 온화한 도시생활을 떠나 안도현 석문진 대성촌에 간지도 벌써 8년째 된다.

8년간 김문원은 210여헥타르되는 산을 도급맡고 11만여그루의 홍송, 4만여그루의 락엽송을 심었고 거기에 2헥타르되는 면적에 도라지와 2헥타르되는 면적에 오미자를 심었으며 림하삼도 적지 않게 심었다.

그가 솔선수범한데서 그를 따라 촌민들의 심은 나무가 15만그루되고 2헥타르되는 오미자와 2헥타르되는 도라지를 재배하고있고 목이버섯 생산기지도 세워 수입을 늘이고있다. 촌민들은 그를 "김사령원"이라고 친절하게 부른다.

★ 곤난앞에 내가 있고 나의 앞에는 곤난이 없다

지난 9월 8일 비오는 날, 산에 올라간 김문원은 가파로운 산길을 가다 미끄러져 가로막은 나무우에 넘어졌다. 아픔을 이기고 직접 차를 몰고 병원에 갔더니 허리뼈가 종횡으로 금이 났다며 두석달은 가만히 누워있으라 했다.

많은 일이 자기를 기다린다며 담가에 누워가야 한다는 의사의 당부를 마다하고 김문원은 또 자기절로 차를 몰고 산골집에 돌아갔고 20일만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쟁터에 갔다온 사람은 곤난이란것을 모릅니다. 곤난앞에 내가 있고 나의 앞에는 곤난이 없습니다". 로산전선에 갔다온 김사령원의 말이다.

부대에서 리직하기전에 산에 들어가 나무를 심고싶다는 말을 안해 강월순한테 하자 "우린 10년 넘게 두곳에 별거해 있었고 다섯번이나 이사하며 살았는데 더는 고생하지도 말고 별거해 살지도 말고 도시에서 편히 함께 여생을 보냅시다"고 하며 연길에서 근무하고있는 안해는 그를 막아나섰으나 나무를 심고싶은 그의 마음을 꺾지 못했다.

안도현 복흥촌에서 태여나 흑룡강성 밀산시, 안도현 량병진에서 자란 김문원은 2004년에 안도현 석문진 대성촌에 자리를 잡고 213.7헥타르되는 산을 도급맡았다.

그의 집은 대성촌과 5, 6리 떨어져 있는 곳에 있다. 전기가 없어 태양에네르기를 통해 하루에 한시간 정도 텔레비죤을 볼수 있고 겨울에는 그래도 괜찮지만 여름에는 우물에 음식을 넣어 보관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산골이다 보니 휴대전화신호도 좋지 않고 산에 들어가면 아예 전화도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부대에 입대하기전에 1년간 남들의 뒤를 따라 농사를 지어보고는 소몰이도 해보지 못한 그가 단 한가지 열정만으로 삽과 도끼를 들고 산에 들어섰다.

김문원은 "묘목이 부려지는대로 산에 메고 가 심었습니다. 그런데 나무를 심는데도 온도, 습도가 맞아야 한다는것을 모르고 그냥 열정만으로 심었습니다. 규정에 따라 활착률이 80%이상 돼야 하는데 첫해 활착률이 50%밖에 안되였습니다"고 말하면서 "그 이듬해부터 나는 연변대학, 림업국, 과학연구원 등 부문에 찾아가 전문가들의 지도를 받았습니다. 지금은 6,7명 되는 농업 문가들을 모시고있습니다"고 했다.

그는 2만여그루의 홍송묘목을 심었는데 규칙대로 심지 않아 몽땅 매말라 죽은 일도 있다고 한다.

"제일 처음 심은 나무가 인젠 7, 8메터나 자랐습니다. 내가 직접 심은 나무를 볼 때마다 뿌듯하고 상쾌합니다"고 김문원은 자랑한다.

2005년 김문원은 8만원을 들여 도라지와 부채마(穿地龙)를 심었는데 큰 폭우가 내려 모두 물에 잠겨버리는 아픔을 겪었고 오미자나무에 농약을 쳐서 거의 절반되는 오미자나무가 죽어버린 일도 있었다.

김문원은 "나무를 심을 때 온도와 습도에 맞춰서 심어야 하는건 물론 구멍파기, 흙다지기, 밟아주기를 규칙대로 해야 합니다. 인젠 활착률이 95%이상 됩니다. 경제작물을 심을 때 먼저 적으마하게 심어 시험해본 다음 그 경험을 촌민들에게 보급해왔습니다"라고 하면서 "8년 사이에 집 팔고 퇴직금을 밀어넣고 하면서 80여만원을 투자했습니다. 그 사이 경제손실도 근 10만원 됩니다. 지난해에 잣송이 40개를 뜯고 올해는 200개 잣송이를 뜯었습니다." 하며 껄껄 웃는다.

★ 농업합작사 설립해 촌민 수입 증대

2005년 봄, 김문원이 비닐포장 목이버섯 재배기술을 익히고 촌민들도 재배할것을 권고했으나 별 반응이 없었다. 그때까지 촌민들중 목이버섯재배를 해본 사람이 없었다.

김사령원은 자기 돈을 선대해주면서 돈을 벌면 촌민들이 가지고 밑지면 자기가 부담하겠다며 촌민들을 동원했다. 연길에서 전문가를 모셔와 손에 손잡고 기술지도를 한데서 당해에 3만여봉지를 생산해 수확을 거두면서 지금 대성촌만 해도 28만봉지의 목이버섯을 재배하고있다. 한봉지에 1원씩 나온다 하더라도 28만원이 되는셈이다

김문원이 시범을 보여준데서 대성촌 촌민들은 나무를 심는외에도 오미자, 도라지, 더덕, 중약재 등을 재배하고있고 논게, 기름개구리를 기르고 유기농쌀을 생산하고있다.

지난해말 김문원이 3만원을 출자하고 촌민들이 5만원을 모금해 안도현 석문진 대성농업종합개발합작사를 설립하고 김문원이 리사장을 맡고 생산, 판매, 항목도입 등 관련 사무를 보고있다.

"촌민들을 합작사에 가입시키는데 모진 애를 먹었습니다. 소농의식이 짙어서 손해를 볼가봐 걱정돼 누구든 선참으로 나서려 하지 않고 망설이기만 했어요. 여기 뛰고 저기 뛰고 하면서 촌민들을 설득해도 몇사람밖에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내가 3만원을 내놓고 항목을 도입하고 촌민들에게 새 항목 설명을 해서야 43명 촌민들이 합작사에 입사했습니다".

합작사가 설립된후 김문원의 노력으로 연변주정부로부터 20만원, 안도현정부로부터 13 만원 자금을 지원받아 합작사에서는 대형뜨락또르와 대형수확기를 샀다. 그후에 100만원을 들여 입쌀가공공장도 세웠다.

"김사령원이 고생이 많습니다. 생산부터 시작해서 입쌀가공공장의 기계설치에 이르기까지 모두 사령원이 직접 나서서 지도합니다. 유기농쌀을 생산하기 위해 우리더러 유기비료를 쓰게 하고 논에다 게를 기르게 합니다." 한 촌민의 말이다.

알아본데 의하면 논에다 게를 기르면 게가 잡초와 벌레를 먹기에 무공해입쌀을 생산할수 있다. 게다가 게를 팔수 있는데 한근에 40원가량 한다며 수입도 늘일수 있는 일거량득이라 한다.

김문원은 "논에다 게를 길러 무공해 입쌀을 생산하는것이 연변에서는 우리 곳뿐입니다. 합작사에서는 논에다 게를 길러 생산한 벼를 대성공방(大成贡坊)이라 이름을 달고 북경시상표국에 등록했습니다. 앞으로 잡곡, 목이버섯 등 계렬제품도 등록할 예산입니다. 올해 한자루에 10킬로그람되는 대성공방입쌀 약 1만자루 생산하는데 한자루에 130원씩 벌써 8000자루를 북경에 팔았고 이미 3000자루를 보냈습니다. 올해 합작사에는 50헥타르 논에 20헥타르의 밭이 있는데 올해 벼생산만 해도 25만킬로그람됩니다. 명년에는 적어도 논만 150헥타르 늘어날것이고 유기농쌀도 더 생산할 예산입니다"고 밝혔다.

김문원에 따르면 지난 10월말에 내린 폭설로 연변의 적지 않은 지역에서 낟알이 눈에 묻혀 고생했는데 대성촌에서는 미리 가을걷이를 끝낸터라 합작사덕을 톡톡히 봤다 한다.

대성촌의 당지부서기 리명찬은 "올해 합작사에서는 통일적으로 파종하고 통일적으로 수확하며 시장가격으로 촌민들의 벼를 수매한 다음 통일로 상표를 달고 포장판매하기로 했습니다. 판매후 리윤이 없으면 합작사에서 안고 리윤이 있을 경우 리윤의 60%를 재차 합작사 성원들에게 나눠줍니다"고 하며 "한산하던 농촌이 활기를 띠고 수입도 늘어나자 한국에 가지 않고 김문원을 따라 농사를 지으려는 조선족들이 서너집이 됩니다"고 기뻐한다.

★ 단결은 치부의 힘

김문원은 민족이란 문화적 차이를 말하는것이라 한다. 사유방식이 다르고 행동거지가 다르고 전통습관이 다른것이다. 민족간 상호 존중하고 상호 리해하고 상호 어울리면서 살아야 발전할수 있다고 말한다.

2007년 석문진의 경성촌과 대성촌이 합병하여 경성촌(현재 습관적으로 대성촌이라 부름)으로 되였다. 대성촌은 조선족촌이고 경성촌은 한족촌이다. 적지 않은 조선족 청장년들이 해내외 로무를 떠나면서 농사짓는 조선족농가가 네집뿐이고 조선족들의 토지를 한족들이 약 30헥타르 다루고있다.

김문원은 구별이 없고 공평하게 일처리한다면 두 민족이 화목하게 보낼수 있다고 말한다.

대성촌에는 곁에 젊은이들이 없이 살고있는 조선족로인들이 한족로인들보다 더 많다. 한족 촌민 조광은 젊은이들을 무어 시간만 나면 조선족로인이나 한족로인 할것없이 로인들의 집에 가 일손을 돕고있다.

늘 조광네의 도움을 받고있는 조선족 곽중석로인은 아들딸들이 외지에 있는지라 조광과 같은 젊은이들의 신세를 많이 본다고 한다.

조선족들은 명절때나 한족촌민들의 집에 희사가 있으면 조선족음식을 보내고 한족들도 조선족들의 로인절, 회갑잔치에 다니며 자기네가 직접 만든 건두부며를 조선족들의 집에 가져다주기도 한다.

누가 집을 짓는다 하면 조선족과 한족들은 무보수로 서로 도와 나선다.

올해 고봉이네가 새집을 짓게 되였는데 일손이 모자라 안달아하자 10여명되는 한족촌민들이 자진해서 무보수로 집을 지어주었고 나중에는 집짓기에 나선 촌민이 30명도 넘었다 한다. 이뿐이 아니다. 김병렬, 리명찬네 집에서 집을 지을 때도 한족 촌민들의 도움이 있었다.

리명찬서기는 "우리 동네에서는 누가 집을 짓는다 하면 조선족이나 한족을 막론하고 힘이 자라는대로 보수없이 집짓기를 도와줍니다"고 소개한다.

그리고 조선족 촌민들은 돈 벌 기회가 있으면 한족 촌민들에게 소개해주기도 한다.

지난해 조선족 촌민 고봉과 한족 촌민 교위가 농한기에 한국에 가 일 좀 해서 돈 벌려고 하는데 비자를 밟자면 담보가 있어야 했다. 김문원과 리명찬은 이들 두 사람의 담보를 서주고 둘은 한국에 가 한사람이 2만원씩 벌어왔다.

리명찬에 따르면 조선족 촌민 김정범의 삼형제가 외국로무를 떠나자 한족 촌민 리해파가 3헥타르되는 이들의 토지를 몇년간 다루게 되였다. 금년에 토지 임대비가 좀 올랐지만 김정범이는 돈보다 이웃정이 더 깊다며 지난해와 같은 값으로 리해파에게 임대해주었다.

"자주 만나야 정도 쌓게 됩니다. 서로 돕고 관심하며 살아야 마음 편히 돈도 벌수 있고 잘살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김문원은 두 민족이 모여 회의할 때 가끔씩 웃음소리가 터질 때면 즐겁기만 하다고 한다.

래원: 길림신문 (편집: 김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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