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통신원 모집 통지]|시작페지 설정
최신고위층동향당건설인사임면부패척결국내경제조선족집거지중앙정책사회인물문화교육과학기획멀티미디어조선뉴스 한국뉴스국제뉴스종합보도 리론관점 스포츠 연예관광생활포토
·중경동물원, 갓 태여난 참대곰쌍둥이 처음 모습 드러내  ·호북 당양 한 기업 폭발사고로 21명 사망, 5명 부상  ·그리스 화물선과 충돌한 중국어선 침몰, 8명 실종  ·길림성 12개 성직속사업단위 사업일군 79명 공개 모집  ·2016년 길림성공무원시험 9월 5일 등록, 10월 22일 필…  ·중국과 몽골, 제9회 국방안전사무 협상대회 소집  ·외교부 대변인, 파키스탄 퀘타에서 발생한 테로습격사건과 관련해…  ·산동 연태서 "수중올림픽" 상연  ·북방, 곧 한차례 폭우날씨 맞이  ·아버지 심장 기증받은 로인 손잡고 결혼식장 입장한 녀성  ·국무원 대만 판공실, 량안민중는 법에 의해 전자통신 사기범죄를…  ·벨기에서 출생한 참대곰아기 동물원서 모습 드러내  ·멸종위기 아기동북표범 벨기에서 모습 드러내  ·외교부 대변인, 장명 부부장의 터키방문 거론  ·국방부 보도국, 일본 신임 방위대신의 언론과 관련하여 태도 표시  ·암수술 성공기념으로 산 복권 대박  ·폭염속의 얼음도시, 호랑이 물놀이로 피서  ·왕의: 항주정상회의 개도국 참가 최다의 G20정상회의가 될것이다  ·우리 나라 네티즌 처음으로 7억명 초과, 련속 9년 세계 제일  ·개막 초읽기 한달, G20정상회의 여러가지 준비사업 기본적으로…  ·중국남해넷 정식 오픈,일부 력사문헌과 법률문서 첫 공개  ·세계서 가장 깊은 온천수 수영장  ·“땅속으로 파고드는 집”…덕분에 관광객 북적  ·희귀 “시체꽃” 77년만에 개화  ·강한 충격에 끄떡없는 “슈퍼 인간”  ·악어 세마리와 동거하는 간큰 녀자  ·고릴라에게 복부 맞고 기절  ·중경시민들 수중에서 마작 놀며 더위 해소  ·할빈극지관: 바다사자에게 임신검사 진행  ·국방부 보도대변인, 중국에 대한 일본의 공공연한 비난 중단 촉구  ·국방부 보도대변인,일본의 2016년판 《방위백서》발표 관련 담…  ·장강홍수방지 단계성승리 이룩  ·전국 기업 파산 재조정 사건 정보망 공식 개통  ·하북성 지도간부 년도법률시험과 임직법률시험제도 추진  ·광서 창오현에서 리히터 규모 5.4의 지진 발생  ·우리나라, 행정허가표준화 추진  ·국가해양국, 해양재해 1급 응급예비안 가동  ·조국 휘황한 려정의 증인—중국인민해방군 륙해공 삼군의장대  ·남해 8월 1일 12시부터 휴어기 결속  ·길림 왕청 동북표범 가족 카메라에 재차 포착돼  ·400℃ 화염속에서 버틴 “불꽃남”  ·심양, 20만원 가치의 황금 속옷 등장  ·"80세 외모" 4살 소년의 시간  ·장초: “비사(飞鲨)”영웅 령혼이 하늘, 바다와 잇닿아있다  ·국방부 “싸드”에 대해 언급: 전략균형 수호 위해 필요한 조치…  ·동북호랑이 못가에서 더위를 식히다  ·당산지진 40주년: 페허속에서 고통 이겨내고 신생을  ·중국 관광객 4명, 미국서 차사고로 조난  ·2019년 북경 신공항 운영  ·대륙관광팀 23명 조난자 유해 귀환 
인민넷 조문판>>개인문집

정말 오래만의 성묘

2016년 07월 04일 14:50【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청명을 며칠 앞두고 회의가 있어 연길에 갔다. 겸사겸사다. 회의에 간김에 아버님 산소에도 가고 오래만에 고향에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도 가보고…

아버님의 산소에는 청명 사흘전에 가서 제사를 올렸다. 아직 아버님의 유골은 연길장의사(殯儀館)에 림시로 보관해둔 상황인데 청명날에는 선영에 갈 일도 있거니와 사촌동생의 말에 의하면 연길장의사에 제사 드리러 오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제사 올릴 자리를 찾기가 어렵다는것이였다. 그래서 회의기간중에 오전시간을 떼내여 미리 제사를 올린것이다.

회의가 끝나고 다음날, 그러니까 청명날 아침 일곱시에 동북아호텔옆에 있는 버스터미널에 나가서 고향 가는 버스를 타기로 사촌동생과 약속을 했는데 어찌하다보니 일곱시반에야 터미널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렇더라도 이건 터미널이 그야말로 인산인해다. 버스를 탔다간 점심전에 고향에 도착하기는 틀렸는걸 하고 걱정하는데 역시 나보다는 조금 젊은 사촌동생이 생각이 빨리 돈 모양이다. 택시를 타고 가잔다. 합승할 승객도 찾아놓았단다. 넷이 한차를 타면 일인당 20원씩이면 된다고 했다. 마다할리가 없었다.

택시가 모아산을 넘고 동성을 지나 산길에 들어서자 여기저기 산자락에 승용차와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것을 보며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이제 내 고향에도 자가용이 많이 늘었구나…그러다가 가끔 보이는 경농기들을 보며 다시 떠오른 생각은 역시 청명날이구나! 이거였다. 모두들 조상이나 부모님 산소에 성묘를 온것이다. 동승한 합승객에게 물어보았다. 청명, 추석이면 모두들 이렇게 차 가지고 산소에들 오겠지요? 그래. 요즘은 돈 좀 벌었다고 산소에도 차 끌고 온다. 동승객중 하나는 내 중학교때 친구의 형이여서 전부터 알고있는 사이였다. 그러나 그것만도 아니라는것을 나는 안다. 이들 차 끌고 산소에 온 사람들 다수는 고향을 떠나 연길이나 다른 도시에서 살다가 청명이 되니 먼길을 차 끌고 왔다는 사실!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다는 아니더라도 이들은 해마다 적어도 두번은 이렇게 산소에 찾아올것이다. 그런데 나는 거의 30년 가까이 할아버지 산소에 가보지 못했다. 대학교에 입학한후 이번이 처음이니까 이제 정확하게 28년이 된다. 고향에 있을 때는 청명과 추석이면 항상 할머니와 함께 할아버지 산소에 가서 제사를 올렸었다. 그때는 집단농사라 아버지와 어머니는 일을 나가야 했기때문에 년로하신 할머니와 형제중 그마나 나이가 든 내가 산소에 가곤했던것이다. 물론 내가 장남이여서 아버님께서 일부러 그렇게 하도록 했던것 같기도 하다.

덕신을 지나 개산툰에 들어서기까지 마을 근처 산자락마다 산소가 있는 곳이면 성묘군들이 보였다. 감개가 무량하다. 그럴수록 부끄럼은 더해간다.

회경, 자동, 제동을 지나 광소, 광종에 들어서면서 성묘객들의 모습은 더 많이 보인다. 차들도 마찬가지이다. 여기부터는 큰 마을들이여서 그렇다.

고향마을 뻐스정류장에서 늦게 성묘하러 가는 어른들을 만났다. 년세 드신분들은 거개가 낯이 익다. 그냥 반갑다. 한두마디씩 인사를 나누고 삽 하나 구해들고는 선영이 있는 노루골을 바라고 출발했다. 인젠 나이도 좀 들고 더구나 운동부족으로 산 하나 넘으면 될 길이, 옛날 학교 다닐 때는 하냥 즐겁기만 하던 길이 아득히 멀어보인다. 황소숨을 몰아쉬며 산등성이에 올라서서 보니 마을에는 집 한채 없다. 내가 대학교 들어가고나서 온 마을이 수전을 다루는 대대마을로 집단이주를 한것이다. 오래전에 안 일이지만 다시 보아도 마음이 허전하다. 내가 청소년기를 보낸 마을이 텅 비여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서글플수가 없다.

할아버지 산소에 도착해보니 생각보다는 봉분이 깔끔하다. 지난해 청명에 사촌동생이 한번 왔다갔다고 하는데 잡풀이 거의 없고 쥐구멍이나 소발자국도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라 생각하며 새흙 몇삽을 떠올리고는 가지고간 제수를 차려놓았다. 산신제를 지내고 다시 할아버지에게 술을 따라올리고나서 절을 하려니 갑자기 목이 메며 뭔가 울컥 치밀어오른다. 할아버지는 내가 세살때 돌아가셨다. 그래서 내 인상에 할아버지는 그냥 영정사진 정도일뿐 쌓인 정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왜 목이 메이는것일까? 삼남일녀 네 손자손녀들중 내가 유일하게 할아버지 생전에 태여났다는 리유에서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남동생 하나는 상해에 살고 또다른 남동생은 한국에 돈벌러 가고 녀동생은 아예 한국인과 결혼하여 서울에서 살고있다. 나까지 북경에서 살고있으니 손자들 모두 뿔뿔이 흐터져살고있는셈이다. 그렇지만 동생들은 모두가 할아버지 얼굴을 보지 못했으니 그렇다치고 나마저 이렇게 오랜 세월 할아버지 산소를 찾아뵙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없지 않았다. 작년에 아버님을 저세상에 보내서일까? 그것 또한 사실이다. 지난해 아버님이 숙환끝에 세상뜨고난후 저 북대 산등성이에 자리잡은 연길장의사에 아버님 유골을 보관시키고 나서며 문뜩 먼 옛날 아버님과 함께 할아버지 유골을 이장하던 일이 떠올랐었다. 할아버지는 60년대초 삼년재해시기 위암에 걸려 연변병원에서 수술을 했으나 효과를 보지 못하고 병원에서 그대로 돌아가셨단다. 운반차량 구하기가 어려운 당시로서는 시신을 고향에 운반할수가 없어서 병원근처 어느 야산에 매장했던 모양이다. 그랬던것을 삼년제가 되는 해에 이장을 한것이였다. 그때 대여섯살 된 나는 멋도 모르고 아버님과 함께 연길에 갔었다. 그러나 이장에 관련된 기억은 하나도 없고 그날 보슬비를 맞으며 연길동물원에 들어가 동물구경을 하던 일만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러나 어찌 되였든 그때 할아버지 유골을 이장하기 위해 아버지를 따라 연길에 갔었다는 사실은 나중에나마 알게 되였던것이다. 그때 아버님 마음도 지금 내 마음과 별로 차이가 없었으리라. 그것도 이제 막 불혹을 지나 지천명에 가까워진 나와는 달리 아버님은 그때 아직 20대후반의 젊은 나이였으니 오죽했으랴싶다. 그래서 나는 도대체 뭐가 진정한 효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되였다.

할아버지께 제를 올리고 다시 노루골 앞산을 되넘어와서 할머니 산소에 들렀다. 할머니는 당신보다 먼저 돌아가신 삼촌의 산소 근처에 모셨었다. 거기에는 할머니, 삼촌의 묘뿐만이 아니라 고향마을 아는 사람들의 묘가 많이 있었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 깔끔했고 성묘를 한 흔적도 력력했다. 할머님께는 더욱 죄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내가 3개월 기한으로 서울에 연수를 간 동안에 세상을 뜨셔서 장례를 치른후 썩 후에야 처음 산소에 가보았었고 그후 이번이 두번째였던것이다. 꼭 10년만이였다. 그래서 나는 이제 할머님을 할아버지와 합장을 해드리고 아버님도 내년에 삼년제를 지내고는 할아버지 가까이에 모셔야겠다고 생각했다.

유교에 대해서는 말도 많고 비판도 많이 해왔다. 그러나 적어도 유교의 한가지 사상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묵인하고있는것 같다. 효가 그것이다. 물론 효에 대한 인식은 제각각이다. 그러나 부모님 즐겁게 하는게 효라는 인식이 지배적인것 같다. 나도 그렇게 인식했고 그래서 부모님들을 즐겁게 해드리려고 딴에는 노력해왔다. 그러나 나만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 사회 전체가 대이동의 상태이므로 부모님 모시고 매일과 같이 즐겁게 해드리기는 어려운 일이다. 결국 겨우 명절때나 찾아뵙고 가끔 전화 드리는것이 고작이다. 그러니 부모님 생전에 잘해드리는것은 가장 기본적인 효이기는 하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아버님 저세상에 보내고나서 옛날 할아버지 유골을 이장하던 일, 할머니를 따라 청명과 추석이면 할아버지의 산소에 성묘를 가던 일이 새삼스럽게 떠오르는것은, 그리고 효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것은 왜일까?

이제야 우리 조상들이 예로부터 무엇때문에 없는 살림에 돈 팔고 품 팔며 조상의 제사를 모셔왔는지를 조금은 알것 같다. 부모님에 대한 효도는 조상신앙과도 관련되는 제사와 련결될 때 비로소 큰 효가 된다는 사실을 어슴푸레하게나마 깨달은것이다. 효는 결국 생명의 끈이기때문이다. 영생할수 없는 인생이 그나마 면면히 이어질수 있는것은 후대를 통한 생명의 연장때문인것이다.

삼촌의 산소에 사촌동생과 함께 제를 올리고나서 산을 내려왔다. 그리고 내친김에 어렷을적 단짝이였던 친구네집을 찾아 술잔을 나누었다. 나도 세곳에서 제사 올릴 때마다 한잔씩 마셨지만 친구는 벌써 혀꼽은 소리를 하고있었다. 산소에서 성묘 나온 동네사람들을 만나 한잔씩 걸치다보니 그렇게 됐다는것이다. 옛날에도 고향에서는 그랬었다. 명당자리라 하여 대체로 산소가 몇군데 옹기종기 모여있었고 그래서 산소에서 만나면 자연히 술 한잔씩 권하고 받아먹고 그래왔었던것이다.

친구집을 나서며 취기오른 눈으로 산기슭쪽을 쭉 돌아보았다. 아까 오전에 승용차와 성묘객이 보이던 산소들은 청명을 겪고나서 한결 정갈하고 아담해보였다. 그리고 다시 마을을 한바퀴 둘러보았다. 빈집들도 많고 그런 빈집들에는 한족인들이 꽤 많이 이사를 와서 산다는 말을 들었어도 마을은 정다워보였고 꽉 차있는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고향마을뿐만아니라 우리 조선족에게 아직도 희망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위기속에서도 생명의 끈―효를 버리지 않는한 공동체의 생명은 계속 이어질것이니까.

* 《도라지》에 게재한 글입니다.

래원: 인민넷 (편집: 임영화)
  [본문 프린트]  [편집에게 편지쓰기]  [E-mail추천]
주의사항:
1. 중화인민공화국 해당 법률, 법규를 준수하고 온라인 도덕을 존중하며 일체 자신의 행위로 야기된 직접적 혹은 간접적 법률책임을 안아야 한다.
2. 인민넷은 필명과 메모를 관리할 모든 권한을 소유한다.
3. 귀하가 인민넷 메모장에 발표한 언론에 대하여 인민넷은 사이트내에서 전재 또는 인용할 권리가 있다.
4. 인민넷의 관리에 대하여 이의가 있을 경우 메모장 관리자나 인민일보사 네트워크쎈터에 반영할수 있다.
메모 남기기:

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