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집의 개요에 따르면, 나카무라 고로가 1954년 8월 10일에 제출한 서면 자백서에 의하면 그는 1920년 일본 아이치현에서 태어나 1942년 중국 침략 전쟁에 참가했으며 1945년 9월에 포로됐다.
중요 죄행은 다음과 같다:
1942년 3월, 산동(山東)성 익도(益都)현에서 모 소위가 "가스 효력 실험 교육을 위해 '98식 작은 갑통(甲筒)' 2개를 태워", "항일군 포로 1명(22세, 남성)을 방안에 밀어 넣은후 약 5분 뒤 그가 인사불성 상태에 빠지게 했다. 이렇게 중국 인민을 효력 교육에 사용했다", 나카무라 고로는 "동물로 실험하는듯 했다"고 자백했다.
1942년 3월, 익도현에서 45명 신병들이 "총검술 훈련을 목적으로 대대 본부에 구류중이던 중국인민(35세, 남성) 1명을", "번갈아가며 찔렀다". "나는……이 명령을 적극적으로 집행했으며 30년대식 총검으로 중국 인민을 찔러죽였다. 찌른 자리가 벌집같았다."
1943년 4월, 산동성 유(濰)현 모 촌에서 모 중위가 "한집 한집 조사해 촌민이 보이면 바로 죽이라"고 명했다. "나는……부하 30명을 지휘해 이들이……중국 인민 6명(45세~50세 좌우의 남성)을 미친듯이 죽이게 했다. 또 병사들에게 명해 전날 폭격에 다치거나 불에 덴 채 방안에 숨어있던 로인 2명(55세 좌우의 남성) 및 40세 좌우의 녀성 1명을 총검으로 위협해 불타고 있는 집에 들어가 타죽게 했다".
1943년 4월, 유현에서 "항일 무장 인원 포로 5명을 사살했다", 그중 1명은 나카무라 고로가 1명의 부하를 지휘해 "보총으로 죽이게 했다".
1943년 9월, 하북(河北)성 웅(雄)현에서 한 할머니 집에 갱도가 있는것을 발견하고 "할머니를 갱도 어구에 끌고가 갱도에 밀어넣은 뒤……갱도에 벼짚을 쑤셔넣고 내가 직접 성냥으로 불을 지펴 할머니를 태워 죽였다".
1943년 7월, 하북 고안(固安)현에서 "중국인민 녀성(18세) 1명을 총 6차례(위안부) 강간했다".
1943년 11월, 천진(天津)시에서 "권총과 군도로 중국 녀성 1명, 18살(위안부)을 협박, 강간했다".
1944년 3월, 대성(大城)현에서 "2명의 중국인민을 체포해", "실전 찌르기 훈련"을 진행했다. 50명 신병에게 명해 "사람마다 한번씩 찌르게 했으며 벌집처럼 많은 총검자국을 낸뒤 찔러 죽였다".
1943년 10월부터 1944년 10월까지 대성현에서 "한 조선녀성(17세)을 20여 차례(위안부) 강간했다".
1945년 3월 부터 5월 까지 하북성 탁(涿)현에서 전임 중대장이 "조직한 '위안소'의 죄행을 답습, 병사들을 조직해 중국녀성(18세~20세) 3명을 륜간했다".
[번역/신화망 한국어판]
(편집: 임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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