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략칭: 중공중앙 총서기)는 1982년 12차 당대회 이래 중국공산당 최고지도자의 직무명칭이다. 력사상 서기, 위원장, 총서기, 주석 등 명칭도 사용한적이 있다.
1921년, 중국공산당 제1차 전국대표대회가 소집되였는데 당시 당원수량이 적고 지방조직이 아직 완벽하지 못한 점을 감안하여 3명으로 구성된 중앙국을 선서했으며 진독수가 서기를 맡았다. 2차 당대회, 3차 당대회에서 선거된 지도자를 중앙집행위원회 위원장이라고 불렀다. 4차 당대회는 중국공산당 력사상 처음으로 최고지도자를 중앙집행위원회 총서기로 명칭한 회의이다. 당시의 당규약 규정으로부터 볼 때 총서기의 직책은 전국 당사무를 총관하는것이다.
5차 당대회, 6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를 선거했으며 최고지도자를 각기 총서기, 주석으로 불렀다. 1945년 7차 당대회로부터 1977년에 거행된 11차 당대회에 이르기까지 최고지도자를 중앙위원회 주석으로 불렀다. 1982년 12차 당대회에서 통과한 새로운 당규약은 또다시 중앙위원회 총서기의 명칭을 사용했으며 더이상 주석을 설치하지 않았다. 중앙위원회 총서기는 다시 중국공산당 최고지도자의 직책명칭으로 되였으며 지금까지 이어지고있다.
력사상 상당히 긴 시간동안 중국공산당은 중앙에서부터 지방의 각급 조직에 이르기까지 모두 서기제도를 실행했는데 주요 책임자를 "서기"로 불렀다. 적지 않은 당사연구자는, 이는 1846년 맑스, 엥겔스가 공산주의 주요 책임자의 명칭을 둘러싸고 벌인 토론에서 왔으며 맑스가 서기라고 부를것을 주장했다고 인정하고있다. 당시 유럽에서 서기라는 직무는 사무급, 업무급 요원을 말했다. 1차 당대회가 소집될 때 새로 탄생한 중국공산당은 맑스, 엥겔스의 주장에 찬성했으며 당의 책임자를 서기라고 부르는것은 인민을 위해 복무하겠다는 결심을 표명했다.
건당 96년후 총서기, 서기는 의연히 중국공산당 최고지도자 및 각급 당조직 책임자의 명칭이다.
19차 당대회에서 수정 통과한 "중국공산당규약"은 아직 정식으로 전문이 공포되지 않았다. 18차 당대회에서 수정하고 통과한 당규약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당의 중앙정치국,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와 중앙위원회 총서기는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선거한다. 중앙위원회 총서기는 반드시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중에서 산생된다." "중앙위원회 총서기는 중앙정치국 회의와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회의를 소집할 책임이 있으며 동시에 중앙서기처의 사업을 주최해야 한다."
10월 25일, 중국공산당 제19기 1중전회에서 당선된 중공중앙 총서기 습근평과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리극강, 률전서, 왕양, 왕호녕, 조락제, 한정이 북경 인민대회당에서 19차 당대회를 취재하러 온 중외기자들과 만났다. |
래원: 인민넷-조문판 | (편집: 김홍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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