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선생 탄생 100주년 특별련재—《해란강아, 말하라!》(18)
2016년 12월 12일 16:17【글자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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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각을 하자 그는 부쩍 마음이 조급해 지여、언제까지나 그 모양으로 더듬더듬 더듬어 내려 갈 수 만은 없게 되였다。그는 누가 혹시 모올래 자기 보다 먼저「귀순」을 내려 가서 제 앞에 떨어질 호박을 가로 채지나 않을까 의심이 난 것이였다。
방에 들어 가 편한 잠을 자는 일병들을 대신하여 밖에서 보초를 서고 있던、박승화의 졸도들이 꽥 소리 치여 수하하였다。
「거、어떤 눔이야!」
그들은 첫번째「귀순」자의 발 밑에서 돌이 구을어 나는 소리를 들은 것이였다。
그리고 그들이「누구야?」해도 좋을 것을 구태여「어떤 눔이야!」하고 악을 쓴 것은、편한 잠을 자는 상전들에 대한 일종 불만의 표시였다。그리고 동시에 또 그것은 내뿜을 데 없는 불평의 폭발이기도 하였다。
「예、예、나요、나……」놀란、떨리는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대답하였다。
「내가 누구야? 뭐 말라 죽은 거야!」
「저、저、귀순허려구 내려 왔습니다。」
「귀순?」
「예、귀순……」
「검、손을 번쩍 쳐들구 그 자리 가만 서 있어! 움직거레만 봐라、당장 배창실 꿰뜨려 놓을테니!」그리고는 혼잣 말 처럼 중얼중얼、「이런 젠장헐、캄캄해서 뭐가 뭔지 봬야지?-자네 들어 가 일본 아이들 헌테 덴찌(수전등)를 빌려 오게!-헹、개새끼들、그깟 걸 누가 떼먹나 어쩌나、파수를 봐 주는데두 좀 빌려 주잖구!」
자다 말고 박승화가 눈을 부비며 뛰여 나왔다。
「뭐야、뭐야? 무슨 일이야?」
「산 꼭대기서 어떤 눔이 귀순을 내려 왔다는데 보이질 않아서 그립니다。」
「귀순? 어디?」
박승화는 수전등으로 엉거주춤하게 손을 쳐들고 서 있는 류인호 장인의 잔등을 비추었다。그리고 명령하였다。
「손은 든채루 이리 돌아 서!」그리고는 그것이 누구인가를 알아 보고는 한결 부드럽게、「아、령감님이요? 난 또 누구라구……좋습니다。손을 내리시우。」
그제서야 총을 든 일병 둘이 집안에서 뛰여 나왔다。박승화에게 물었다。
「무슨 일?」
「아니、별 일 없습니다。로인이 한 분 귀순해 내려 왔습니다。-어서 들어가들 주무십시요。이건 제가 처리헐테니까요……」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 가서 로인에게 박승화는 권면하였다。
「령감님、혼저만 내려 오시문 뭘 헙니까? 다 가치 내려 와 다 가치 잘 살문 더 좋잖습니까? 허니 이 라팔(여기서 그는 메가폰을 들어 보이며)을 가지구 밖에 나가서 산 꼭대기다 대구 말씀을 허시우、다들 내려 오라구、조금두 해치잖으니 마음 놓구 내려들 오라구……어떻습니까、한 번 해 보시겠습니까? 그렇게만 허문 제가 일본 대장헌테 잘 말을 해서 령감님、상을 타시게 해 드리지요。」
상을 준다는 바람에 기운을 얻은 류인호 장인이 선뜻 응낙하였다。
「그렇겁시다그레。거、뭐 어려울 것 있소?」
메가폰을 서툴기 짝이 없게 입에 대고 제 일착을 한「귀순」자가、산 위읫 사람들에게 금시 박승화한테서 배운 말을 고대로 외치였다。
「여보오、듣소오! 아무치두 않으니 다들 내려 오우우! 거、빨갱이들 헌테 속아서 공연헌 고생들 허지 말구 어서들 내려 오우우! 쿨룩 쿨룩、쿨룩!……」
「그리구 우리 집 늙은이、거기 혼자 남아서 어쩔 작정이오? 어서 성남 에미랑、아이들이랑 다 데리구 내려 오우! 지금들 내려 오잖으문 나중에 재미 없는 꼴을 보게 된다니……어서 날 믿구 다들 내려 오우우! 박 툰장이 보증서를 썼소오! 아、아、아웨이!」
성남 어미란 류 서방 댁을 가리키는 말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