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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요사회 전면 실현, 소수민족이 한명이라도 빠져서는 안돼

습근평동지가 복건 소수민족군중들을 이끌어 빈곤에서 벗어나
치부의 길에 오르게 한 실기

2015년 11월 24일 16:29【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1999년 복건성당위서기를 담임할때 습근평동지가 복안시 강착향 동산여촌에서 조사연구를 진행(자료사진)

인민넷 조문판: 민동지역 복정시의 반계진에서 출발해 산간도로를 에돌아 23km 가면 그곳에 청산으로 둘러싸인 여족마을—적계촌이 있다. 이곳은 “전국 빈곤 제1촌”으로 불리웠었는데 이 마을이 큰 변화를 가져온 이야기는 원근에 소문이 나있다.

양띠해 음력설의 여족촌은 행복에 심취되여있었는데 마음을 분발시키는 한가지 소식이 촌민들을 격동시켰다. 그것이 바로 “습근평주석이 우리 마을을 칭찬하셨다!”는것이였다.

1월 29일, 습근평총서기는 국가민족사무위원회의 브리핑에서 “30년래 당의 빈곤구제 정책하에 녕덕 여족촌 간부군중들은 간고분투하고 전력을 다해 싸웠으며 “락수물이 대돌을 뚫는” 정신으로 꾸준히 노력하여 유명한 ‘빈곤촌’을 ‘초요마을’로 건설했다. 초요사회의 전면적실현은 소수민족이 한명이라도 빠져서는 안되고 그 누구도 대오에서 떨어져서는 안된다. 시간이 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는 담당정신으로 사업사고방식을 혁신하고 구제강도를 늘여 각 지역의 구체적인 실정에 맞게 적절한 대책을 세움으로써 소수민족인민들의 빈곤이라는 이 난제를 해결해 각 민족 군중들이 제때에 전면적 초요사회를 실현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간을 거슬러 20년전으로 가보자. 1988년 6월, 녕덕 지위서기를 담임할 때부터 습근평은 민동지역 여족인민들과 깊은 인연을 맺았고 여족인민들을 포함한 민동지역 모든 인민들이 빈곤에서 탈출하고 치부의 길에 오르게 하기 위해 힘써왔다. 《빈곤탈출》 책에서 습근평은 민족지역 빈곤탈출분제에 대해 심각한 분석과 사고를 해왔고 일련의 정책과 조치를 제출하였다.

복주시당위 서기, 성당위와 성정부 지도자로 있을 때에도 습근평은 소수민족군중들을 잊지 않고 관심해왔다. 그들과 전 성 인민들이 함께 치부의 길에 올라 초요사회를 향해 달릴수 있도록 하기 위해 습근평은 친히 빈곤구제정책을 제정하고 소수민족을 도와 경제를 발전시켰으며 “조혈”능력을 증가시켜 촌마을과 매 하나의 가정 백성들의 고초를 관심하고 그들이 빈곤에서 벗어날수 있도록 온갖 방법들을 고민했다.

복건은 소수민족이 흩어져 살고 잡거하는 성이다. 소수민족인구는 약 80만명에 달하는데 그중 여족이 전국에서 제일 많이 살고있는데 현재 총 36.55만명이 된다. 이는 전국 여족인구의 절반이상을 차지한다.

1985년 6월 하문으로 전근하고 2002년 10월에 절강으로 전근하기전까지 복건에서 근무한 17년 반 동안 습근평은 시종 소수민족군중들의 일상생활을 걱정해주었고 소수민족지역의 발전에 관심을 돌려왔다.

녕덕은 복건성과 우리 나라에서 여족인구가 제일 많이 집중된 지역이다. 전성 2/3의 여족인구가 이곳에 집거해있다. 여족은 자칭 “산하(山哈)”라고 하는데 이것은 “산에 온 손님”을 뜻한다. 1988년 6월 습근평은 녕덕 지위서기를 담임한후 특별히 이런 산지역의 주민들에게 관심을 돌렸다. 그는 이 지역 군중들의 생산생활뿐만아니라 각 민족 공동발전의 국가대세에 관심을 돌려왔다. 그가 당시 했던 말과 했던 일들은 다시 떠올려보면 그야말로 큰 작용을 했던것 같다.

“우리 사업의 각 방면에서 절대로 소수민족사업 이 중요한 방면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이는 한 원칙으로서 이 원칙의 토대우에서 우리는 마땅히 소수민족의 공동번영과 부유를 촉진시킬데 관한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사고해야 한다. 우리의 출발점과 귀속점은 시종 민족대단결의 토대를 공고히 하는것이다.” 《빈곤탈출》에 수록된 이 긴 문장에서 습근평은 이렇게 밝혔다.

1990년 4월, 습근평은 정부 소재지인 복주의 정무를 주관했다. 비록 복주의 소수민족인구는 8만여명으로 전 복주시 인구의 1.3%를 차지해 상대적으로 인구가 많은것은 아니였지만 습근평은 여전히 민족사업을 잘할데 대해 사고하고 소수민족군중들을 마음속에 두고있었다.

1993년 6월 14일, 습근평은 뜨거운 해빛아래서 자동차를 타고 산을 넘어 산속 깊은 라원현 곽구 여족향 복호촌에 와서 여족군중들을 위문했다. 마을에 물과 전기, 도로가 통했고 그해 촌민들의 년수입이 1400원에 달했다는 소식을 들은 습근평은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성당위와 성정부 지도자를 담임한후 습근평은 바쁜 사업을 짊어지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수민족군중들을 시시각각 관심했다. 매년마다 그는 민동지역을 포함한 소수민족들이 집거한 마을에 고찰을 진행하고 위문을 했다.

1996년 8월 5일부터 10일까지 습근평은 특별히 민동지역으로 가서 초요사회 진입조사연구를 진행했다. 그는 “전 성이 초요사회를 실현할수 있는 관건은 민동지역에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민동지역 민족사업은 빈곤에서 탈출하고 치부의 길에 올라 초요사회로 향하는 이 중점을 돌출히 하고 민족지역경제발전을 촉진하여 그들이 전 구역, 전 성과 동시에 초요사회에 진입할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1999년 6월, 성당위 부서기를 담임하고있었던 습근평은 지질재해가 빈번해 전체 마을이 이사를 온 여족촌에 가서 조사연구를 진행했다. 촌 지부서기와 주임은 모두 중국표준어를 할줄 몰랐기에 마을에서 회계를 담임하고있던33세의 종포금이 정황을 회보했다. 종포금은 “습근평총서기는 촌민과 마을 전체 수입정황을 물어보셨는데 저는 마을 집체수입은 주요하게 집체다산(茶山)에서 오고 1년에 청부금을 900원 받을수 있으며 마을 사람들의 인당 수입이 1000원도 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며 기억을 되새겼다.

습근평은 열심히 청취한후 비록 전체 마을이 이사를 오고 생활도 개선을 가져왔지만 아직 초요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하고있다면서 당장에서 흰종이에 아래와 같이 적어주었다. “자력갱생하여 경제를 발전시키고 분발하여 성과를 이룩하고 휘황을 다시 창조하자.”

이런 말들은 종포금의 마음을 움직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이곳저곳에서 8만원을 발려 큰 중고화물차를 구입하고 잡화를 실어 아침마다 날도 밝지 않았을 때부터 일을 시작했다. 2년만에 그는 빚을 모두 갚았고 그후 또 다른 사람들과 함께 3대의 큰 화물차를 더 구입하여 물류사업을 집중해서 해왔다. “현재 일년의 수입은 15만원을 초과하고 생활이 아주 좋다”고 종포금음 말했다.

깊이있는 조사연구에서 습근평은 아래와 같은 실제상황을 알았다. 민동지역 절대다수의 여족은 모두 먼 산간지역에서 생활하고있는데 이런 지역은 기초시설이 아주 박약하고 도로, 물, 전기 등 문제들이 존재하기에 이런 지역의 광활한 산장(山场), 비옥한 토지 등이 잘 개발리용되지 못하고있다는것이였다.

이런 실제에 근거해 습근평은 소수민족군중들이 밀페되고 단일한 자연경제상태에서 벗어나도록 인도하고 자신의 작은 울타리에서 벗어나 본 지역의 특점에 맞게 자원을 개발하고 시장을 개척하도록 도와주었다.

습근평은 민동 여족지역의 발전을 위해 과학적인 로선도를 기획했다. “시장을 주도”로 하는 전략사상을 설립하고 “시장-기술-자원”의 발전전략을 세워 “쌍방향개방”과 “쌍방향개발”의 길을 걷는것이다. “쌍방향개방”은 대내, 대외에 동시에 개방하는것이고 “쌍방향개발”은 자원, 시장을 동시에 개발하는것이다.

복안여족경제개발구는 습근평의 이런 관심과 지도하에 량성발전의 길에 오르게 되였다.

목양일대는 복안시 여족인구 집거지역이다. 목양의 발전을 추진하기 위하여 녕덕지위, 행정기관의 비준을 받아 복안시 목양민족경제개발구는 1993년 3월에 설립되였고 향진급 기구에 속했다.

1998년 9월, 습근평이 성당위 부서기로 있을 때 그의 관심하에 성정부는 문건을 비준하여 원 목양민족경제개발구를 성급 개발구로 확인했고 복안여족경제개발구로 개명했는데 이는 우리 나라에서 유일하게 민족명칭으로 명명한 개발구로 되였다.

1999년 6월, 습근평은 관련부문의 동지들과 함께 개발구로 조사연구를 갔다. 회보를 청취한후 습근평은 여족개발구는 기타 지방의 개발구와 다른데 대도시근교에 위치해 있지 않고 교통중추가 아닐뿐더러 항구도 없는 이런 조건에서 개발구는 민족지역의 실제에 근거하고 지방자원우세에 립각해 우수한 농업과 농산품가공업을 발전시켜야 하며 조건이 성숙된후 공업, 관광업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사고방향에 따라 개발구는 “쌍방향개방”과 “쌍방향개발”의 시범으로 되였다.

민족지역은 기술, 인재가 부족하다. 빈곤에서 벗어나 치부의 길에 오르려면 인재가 관건이다. 간부의 양성은 관건중의 관건이다. 간부는 기차머리와 같아 인도와 선도의 작용을 한다.
소수민족집거지역의 현과 시는 소수민족간부가 필요하고 소수민족집거지역의 향촌은 더우기 빈곤에서 벗어나 치부의 길에 오를 선두적인물이 필요하다. 그들은 소수민족의 념원과 요구를 잘 표달할수 있고 소수민족군중들의 리익을 도모해줄수 있다.

복주시에 전근해 성당위와 성정부 지도자를 담임한후 습근평은 한결같이 소수민족간부의 양성에 중시를 돌렸다. 국민경제와 사회발전 5개년 계획을 제정한 동시에 복건성은 소수민족간부를 선발하고 양성할데 관한 5개년 계획도 제정했다. 성당위, 성정부는 1998년 10월에 “우리 성 소수민족과 민족지역 경제, 사회 발전에 관한 정책조치”를 발부했는데 그중 단독으로 한개 장절을 내와 “소수민족간부를 양성선발하고 세기를 뛰여넘는 소수민족 각 류형의 인재를 대량으로 양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습근평동지가 친히 추동하고 심혈을 기울여 도와준 소수민족 빈곤탈출사업은 복건성에서 착실히 추진되였는바 민동지역을 포함한 소수민족지역이 좋은 발전성과를 이룩했으며 적계와 같은 많은 “빈곤마을 변화”이야기가 복건성에서 상연되고있다. 수많은 소수민족군중들이 빈곤에서 벗어나 치부하여 초요생활수준에 도달하고있다. 2014년, 전 성 민족향 농민들의 인당 순수입과 소수민족 인당 순수입은 모두 만원을 돌파했다.

"초요사회를 실현함에 있어서 소수민족이 한사람이라도 빠져서는 안되고 그 누구도 대오에서 떨어져서는 안된다." 빈곤구제개발이 새로운 난관공략단계에 진입한 오늘날, 총서기의 기대는 복건성 간부군중들로 하여금 더욱더 태만하지 않고 완강히 분투하게 하고있으며 끈기있게 나아가도록 하고있다.

래원: 인민넷 (편집: 장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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