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강제징용시설 등 일본 근대산업시설이 5일 유엔 교육과학문화기구(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등재되면서 1년반에 걸친 한·일 양국간 줄다리기가 마무리됐다.
일본정부가 유네스코에 일본 근대산업시설 23곳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겠다는 뜻을 전달한 것은 지난해 1월17일이었다. 이에 한국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2월4일 유네스코 사무총장과의 회담을 통해 등재 반대의사를 처음으로 표명했다.
올해 들어 한국 외교부가 이상진 유네스코 대표부 대사의 갑작스런 사직 등으로 주춤하는 사이 일본정부의 움직임은 한층 빨라졌다. 시모무라 하쿠분(下村博文) 문부과학대신 등 일본 대표단은 4~5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을 방문하며 등재 지지를 요청했다.
이 와중에 유네스코 산하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는 5월4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 일본 근대산업시설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권고하게 된다.
이에 한국측은 국회를 중심으로 일본정부에 대한 압박에 나섰다. 한국정부는 일본정부의 등재 신청내용에 조선인 강제노역 사실이 빠져있음을 문제 삼으며 공세를 폈다.
한국정부는 공식 양자협의를 서울과 도쿄에서 2차례 개최하고 교섭대표간 비공식 협의를 지속하는 동시에 세계 각국에서 외교전을 펼쳤다.
한국 박근혜 대통령은 19개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 정상에게 친서를 발송했다. 콜롬비아·페루·세네갈·인도·베트남·카타르 정상과 유네스코 사무총장 등을 만나 일본 산업시설 세계유산 등재 문제를 제기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도 19개 위원국 외교장관에게 친서를 별도로 보냈다. 윤 장관은 세계유산위원회 의장국인 독일을 방문하는 등 각 위원국 고위당국자들과 접촉하며 우호 여론을 조성했다. 국회의장·부의장·외교통일위원장·동북아역사특위 위원장, 국내외 민간단체도 측면지원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일본 산업시설의 조선인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인식이 확산됐고 이에 따라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는 세계유산위원회에 보내는 등재결정 추가 권고문을 통해 일본에 각 등재 대상 시설의 전체역사(full history)에 대한 설명을 할 것을 주문했다.
한국 정부의 협상전략 역시 주효했다.
당초 한국 정부는 일본이 신청한 7개 강제징용시설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해선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세계유산위 회원국들이 난색을 표하자 이후 우리정부는 등재를 하되 강제징용 사실을 숨겨선 안 된다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등재에 찬성하되 강제징용 사실을 그대로 인정하라는 한국 정부의 주장은 세계유산위원국들 사이에서 합리적인 제안이란 평을 받았고 이후 분위기는 한국쪽에 우호적인 방향으로 흘렀다.
세계유산위 의장국인 독일의 입장표명은 일본정부의 태도를 바꾼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윤병세 장관과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외교장관간 양국 외교장관회담이 열린 지난달 13일 이후 독일은 세계유산 등재 문제를 만장일치가 아닌 표결로 처리해선 안 된다며 한·일정부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내년 회의로 연기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를 전해들은 일본정부는 우리정부와 협상을 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정부의 세계유산위원국 임기가 이번 회의를 끝으로 마무리되는 만큼 자국 산업시설 등재 문제를 내년으로 미룰 경우 등재 성사 가능성이 한층 작아지기 때문이었다.
결국 한·일정부는 지난달 21일 일본 도쿄에서 외교장관회담을 열고 일본 산업시설 세계유산 등재 문제를 원만히 해결한다는 공동발표문을 내놨다. 이는 세계유산 등재 시 강제징용 문제를 명시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같은 합의 내용이 최종적으로 반영되기까지는 진통이 있었다. 당초 일본 산업시설의 세계유산 등재 안건이 4일 밤 처리될 예정이었지만 한·일정부 대표단은 강제노역을 표현하는 문구 문제, 그리고 회의 중 우리 수석대표의 의견진술 문제 등을 놓고 마지막까지 줄다리기를 벌였다.
막바지 줄다리기의 배경은 강제노역 사실을 인정하는 부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간 일본은 조선인 강제노역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를 국제무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일본정부로서 어려운 결정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래원: 료녕조선문보 | (편집: 김홍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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