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춘룡이 훈장을 들어보이고있다 |
2008년 "5ㆍ12"사천 문천대지진때의 "전국항진구조모범"훈장(奖牌)이 경매에 나왔다. 훈장의 주인은 사천성 자양시 쌍류현 농촌의 윤춘룡.
2008년 사천 문천대지진시, 20세의 윤춘룡은 맨손으로 6일간이나 페허속에 묻친 한 로동자와 지진중의 마지막 생존자 마원강을 구조했고 실종된 직승기 기장을 업어내와 "항진영웅"으로 불리웠다.
당년 지진후 당중앙과 국무원, 중앙군위에서는 련합으로 문천대지진 현장에서 활약한 윤춘룡 등 자원봉사자와 구조대원 522명에게 "전국항진구조모범" 훈장을 수여했다.
북경에서 "항진영웅"으로 떠받들리운 윤춘룡은 몹시 들떴고 앞날이 휘황찬란하기만 한듯했다.
문천지진 표창대회에 참석하고 "영웅"의 신분으로 고향에 돌아온 윤춘룡은 계속 표고버섯(香菇)을 재배, 빚을 내 재배원(种植园) 규모를 확대하고 가뭄방지설비를 인입했다.
윤춘룡의 창업을 고무하기 위해 고향 자양시에서는 그에게 8만원의 청년창업대출금을 제공했다. 당지 안강구지도부의 배려로 그는 쉽게 안강농촌합작사은행으로부터 30만원을 대출받았고 고향의 두 기업인들로부터 70만원을 꾸었으며 친척,친구들한테서도 몇만원을 꾸었다.
그는 새로운 품종의 표고버섯균을 구입하고 재배원내의 하드웨어(硬件设施)들을 새로 갖추었으며 분무식관수와 가뭄방지 설비들을 인입했다. 크게 벌여놓고 큰 돈을 벌것 같았다.
하지만 윤춘룡의 창업은 3, 4년을 버티지 못하고 실패하고말았다.
실패의 원인에 대해 윤춘룡 본인은 해마다 들이닥치는 재해라고 말하고 윤춘룡의 창업을 맡아 부축했던 당지 쌍류현 서항항가두판사처에서는 경영관리가 따라가지 못하고 대충 주먹구구식이였다고 인정하고있다.
사실 지난 4년 중간에 윤춘룡은 표고버섯기지를 부모에게 맡기고 자기는 밖으로 돌며 투자하여 호두나무기지를 건설하려고도 했고 음료수공장 대리상을 맡으려고도 했으며 차를 사 모래와 돌을 실어나르려고도 했다. 하지만 모두 중도에서 그만두고말았다.
표고버섯기지가 실패한 후 윤춘룡은 재차 자기의 "명예"를 빌어 은행으로부터 300만원을 대출받아 재창업을 하려 했다. 하지만 은행에서는 "대출금 갚을 능력이 없다"는 리유로 그의 대출금신청을 철회했다.
은행대출금 신청이 철회되자 윤춘룡의 주의력은 4년간 궤속에 고이 간직해둔 지진영웅 훈장에 쏠렸다. "훈장은 우리 집에서 가장 값나가는 물건이다"고 윤춘룡은 말한다.
그는 인터넷에서 훈장경매 정보들을 수집하기 시작, 어떤 훈장들은 3000만―4000만원씩 했다. "나의 훈장은 전국적으로 522개밖에 없으니 적잖게 돈을 받을것이다"고 그는 말했다.
일전 그는 북경에 와 경매회사에 훈장을 맡기고는 한 에어컨조립회사에서 림시공으로 일하며 훈장이 경매되기를 기다리고있다. 훈장이 경매되면 그 돈으로 고향에 돌아가 재창업을 한단다.
표고버섯기지가 실패된 후 윤춘룡의 아버지는 은천의 한 건설공지에 가 일하며 아들이 친척들한테서 꾼 돈을 갚아나가고있다.
"2008년 당시였다면 이 훈장은 4000만―5000만원에 팔릴수 있었을것이다" 윤춘룡의 말이다.
래원: 길림신문 | (편집: 김홍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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