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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성과 민족성의 통일, 그리고 서사전략---박초란단편소설집 해설

2016년 07월 04일 14:25【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1. 머리말

박초란은 2000년대 우리 소설의 현 주소를 대변하는 대표적인 녀류작가의 한명이다. 따라서 박초란의 소설들이 관심을 가지고있는 주제 또한 전반 2000년대 우리 소설이 관심을 가지고있는 분야들이다. 주제적측면뿐만 아니라 서사적측면에서도 박초란의 소설은 이 시대 우리 소설의 대표적인 특징을 두루 갖추고있다.

1996년 단편소설 “소녀의 기도”를 《천지》(12월호)지에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한후 이어 중편 “사랑의 터미널”(《천지》, 1997년 10호), “사랑은 저산너머”(《연변문학》, 1998년 10호), 단편 “별이 빛나는 밤”(《연변문학》, 1999년 3호) 등 작품을 발표하여 량적으로 보면 1990년대 발표작이 적지 않다. 그러나 대개 2000년대 작가들이 그러하듯 이 작가의 작가적성숙도 2000년대, 특히 2001년 《도라지》지에 단편 “날개”를 발표하고 2002년에 발표된 단편 “언덕우의 바다”가 연변작가협회 화림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면서부터이다. 이번 자선단편집에 1990년대의 작품을 한편도 수록하지 않은것으로 보아 작가자신도 이점을 인식하고있는것 같다. 그후 2004년 단편 “늪”이 《도라지》 장락주문학상을, 2008년 중편 “스팽글”이 다시 장락주문학상을, 2010년 단편 " 너구리를 조심해”가 《민족문학》 창작상을 수상하면서 작가적인 위치를 굳히게 되고 문단의 지속적인 주목을 받고있다.

본고에서는 이번 작품집에 수록된 단편소설들을 중심으로 박초란의 문학적궤적을 추적하고 그 성과와 한계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2. 초기작품의 탐미주의적성격

문단 데뷔초기 박초란은 대개 해마다 1편의 단편 혹은 중편을 발표하고있다. 상당히 높은 출발이기는 하나 기본적으로 습작기로 보는것이 옳을것 같다. 그러나 2001년에 발표한 단편 “날개”부터는 상황이 크게 달라진다. 이 작가의 작가적위치를 굳힌 작품이기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개”에서 볼수 있는것처럼 박초란의 초기작품은 대체로 성장소설의 범주에 속한다. 1990년대라는 시대적인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겠지만 이 작가의 년령대와도 어울린다 하겠다. 거기에 탐미주의적인 요소가 가미되면서 박초란의 초기소설은 완성도면에서 보면 조금 덜익었지만 몽환적인 미와 탐미적인 삶의 태도로 독자의 감동을 부른다.

이 시기 작가의 소설적 스타일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날개”(《도라지》, 2001.3)와 속편이라 할수 있는 “언덕우의 바다”(《연변문학》 2002.11) 그리고 작품집에는 수록하지 않았으나 역시 속편에 속하는 “푸른 잎이 새로워지는 하늘”(《도라지》, 2004.1) 등을 꼽을수 있다.

먼저 단편 “날개”부터 살펴보자. 만화가인 “나” 선이는 서양화가인 주형이와 함께 “날개2050”이라는 바(주점)를 경영한다. 유방암때문에 유방을 하나 잃은 “나”는 유방을 잃은 컴플렉스때문에 감상적인 사람이 되여있다. 그러던 어느날 주형이 한족처녀 곽미현을 동생이라며 소개하고 바의 직원으로 두고는 자신은 그림 그리러 가버린다. 곽미현은 주형이 대신 바의 경영을 관리한다며 제법 꼼꼼히 장부를 관리한다. 한편 미국인류학생 마이클이 네번이나 “나”에게 청혼을 한다. “나”가 모델로 주형의 화실에 갔다가 곽미현의 눈에 띄고 이에 질투하다가 곽미현이 주형에게 혼나고는 자살을 한 이후이다. 그후 주형이는 유방 하나가 없는 녀체의 그림을 “나”에게 보여준다. 유방이 없어진 자리에는 날개가 자랐고 유방은 하늘에 걸려있었다. 그 자리에서 주형은 성결한 “나”의 몸을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보는바와 같이 이 작품이 주목하는 부분은 삶의 의미에 관한 문제이다. 다분히 탐미적인 성격을 띤 작품이라 하겠는데, 유방 하나를 잃은 녀자의 아픔을 미의 경지에로 끌어올려 인식하는 점도 그렇거니와 특히 결구부분의 “아아, 그림 그린다는게 부끄러울뿐이다. 세상 모든게 아름다울뿐이다. 그녀의 죽음까지도…그리고 네 가슴까지도… 그렇게 중얼거리며 나래 꺾인 수탉같이 서있는 주형을 나는 전혀 보고있지도 않았다. 내 눈에는 그 날개 한쌍만 들어올뿐이였다.” 라는 표현, 그리고 바의 녀직원으로 일하던 곽미현이지만 주형이가 첫 남자였고, “나” 선이의 라체를 그리는 주형이를 보고 곽미현이 “나”의 가운을 벗겨냄으로써 “나”의 인격을 모욕했다고 하여 주형에게 혼나게 되는데, 곽미현이 사랑하는 남자에게 또다른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해 정맥을 그어 자살했다는것마저 탐미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단편 “언덕우의 바다”(연변문학, 2002.11)는 “날개”의 속편이다. 주인공들의 이름도 같고 이야기 또한 상당정도 련속성을 띠고있다. 인물로는 김영이라는 아가씨와 그녀의 한국인 남자친구 오공이가 더 나올뿐이다. 영이는 “나”의 집에 방을 얻어 살고있는 친구이다. 그녀는 “나”가 알고있는, 음악을 전공하는 한국류학생 오공의 녀자친구이기도 하다. 그녀는 남자친구 오공이가 병마용 구경을 간 동안 내 집에 와서 살고있다. 영이는 남자친구가 없는 동안에는 또 다른 애인을 만들어 사귀기도 하며 밤이면 사랑을 랑비하는 스타일이다. 오늘만을 알고 사는 사랑방식이기도 했다. 돈도 마찬가지. 오늘 있으면 쓰고 없으면 말고식이다. 영이와는 상반되게 주형이 자취를 감춘후 “나”는 이제 녀자이기를 포기한것이나 다름없는 삶을 살아간다. 유방을 “거세”당한 아픔때문이다.

삶을 단순하게 보고 느끼며 살아가는 영이와 녀성성의 타격으로 삶의 욕구를 잃어가는 “나”의 대조적인 묘사라 볼수 있겠다. 그런데 결국 이것들은 모두가 허상이고 사실 영이는 자신만을 사랑하기때문에 사랑을 흘리고다니는것이고, 반대로 그녀의 남자친구인 오공이는 자신을 증오하면서 살아가고있다. 그리고 “나”는 그 모두를 아울러서 유방이 하나 없다는 사실을 구실로 자신만을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또 자신을 증오한다. “날개”의 탐미적인 지향성을 탈출하여 삶의 좀 더 깊은 의미를 모색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작품에서 “언덕우의 바다”라는 곳을 가본다 가본다 하면서 가지 않고있는것은 일종의 상징적인 표현이 아닐까 한다. 모두가 자신의 삶에 불만을 느끼는 작중인물들에게 있어 “언덕우의 바다”는 오늘의 불만족한 삶을 탈출하기 위한 유토피아라 볼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보면 이 작품에서도 작가는 탐미적인 삶의 인식에서 탈출하지 못하고있는셈이다.

작품집에는 수록되지 않았지만 단편 “푸른 잎이 새로워지는 하늘” 역시 이야기와 인물들이 “날개”와 련관되여있다. 예전의 애인인 주형이와 헤여지고 유방마저 잃은 미대 녀학생 선, 싸스때문에 손님이 줄자 경영하던 술집을 정리하려 한다. 선이 조용하며 단순한걸 즐기는 반면 영은 복잡하고 화려한것을 즐기는 성격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 새로 등장하는 “어린아이”라는 별명을 가진 재권이는 선이를 좋아한단다. 영이도 재권이를 좋아하는데. 영이는 남자친구가 많다. 한편 주형이의 미술작품전시회에 간 재권이는 선을 모델로 그린 그림을 보고 너무 아름답다며 나중에 자기가 돈이 있으면 그 그림을 사겠다고 한다. 전시회때 주형은 미려라는 젊은 녀성과 함께있었다. 사랑을 중심으로 영원한것과 순간적인것의 의미를 추적하고있다. 영과 주형은 끊임없는 새 사랑을 추구한다. 그러나 선은 그렇게 할수가 없다. 그래서 외롭고 슬픈것이다. 결국 작품의 말미에서 표출된, 잃은 유방을 성형할수 있다는 기대감은 끊임없는 세상의 변화, 생명의 변화를 인정한것이 된다. “날개”의 순수 탐미적취향에서 “언덕우의 바다”와 “푸른 잎이 새로워지는 하늘”을 거치며 그 순수의 불가능성을 인정하는 흐름을 보인다 하겠다. 즉 유방의 수술로 인한 녀성성의 결손은 물론 사랑을 위한 자해와 자살마저 아름답게 인식했던 “날개”에서 사랑이나 미술, 음악을 포함한 인간사의 모든것이 순수할수만은 없다는 인식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상기 세 작품은 우리에게 제시한것이다.

3. 시대성과 민족성의 아우름

작가 박초란이 초기작품의 탐미적지향을 탈출하여 사회적현실 문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작품은 아마도 “꺽저기”(연변문학, 2004.1)가 아닌가 한다.

이 작품은 암컷의 피부에 붙어 기생해살면서 수정만 할줄아는 수꺽저기의 생리를 현재 안해를 외국에 돈 벌러 보내놓고 그 돈으로 생활해가는 조선족남편들의 삶의 생리 혹은 생존상황을 리얼하게 그리고있다. 다음 례문은 그러한 조선족남편들의 생존상황을 상징적으로 제시한 대목이다.

안해가 3년을 기다려달라고 한 날 밤, 꿈에 나는 사람만큼 큰 수꺽저기를 보았다. 암꺽저기 몸체 두배는 돼보이는 그 놈이 암꺽저기로부터 모든걸 빨아먹고있었다. 암꺽저기는 버둥버둥 힘겹게 바다를 헤가른다. 암꺽저기의 배가 불러지고 또 수많은 수꺽저기들이 암꺽저기에게로 달려든다. 그렇게라도 살아가지 않으면 안되는 수꺽저기의 인생이 시작된것이다.

단편 “인간의 향기”(도라지, 2005.2)는 필자가 박초란의 소설에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작품이기도 하거니와 “꺽저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좀더 다각적으로 그리고 높은 차원에서 2000년대 도시화, 시장화의 물결에 휩쓸리고있는 조선족사회의 여러가지 문제에 천착하고있다.

이 작품은 박초란소설의 중요한 특징들을 두루 갖추고있다. 희현이라는 일곱살짜리 머슴애가 있다. 엄마는 위장결혼의 방식으로 한국에 나가 돈을 버는데, 아버지는 엄마가 그렇게 벌어 부쳐온 돈을 맹탕 써버린다. 결국 위장리혼이 정식리혼이 되고 엄마는 한국의 “낯모를 아저씨”랑 결혼해버리며 아버지는 “엄마”가 아니라 “아재”라 부르기도 싫은 “누나”랑 같이 산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랑 그리고 작은 고모랑 할머니집에서 산다. 누가 보아도 불행한 아이이다. 거기에다 큰아버지, 큰어머니도 한국에 돈 벌러 가게 되면서 희아누나마저 할머니집에서 “나”랑 같이 살게 되며 막내고모도 신수가 멀끔한 한국남자와 결혼하여 한국에 나간단다. 오늘날 우리 조선족공동체가 맞고있는 위기의 면면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여기에 이 소설의 전형성 혹은 사회성이 있다. 자아와 세계의 대결을 개인과 개인의 대결에 한정시키지 않고 그것을 민족공동체의 운명이라는 보다 높은 차원의 대결로 승화시킨것이다. 소설에서 현희네 일가와 그 주변 가정들이 겪는 삶의 모습은 민족공동체의 붕괴위기를 절실히 제시할뿐만아니라 우리 사회에 팽배하고있는 물신주의의 피해를 그대로 드러내고있기도 하다. 희현이나 희아의 외로움, 사랑결핍은 이러한 물신주의에 의한 우리 사회 도덕의식과 가치의식의 부재에 의해 야기된것이며 따라서 우리가 진짜 심각하게 느껴야 할것은 바로 여기에 있는것이다.

필자가 박초란소설의 대표작으로 꼽고있는 작품이 바로 단편 “너구리를 조심해”(도라지, 2009.4)인데 이 작품에서 작가의 시선은 이른바 “코리안드림”이라고 하는 하나의 주제방향을 넘어 이제 도시화시대 중국대륙 전반에 뻗어나간 우리 민족공동체의 삶에까지 확장되고있다. 어려서는 그렇게도 겁이 많던 남동생이 “이제 내 무대는 동북이 아니라 전반 중국이야.” 라는 호언장담을 하며 중국 개혁개방의 대표적인 도시 광주에 진출한다. 원래 이들 가족은 “나”와 남동생,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삼촌, 고모까지 함께 살던 대가족이였는데 삼촌과 고모가 결혼해 분가해나가면서 줄기 시작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세상뜨고 지난해에는 교사였던 아버지마저 작고한데다 엄마는 한국에 돈 벌러 가고 남동생은 남방도시 광주에 가서 삶을 개척하고…결국 “나”만이 고향에 남아서 아버지의 뒤를 이어 훈장노릇을 한다. 대가족이 해체된셈이다. 한편, 할아버지는 생전에 남동생더러 우린 알에서 나왔다고 했고(박혁거세 신화를 말하는듯) 손자가 씨족을 이어가길 바랐다. 그런데 남동생은 한족녀성과 결혼했고 그에 어머니는 기가 막혔으나 인정할수밖에 없다. 바로 이런 시점에 금융위기가 닥쳤고 동생은 얼마간 버티다가 결국 무력해진다. 동생이 자기가 고슴도치가 된 기분이라는 말에 “나”는 “너구리를 조심해” 하고 경고하는데 나중에 어렷을적 읽었던 《기묘한 동물세계》라는 책을 보니 고슴도치를 위협하는건 너구리가 아니라 족제비라고 했다. 그러고보니 안정된 생활을 파괴하지 않으려고 집을 떠나기 싫어하는, 할아버지가 살던 시골집이 허물어지고 팔려가고 이제 아버지의 아파트를 지키고있는 자신이야말로 굴 팔줄도 모르는 너구리임을 깨닫는다는것이 이 작품의 줄거리이다.

도시화시대 인구대이동의 주제를 대가족의 해체와 남동생의 남방도시 진출, 어머니의 한국행을 통해 보여주고있는셈인데 박초란의 글쓰기가 성장소설을 넘어 력사성과 사회성에의 도전에서 큰 결실을 맺은 력작이라 평가된다. 소설에는 도시화시대에 걸맞은 삶의 개척과 조선족공동체의 해체에 맞서 민족정체성을 지키려는 문화적생리라는 이중의 주제가 제시되고있다.

첫번째 주제는 고슴도치와 족제비의 대결이라는 표현이 가능할것 같다. 여기서 고슴도치는 방노(房奴, 즉 집의 노예라는 뜻), 차노(車奴, 즉 차의 노예라는 뜻)로 피곤하게 살아가며 뭔가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신경을 고슴도치의 가시처럼 곤두세우는 월급쟁이. 아늑한 집과 이쁜 안해와 토끼같은 자식. 그리고 휴가보낼 자가용차를 삶의 목표로 삼고 살아가는 도시의 샐러리맨. 그런데 그렇게 자신을 지키려고 가시를 곤두세우지만 겨우 또 다른 고슴도치나 막을수 있을뿐 족제비의 방귀 한방에 그만 혼미해지고 요해처를 드러내버리고 만다. 최근의 글로벌 금융위기같은것이 그 악취 풍기는 족제비의 방귀라 할수 있을것이다. 그렇다면 이때의 족제비는 누구인가? 인간의 끝모르는 욕망이 아닐까 한다. 따라서 족제비는 결국 욕망덩어리인 우리의 이 사회와 또 다른 고슴도치들의 집합체라 할수 있다. 인간이 각자의 끝없는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놓은 이른바 게임률이라는것이 결국 인간을 무력화시킨다는 말이 된다. 모순이 아닐수 없다. 그렇다면 이런 모순은 해결이 불가능한가? 작가는 “나” 즉 자신이 살 굴도 팔줄 모르는 너구리를 제시하지만 결국 이것도 모순 해결의 방법으로는 역부족인듯하다.

한편 동생의 대도시 진출은 조선족이라는 공동체의 해체와 이민족과의 통혼에 의한 민족동화, 정체성의 퇴화를 대가로 치른다. 이것이 어머니의 한국진출과 더불어 두번째 주제를 이룬다. 이것만 보면 이 주제의 심각성이 잘 느껴지지 않을수도 있다. 이를 극복하는 수단으로 작가는 편린같은 추억과 현실의 조합을 리용하고있다. 특히 족보에 관련된 할아버지와 동생의 관계는 민족공동체의 해체를 걱정하는 작가의 사명의식을 독자와의 공감속에 표현하여 인상적이다.

박초란의 또다른 력작 “날아라, 룡! 룡! 룡!”(연변문학, 2009.10) 역시 중국에 사는 조선족의 정체성혼란과 공동체의 유전문제를 고민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기본적인 문제성은 가난 탈출과 신분상승의 욕구가 되는데, 작가는 그러한 기본적인 주제의식을 공동체의 유전자나 정체성의 문제와 긴밀히 련관시켜 표현하고있다. 가령 고모가 정식공이라는 리유 하나로 고모부와 결혼한것이나 어머니가 한국에 돈 벌러 간것 등은 가난 탈출의 욕구가 반영된것임이 분명하고 입버릇처럼 하던 어머니의 “돈 버는게 헐한줄 아냐?”라는 말때문에, 그리고 나쁜 사람이 아닌 아버지, 어머니, 고모, 고모부를 힘들게 하는 세상과 싸우려는 욕구때문에 돈을 헐하게 버는 남자에게 시집을 가겠다고, 심지어 나이가 많은 일본사람에게 시집을 가겠다고 결심하는 “나”의 행위 또한 가난 탈출과 신분상승의 욕구와 직결된다. 그런데 한국회사에 취직하면서 연변말이 싫어지고 어색하나마 한국말을 하게 된것이나 그렇게 함으로써 한어마저 잘 하지 못하게 된것, 한국에서 전화할 때면 한국말에 더 익숙하던 엄마가 고향에 돌아오자 한어가 섞인 조선말, 즉 연변말이 다시 술술 나온다는 표현, 룡이 날아올랐다는 우물을 강조한것 등은 모두가 조선족의 유전성이 반영된것이라 하겠다. 결국 도시화시대 조선족의 자화상이 되겠는데 그러나 그렇게 신분상승을 념원했던 “나”에게 말라버린 마음속의 우물은 아무리 현대의 소비품으로 채우고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다. 이러한 “나”에게 깨달음을 준것은 조선족 정착지의 상징이라 할수 있는 룡정의 우물에서 날아오른 룡의 계시이다. “네 몸을 보거라!” “네 몸으로 돌아가거라!”가 그것이다. 그러니까 주인공은 사실상 정체성의 혼란을 극복할수 있는 열쇠를 찾은셈이다.

도시화시대 조선족이라는 민족공동체의 해체와 중국내 대도시들에서의 새로운 정착, 그리고 이 과정에 겪게 되는 정체성의 변이와 그로 인한 진통은 2000년대 우리 문학의 가장 핵심적인 2대 주제라 할수 있다. 이런 시대적인 주제를 선점함으로써 박초란의 작가적인 립지도 탄탄하게 다져질수 있었던것 같다.

4. 명상의 소설화, 그 득과 실

박초란은 초기소설에서부터 불교적인 흔적을 상당정도 드러내고있다. 그리고 그런 작가의 관심은 지금까지도 끊이지 않고 이어져왔다. 그런데 최근의 작품들에서 작가의 이런 불교적인 상상력은 명상과도 깊이 관련되여있는것 같다.

명상은 자고로 인간이 자기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한 수단으로 리용되여온것 같다. 다른 말로 바꾸면 명상은 인간이 철학적으로 삶의 구경을 모색하는 행위라 하겠다. 그리고 사람에 따라서는 나름대로의 리점이 있는것으로 보인다. 박초란의 최근 소설에서 명상은 명상과정이나 명상을 통해 어떤 깨달음을 얻는 과정의 추적이라는 형태로 다루어지고있다. 단편 “로어(魯魚)”(《연변문학》, 2010.1)의 경우 아직 명상적인 분위기가 뚜렷하지는 않다. 돈 버는 기계와도 같은 현대인의 삶(“그”)과 불교와 관련되여 여유롭게 살아가는 “그녀”의 삶을 대조시키고있다 하겠는데, 그러나 숟가락을 엿가락처럼 탈고 세개이던 시계바늘을 네개로 만들며 심지어 볶은 당콩을 물컵에서 싹트게 하는 등 주인공의 삶에 대한 인식을 뒤집어놓은 대사의 특수기능은 독자의 주목을 명상이나 종교적인 신비주의로 이끌고있다. “그녀”가 출가를 결심했다가 불교학자와 결혼하고 또 주인공인 “그”가 모든걸 내려놓고 어딘가 버섯모양의 움집 즉 자연상태의 유토피아로 가고있다는 결말의 암시는 현대인의 피곤하고 생태파괴적인 삶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가 표현된것이라 하겠다. 그런데 이런 불교적인 리념에의 심취는 소설 전반의 분위기를 신비주의적이게 하면서 “그”와 “그녀”의 관계를 애매하게 표현하는 등 비사실적인 결과를 초래하고있기도 하다.

“황홀한 선물”(《도라지》, 2010.5)은 이와는 반대의 경우이다. 출판사에서 편집일을 하던 주인공이 현실적인 삶이 싫어져 절에 갔다가 줄곧 절에서 자란 꼬미라는 소년이 바깥세계의 모든것에 호기심을 가지다가 결국 절을 탈출하여 사회에 투신하게 되는것을 보면서 다시 현실에 되돌아간다는 이야기는 현대적인 삶에의 미련 혹은 어쩔수 없는 현대인의 숙명적인 운명을 제시해줬다고 볼수도 있겠다.

“적(寂)-몸에 관한 보고서”(《도라지》, 2011.2)는 가장 명상적인 분위기가 뚜렷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 혁이의 철학적모색을 야기한것은 계화라는 사춘기 첫사랑에 대한 기억과 그 기억의 재생불가,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 남경 영곡사탑에서 날렸던 종이비행기의 기억과 그 기억의 재생불가 현상이다. 이는 감각과 기억 즉 존재의 실체에 대한 철학적인 의문이라 할수 있다. 먼저 옛날 열일곱살 때의 첫사랑 계화는 그후 15년이 지났을 때 알아볼수가 없었다. 그래서 서른네살 생일날에 그는 려행을 떠난다. 발가는대로 닿은 곳은 남경 영곡사의 탑이다. 다섯살 때 공군비행사인 아버지와 함께 올라 종이비행기를 날렸던 기억때문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죽은 지금은 그 혼자서 탑에 오르고있었다. 영고탑을 내려와 남경대학 구내에 있는 헌책방에서 계화를 만났으나 그는 알아보지 못한다. 그런데 그녀는 그를 알아보았고 이번의 만남에서 그는 그 자신이 기억하고있은것이 계화라는 인간이 아니라 첫사랑의 느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계화가 데리고간 심산속에서 어떤 녀인의 최면술에 걸려 잠이 들게 되는데, 잠에서 깨여난 그는 갑자기 무엇인가를 깨닫는다. 최면을 통한 신비적체험과 계화와의 재회가 안겨준 깨달음이다. 그 깨달음인즉 모든 존재는 변하기도 하고 변하지 않기도 하며 있는것이기도 하고 없는것이기도 한, 그냥 존재하는것일뿐이라는 인식이다. 탑에 올라가지 않고 호텔 높은 층에서 아버지가 림종에 남겨준 종이비행기를 날려도 탑에서 날리는것이나 마찬가지라는것이다. 결국 몸의 원시적인 상태, 단순한 삶에로 되돌아온것이다.

이런 내용을 명상소설로 보기는 어려우나 그 분위기는 종교적인 신앙이나 명상과 긴밀한 관련을 가진다. 따라서 소설은 일종의 신비주의적인 매력을 풍기는것이 사실이지만 그 체험의 과정은 보편성과는 무관하다. 명상이나 철학적인 탐색의 결과 얻어진 깨달음이나 새로운 세계인식이 아닌, 명상이나 탐색의 과정에 대한 묘사에 주목했기때문에 인간의 보편적인 인식에는 닿지 못한것이다.

이러한 한계를 어느 정도 극복한 작품이 바로 “돌에게 물어보라, 그 침묵”(도라지 2011.5)이 아닐까 한다. 이 작품에서는 아버지인 “그”와 아들인 “나”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소설의 시점도 이 두 사람의 시점으로 엇바뀌면서 전개된다. 작품은 얼핏 보면 코리안드림으로 인해 파괴된 가족의 이야기처럼 보인다. 아버지는 한국에 가서 돈을 버는데 엄마는 한국에 가려다가 실패하자 가짜리혼이 진짜리혼으로 되여 다른 남자와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았다가 그 아이가 죽자 “그”와의 사이에서 탄생한 아이 “나”를 미워했고 그것이 싫어 “나”는 가출하는데 우연히 만난 “그녀”(신분이 분명치 않은 노래교수)에게서 노래공부를 하며 12년만에 돌아온 “그”가 어머니가 돌아간 고향의 빈집 부근의 인터넷방에서 “나” 즉 아들과 상봉한다는 이야기. 그런데 자세히 음미해보면 이 서사적인 내용들이 결국 인간과 시간과 삶에 대한 명상에서 얻은 깨달음임을 느낄수가 있다. 특히 소리, 음악에 대한 아들의 깨달음이 노래스승인 그녀가 선물한 “신비한 돌”에서가 아니라 아버지와의 상봉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에서 이점을 확인할수가 있다.

박초란작가가 명상과 불교에 심취되여 엮어낸 몇편의 소설들은 대개가 명상과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그리고있는데 반해 이 작품에서는 비록 그러한 과정의 흔적들이 조금 남아있기는 하지만 좀더 깨달음의 결과물을 작품속에 혹은 서사속에 심어놓고 키워내고있다. 박초란이 명상을 통해 얻은 결과물, 깨달음은 결국 집착을 버리고 자연의 섭리대로 사는것이 곧 삶이다 라는 말로 개괄할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점은 앞에서 론의된 세 작품 모두에서 공동으로 추출할수 있는 삶의 철학이요 리치이다. 다만 이 작품에서는 그것을 좀 더 보편적인 인간의 삶, 우리 사회의 주요 이슈들속에 잘 삭혀서 표현했을뿐이다. 이점은 매우 중요하다. 작가로서 자신의 철학적인 모색 혹은 깨달음을 현실적인 삶을 통해 구현 혹은 재현해내고 이를 통해 다시 현대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것, 이것이야말로 작가가 해야 할 일일것이기때문이다.

명상이나 종교 철학적인 분위기의 소설은 대개가 최근작이다. 그러니까 작가 박초란이 최근 가장 관심을 보인 부분 혹은 소설적인 지향성이 가장 뚜렷한 분야가 명상소설이라는 말이 되겠다. 작가가 소설의 다양성을 추구하는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런데 명상이라는것은 개인으로서 작가의 사회적체험이 협소해짐을 의미하기도 한다. 심지어 소재의 고갈이 우려되기도 한다. 인간의 보편적인 가치 추구가 소설가의 사명이라고 할 때 이러한 체험의 협소화는 창작의 단순화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사실을 작가는 알아야 할것이다. 물론 “황홀한 선물”에서 볼수 있는것처럼 현대인의 삶에 대한 작가의 회의 혹은 갈등은 아직도 계속되고있다. 비록 생태적인 삶, 자연적인 삶, 명상이나 불교적인 신앙을 통해 얻어지는 마음의 청정을 지향하고있는것이 사실이지만 아직도 여러가지 삶의 방향은 이 작가에게 있어 열려있는 실험의 장이다. 좀 더 다양하고 완숙한 삶의 양상을 펼쳐보여주기를 바랄뿐이다.

5. 상징의 미학과 담백화의 서사전략

이상의 분석에서 우리는 박초란의 소설이 2000년대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주제들에 천착하여 작가적인 리해와 해석을 시도하고있음을 알수 있었다. 그러나 2000년대 우리 문단의 대표적인 소설가의 한명으로 인정되기에는 주제적측면만으로 당연히 부족하다. 이러한 주제와 작가의식을 표현하는 서사적인 전략과 미학적인 완성도가 받쳐줄 때만이 그 작가적인 력량을 인정받을수 있는것이다.

박초란의 소설서사는 크게 상징의 미학과 담백화의 서사전략으로 요약할수 있겠다.

먼저 박초란의 소설에서 상징의 미학은 성숙기에 접어드는 “꺽저기”에서 시작된다. 1990년대부터 확산되기 시작한, 안해를 외국에 돈 벌러 보내놓고 그 돈으로 생활해가는 조선족남편들의 삶의 생리 혹은 생존상황을 암컷의 피부에 붙어 기생해살면서 수정만 할줄아는 수꺽저기의 생리를 들어 상징화한것이다. 비록 거의 은유에 가까운 단순 상징에 불과하지만 소설미학에서 상징의 가치를 감안하면 상당히 기대가 큰 시도라 하지 않을수 없다. “날개”에서의 유방을 잃은 자리에 날개가 자란 미술작품과 하늘에 걸린 유방도 비슷한 경우가 되겠고 “바나나의 날개를 찾습니다”에서 바나나 날개의 상징성, 심지어 “언덕우의 바다”에서 “언덕우의 바다”라는 가게가 주는 상징적인 의미도 이 작가가 소설미학에서 상징의 역할에 얼마나 집착하고있는지를 말해준다.

이런 작가의 노력은 “늪”(도라지, 2004.2)에서 좀더 완성된 모습을 보인다. 이 작품에서 늪가에 사는 남자의 이야기는 어린 “나”에게 있어 두려움이면서 동시에 잊혀지지 않는, 꿈속에마저 자주 등장하는 콤플렉스이다. 그러한 콤플렉스는 이제 결혼하고 혼인과 도시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있는 나이에 이르도록 “나”의 의식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마침내 “나”의 기억속에 항상 아이로 남아있던 그 남자를 찾았을 때 남자는 중년의 사나이로 변해있다. 결국 “나”는 남자와의 성행위를 통해 긴 세월 의식을 괴롭히던 콤플렉스에서 해방된다. 왜 그랬을까? 작가는 그 원인을 “남자를 기억하구있던건 그들 부모의 죽음이 처참한것만도 아니였던가 보았다. 아름다움, 그 죽음밑에 처절하게 깔려있는 아름다움, 두 사람이 꼭 껴안고, 그것이였다.” 라고 표현한다. 다시 말하면 사춘기 소녀의 사랑의 환상 혹은 삶의 환상과 탐미적인 인생관이 문화대혁명에서 조선특무로 지목받아 박해받던 남녀의 동반자살, 늪에로의 투신자살로 이미지화했던것인데 환상에서 깨여난 현실적인 삶의 무게로 하여 의식의 공황을 겪던 “나”는 그 소녀적의 환상 혹은 이미지에서 탈출할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그 환상속 사랑의 이미지 파괴였던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주인공 “나”는 이제 대담히 현실적인 삶에 도전할수 있게 되였고 작가 박초란 역시 초기소설에서 보여주었던, 다소 현실에서 유리된 탐미주의적인 편향을 극복할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 작품에서 “늪”은 탐미적인 삶의 환상이고 남자와의 성관계는 그 환상의 파괴와 콤플렉스에서의 탈출을 상징하는셈이다.

단편 “너구리를 조심해”의 상징구조는 한결 더 복잡하고 정교하다. 요약하면 중국의 대도시에 진출한 조선족청년의 삶의 양상이 육식자와도 같은 사회의 공격을 막기 위해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잔뜩 세우고 살아가지만 족제비의 방귀 한방이면 요해처를 드러내고마는 고슴도치처럼 항상 위험에 로출되여있다는것, 그리고 족제비라고 생각한 육식자는 사실상 자기와 같은 고슴도치들의 복합체이며 그러한 피곤한 삶을 만들어낸것이 곧 이 사회의 경쟁구조라는것, 단 아버지가 남겨준 집을 지키는 “나”와 같은 사람이 자기 굴도 팔줄 모르고 남의 굴에 기거하면서 똥짐이나 날라주는 너구리라는것. 이것이 이 작품의 기본적인 상징구조가 되는데 도시화시대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생리를 잘 담아내고있다 하겠다. 여기서 작가의 가장 현명한 구조처리는 아마도 너구리를 족제비로 착각한 의식적인 “오류”가 될것 같다. 동물세계의 생리에 대한 상식적인 “착각”때문에 고슴도치와 족제비의 대결에 이어 굴도 팔줄 모르는 너구리의 생리가 시장화, 도시화 시대에 소외되여가고있는 계층의 삶과 겹쳐질수 있었던것이다. 거기에 족보에 관련된 할아버지의 이야기까지 가미되면서 도시화로 인한 또 다른 문제의식, 즉 민족공동체의 해체라는 두번째 주제가 제시된것이기도 하다.

“날아라, 룡! 룡! 룡!”의 상징구조는 얼마간의 생경함이 거슬리지만 동시에 조선족의 집단무의식에 가장 접근해있기도 하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이 한국회사에 취직하면서 연변말이 싫어지고 어색하나마 한국말을 하게 된것이나 그렇게 함으로써 한어마저 잘 하지 못하게 된것, 한국에서 전화할 때면 한국말에 더 익숙하던 엄마가 고향에 돌아오자 한어가 섞인 조선말, 즉 연변말이 다시 술술 나온다는 표현, 룡이 날아올랐다는 우물을 강조한것 등은 모두가 조선족의 유전성 혹은 집단무의식의 상징이 된다. 룡정은 조선족이 중국땅에 이주하여 가장 먼저 형성한 집중촌이요 또 가장 유서깊은 이민도시이기도 하다. 따라서 용드레우물에서 룡이 날아올랐다고 한것은 전설을 빌어 두번째 이민의 모티프를 제시한것이라 할수 있다. 중국사회 전반에 확산되여 자체적인 발전을 이룬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기때문이다. “어느새 멍청해진 내 몸은 간곳 없고 한마리의 작은 은빛의 아름다운 룡이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라는 표현에서도 이점은 확인된다. 작품에서 백발할아버지의 이미지로 등장하는 룡의 계시: “네 몸을 보거라!” “네 몸으로 돌아가거라!”는 정체성의 혼란때문에 야기된 주인공의 심리적 불만족을 극복할수 있는 열쇠가 공동체의 집단무의식임을 제시한것이라 하겠다.

박초란소설의 서사전략이 가장 종합적으로 반영된 작품은 아마도 “인간의 향기”가 아닌가 한다. 먼저 소설의 시점이 일곱살짜리 머슴애로 되여있다. 소설의 이야기는 서술자인 희현이와 막내고모, 사촌누이 희아, 할머니와의 관계 속에서 전개되며 소설의 결구부분에 와서야 엄마가 새 아빠와 함께 나타나 희현이를 한국에 데려가는 사건이 서술된다. 결국 독자는 일차적으로 희현이라는 7살짜리 꼬마의 감수성과 가치판단에 의해 사건이나 현상을 파악하게 되는데, 그것마저도 작가의 담백화의 서사때문에 최대한 절제된 형태로 드러난다. 물론 어떤 측면에서 이런 서사는 이 소설의 약점이 될지도 모르겠다. 좀더 강한 의미전달을 시도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아쉬움 말이다. 그러나 책을 덮고 진일보 음미해보면 희현이네 일가가 겪고있는 삶의 모습을 우리는 그냥 소년의 시각 그대로 담백하게 느끼고 넘어갈수가 없다. 현희네 일가와 그 주변 가정들이 겪는 삶의 모습은 민족공동체의 붕괴위기를 절실히 제시할뿐만아니라 우리 사회에 팽배하고있는 물신주의의 피해를 그대로 드러내고있기때문이다. 희현이나 희아의 외로움, 사랑결핍은 이러한 물신주의에 의한 우리 사회 도덕의식과 가치의식의 부재에 의해 야기된것이며 따라서 우리가 진짜 심각하게 느껴야 할것은 바로 여기에 있는것이다.
표제에 대해서도 그냥 넘어갈 사항은 아닌것 같다. 겉으로 보기에 소설의 표제해석은 단순한편이다. 희현이가 경험한 어머니, 막내고모, 할머니의 몸에서 나는 냄새가 그려지고있다.

제일 먼저 나오는것이 “누나”와 고모의 냄새다. 아버지의 새 안해인 “누나”는 “명절때면 새옷이랑 놀이감이랑 사갖고 나 보러 오지만 난 싫다. 리유라면 아빠와 함께 온 누나가 자꾸 내 볼에 뽀뽀하는게 싫어서다. 그 누나는 화장도 너무 짙게 해서 정신이 통 없어진다. 그러면서도 맨날 ‘화장을 지우고’를 흥얼댄다.” 이것이 냄새를 통한 “누나”에 대한 “나”의 느낌이라면 고모의 냄새는 변화의 과정을 겪는다. “나는 그래도 고모가 좋다. 왜냐면 시장서 화장품가게를 하고있으면서도 고모에게서는 화장품냄새가 아주 적게 나니까. 헌데 요즘따라 막내고모에게서두 냄새가 좀씩 짙어지는것 같다. 실은 고모만의 냄새가 향수보다 더 맡기 좋은데도 말이다” 그러니까 냄새가 좋다는것은 고모가 좋다는 말이 되겠는데, 화장냄새가 나니까 별로 좋지 않다고 한것은 어쩌면 일종의 질투심이 은근히 드러난것이라 할수도 있다. “빠랑”(미장원)을 하는 긴머리 삼촌이랑 사랑을 하는지도 모르기때문이다. 다음은 엄마의 냄새: “침실에서 놀고있는데 어디선가 친근한 냄새가 났다. 침대서랍에서였다. 그 속에 엄마의 잠옷과 더불어 진주목걸이가 있었다.” 이것은 기억속에 남은 전날의 엄마 냄새다. 그러나 그렇던 엄마의 냄새는 변한다. “엄마의 품에 안기니까 좀 어색하다. 내가 기억했던 엄마의 냄새가 아니다. 이상했다. 분명 엄마냄새를 기억하고있는데. 아저씨가 번쩍 나를 안아 차에 올렸다. 그때 아저씨 몸에서 나는 냄새가 지금 맡은 엄마의 냄새랑 비슷했다.” 한국에 가서 새 남편과 살면서 변화된 엄마의 냄새는 어색하다. 그리고 할머니의 냄새: “할머니 품에서 할머니에게서만 맡을 수 있는 냄새가 기분좋게 쏙쏙 코를 찔러온다. 마음까지 노곤해지는 할머니의 냄새. 할머니의 냄새두 꽁꽁 기억해둬야 할가보다.”

이 소설은 얼핏 뚜렷한 가치판단은 유보하고있는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냄새에 대한 느낌의 차이와 변화된 냄새에 대한 이질감 등을 통하여 가치판단은 분명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서술자로 등장한 소년의 냄새에 대한 판단이 곧 작가의 가치판단이 되는셈이다. 상당히 의도된 서사적장치라 하지 않을수 없다. 그리고 이런 장치는 감정의 절제라는 소설의 전반적 서사전략과 잘 어울린다 하겠다.

이 작품에서 또 하나 주목되는 서사적장치는 집에 대한 상징성의 부여이다. “우리가 살고있는 집은 할아버지의 아버지가 손수 지으신거라고 한다. 집안에 기둥이 그대로 드러나있는데 매번 내 생일 때면 할머니가 그 기둥앞으로 나를 끌고가서 우리 희현이 얼마나 컸나 보자. 그러시면서 금을 하나씩 그어놓는다. 벌써 그 금이 세개나 그어져있다.” 이것이 집에 대한 첫번째 소개인데 이런 소개가 있은 다음에는 방안 구조와 울안 구조를 매우 자세히 그려보이고있다. 4대째 살며 내려온 그 낡은 집에 대한 독자의 특별한 관심을 기대한것이라 하겠다. 게다가 이런 묘사가 있기전에는 또 이 집이 위치한 “물학성”이라는 지명의 유래와 이 지역의 이상한 현상들에 대해 슬쩍 짚고넘어간바 있다. 그만큼 집에 대한 작가의 묘사가 중요함을 암시한것이다. 이 내용은 작품의 서두 부분에서 그려진다. 그리고 결구부분에 가서 그에 조응하여 다시 집에 대한 묘사가 반짝 등장한다. 소설의 가장 마지막 문단이다. “할머니도 고모도 희아누나도 점점 작아진다. 드디여 할아버지의 아버지가 지었다는 할머니의 집도 멀리 하나의 점으로 남겨진다…” 서술자인 희현이가 엄마를 따라 한국에 떠날 때의 상황이다. 이주민으로서 정체성의 확인이 될 수도 있지만 우리 민족이 겪는 위기의식이 가장 절실히 드러나는 장면이기도 하다. 4대째 살아오던 집을 그 제 4세가 떠나간다는것, 그것이 행일지 불행일지를 모르는 오늘의 현실에 대한 작가의 막연한 걱정 혹은 위기감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소년의 서술자적 시점, 인간의 체취를 통한 가치판단, 집의 상징적의미 등 이 작품에서 사용하고있는 서사전략은 아련한 추억에서 풍기는 정서와 맞물리면서 담백하면서 서정적인 소설의 구조를 이루고있다. 민족공동체의 위기라는 무거운 주제를 담백한 감각으로 다가오게 한다는것, 이것은 이 소설의 장점이자 매력의 포인트가 된다. 그러나 약점 혹은 문제점 또한 여기에서 비롯되는것 같다. 앞에서도 언급된바와 같이 소년의 시점이라는 소설적장치 자체가 심각한 문제를 담백화시키는 특성을 지니고있기때문에 또다른 전략적장치를 이용하여 문제의 심각성을 부각시켜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것은 큰 아쉬움이다.

상징의 미학과 담백화전략은 박초란소설의 서사적인 개성이자 완성도를 측정하는 척도이기도 하다. 비록 일부 생경한 상징구조나 서사의 지나친 담백화가 작품의 긴장감을 저하시키는 약점도 드러내고있으나 전체적으로 보면 소설의 완성도에 매우 큰 기여를 하고있다.

6. 마무리

주제의식에서 박초란의 소설은 초기작품의 성장의 아픔에 대한 탐미적인식을 거쳐 점차 시대적현실의 문제에 접근하다가 도시화시대 민족의 대이동과 이로 인한 가치의식의 변화 및 정체성의 혼란이라는 량대주제를 창작의 주요 방향으로 설정하면서 작품적으로 점차 성숙되여간다. “인간의 향기”나 “너구리를 조심해”, “날아라, 룡! 룡! 룡!” 등 대표적인 그의 단편들은 이런 주제발굴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 작가의 주제의식은 삶의 구경에 대한 끈질긴 탐색에 투입되고있는것 같다. 물질적인 부의 증가에 반비례한 정신적 부의 상실의 문제가 그것이다. 작가는 이런 삶의 가치에 대한 회의를 불교적세계관 혹은 명상의 측면에서 해석하고자 한다. “돌에게 물어보라, 그 침묵”에서처럼 그러한 모색은 일부 성공한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다수의 경우 이런 모색은 그 과정에 지나치게 초점이 집중되여 그러한 모색을 통해 얻어진 깨달음이나 삶의 지혜가 설교적으로 표현되는 페단이 있다. 깨달음을 재형상화하는 노력이 필요할것 같다. 그리고 지나치게 하나의 주제에 집착하다보면 사회와 삶을 보는 시각이 협소해질 우려도 있어 좀 더 삶의 현장에 깊이 투신하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한다. 서사적으로 박초란의 소설은 점차 완성도를 높여가고있는 과정에 있는것 같다. 상징구조의 처리도 그렇고 서사전략의 선택도 마찬가지이다. 작가의 분발을 바란다.

래원: 인민넷 (편집: 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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