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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아래 첫동네,하얀 넋 살아숨쉬는 100년 시골마을

2014년 09월 24일 11:19【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우리 민족의 성산인 장백산 원시림 첩첩산중에 "하늘아래 첫동네"라고 불리는 조선족마을이 있어 한번 꼭 찾아보고 싶었다. 개척력사가 근 100년된 마을임에도 지금까지 순수 조선족들만 모여 산다고 하니 백의겨레의 하얀 넋이 살아숨쉬는 시골마을인것 같아서 더더욱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고장이였다.

바로 안도현 이도백하진 내두산촌, 장백산정상에서 마을을 굽어보면 녀인의 젖가슴 같은 산봉우리 두개가 솟아있어 내두산으로 이름지었다는 지명설이다.

9월 20일, 지인의 안내로 내두산촌을 방문할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 내두산으로 가는 교통편은 연길에서 4시간 넘게 걸리는 꽤 긴 코스였지만 지금은 아스팔트길이 마을까지 통해있어 큰 불편을 못 느꼈다. 더우기 가는 길 내내 차창밖으로 바라보이는 아름다운 단풍계절이 사색의 즐거움을 불러일으켜 긴긴 려정도 언제 달려왔나싶다.

연변의 가을은 워낙 아름다운것이지만 특히 장백산지역의 원시림과 함께 하는 가을풍경은 말그대로 아름다운 수채화 같다. 길가의 코스모스가 한잎두잎 떨어지고 한물 갈즈음 깊어진 가을을 알리는 들국화와 억새풀이 소슬한 가을바람에 아릿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산자락을 조용히 물들이기 시작한 울긋불긋한 단풍에 감탄이 저절로 터져나온다.

★ 조선 갑산지역 개척민이 개척한 내두산 100호동네

마을동구밖에서 마중나온 내두산촌의 전호산촌주임과 김종국로인협회 회장님이 반갑게 기자를 맞아주었다.

김종국회장님에 따르면 내두산촌은 1920년대 초기부터 조선 함경북도 갑산지역사람들이 살곳을 찾아 이곳 원시림으로 이주하기 시작, 이 산골 저 골짜기에 숨어들어 황무지를 개간하고 농사를 지었다. 그러던것이 첩첩산중에 항일유격대가 근거지를 개척하면서 이에 불안을 느낀 일본침략자들이 1936년 유격대 소탕목적으로 화룡현에서 100여명 규모의 자위단을 조직해 내두산촌에 주둔시키고 부근 산속에 흩어져사는 농가들을 모두 내두산집단부락으로 집중시켰다. 그때로부터 내두산촌은 점차 100호가 넘는 큰 부락으로 되였다.

"내두산촌이 가장 흥성했던 때는 지난세기 60년대초기부터 70년대말이였습니다. 100세대가 넘는 마을에 소학교, 중학교는 물론 농중까지 있어 제법 흥성했습니다." 전호산촌주임의 말이다.

장백산자락의 깊은 심산인지라 심심찮게 노루며 꿩, 사슴, 메돼지 같은 야생동물 수렵도 잘됐고 땅이 비옥한 곳이라 베개통 같이 굵은 감자농사와 보리농사도 잘되는 고장이였다.

그러나 해외로무와 도시진출바람은 이곳에도 어김없이 불어와 사람들이 하나둘 고향을 떠나cㅏ버렸다. 2001년도에 내두산촌은 학교가 페교되였고 현재는 마을에 주민들이 50세대도 채 안되게 남아있다. 마을을 지키고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60세이상 로인들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촌민들이 떠나가고 마을은 비워졌지만 내두산촌에서는 지금까지 타민족 이사호는 단 한사람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선조들이 개척한 소중한 마을과 땅을 열심히 지키고 가꿔나가려는 타산에서였다.

★ 농마국수와 감자찰떡 등 토속음식이 유명한 고장

내두산촌은 자고로부터 감자농사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에서 나는 감자로 만든 농마국수와 감자찰떡은 그 맛이 차지고 구수해 옛날부터 동네방네 소문 높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기자가 취재 갔던 날 내두산촌에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왔다. 한국 KBS방송국의 인기프로그램인 "한국인의 밥상"제작팀이 찾아와 내두산촌의 그 유명한 농마국수와 감자찰떡을 비롯한 토속음식들을 렌즈에 담은것이다.

프로그램 사회자 최불암선생은 농마국수와 감자찰떡을 번갈아 맛보고는 오래된 고향의 맛과 우리 겨레의 사무치는 향수가 느껴진다면서 감개무량해했다.

전호산촌주임에 따르면 내두산촌은 장백산아래 첫동네에 자리잡고있는 유일한 조선족마을이고 또 조선족의 민족풍습과 민속전통이 잘 보존되여있는 곳이여서 장백산유람길에 이곳을 들리는 해내외 관광객들의 발길이 자주 이어지고있다.

로인협회 김종국회장님에 따르면 내두산촌에서는 지금까지도 중국조선족전통장례문화를 지켜가고있는데 촌에서 상여회를 운영하면서 마을에 상사가 났을 때는 상여로 장례를 치른다. 내두산사람들이 지금껏 상여장례를 고집하는것은 조선족장례문화에 담긴 효와 례에 대해 매우 중시하기때문이다. 내두산촌에서는 중국조선족 무형문화유산인 상여장례문화를 적극적으로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일환으로 향후 상여장례문화를 정기적인 표현문화로 승화시키면서 내두산촌을 연변의 유일한 중국조선족전통장례문화촌으로 만들어나갈 타산이다.

내두산촌은 최근년간 전국특색농촌건설에 힘입어 마을환경이 큰 변화를 가져왔으며 관광객을 상대로 한 촌로인들의 전문공연무대도 마련됐다. 큰 규모는 못되지만 관광객들에게 주숙과 식사를 제공할수 있는 농가식봉사시설도 마련됐다.

최근 내두산촌은 국가민족사무위원회가 전국적으로 첫진으로 공개한 중국소수민족특색마을명단에 이름을 올리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 내두산촌, 력사문화적인 발굴에 주력

"올해부터 우리는 내두산촌의 력사문화적인 발굴을 적극 진행하고있습니다." 전호산촌주임의 소개이다.

전촌주임에 따르면 일제시기 일본군이 마을에 집단부락을 설치하면서 마을 주변에 아름드리 나무를 벌목하여 목책을 둘렀는데 목책의 높이는 3메터에 달했고 직경은 50cm에 달했다. 지난세기 70년대초까지만해도 이 목책은 1메터 높이를 보존하고있었지만 당시 촌민들이 목책을 땔나무로 파서 때다보니 많이 파괴되였다. 그러나 지금도 마을 여러곳에 목책흔적이 적잖게 남아있는데 일부를 복구해 일제침략의 죄증을 공개함과 동시에 살아있는 력사교과서로 마을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제공할 예정이다.

내두산촌에서는 장백산밀영에서 활동하던 항일유격대의 홍색관광코스 개발도 추진중에 있다. 1936년~1937년 사이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 제6사가 내두산에 진주하여 항일근거지를 개척했는데 이 시기 동북항일련군의 명장 왕덕태도 내두산에서 활동했으며 현재 항일유적비가 세워져있다.

장백산아래 첫동네인 내두산촌은 원시림과 조선족촌이라는 독특한 인문경관으로 여러번 영화촬영지로 선정되였는데 조선예술영화촬영소에서 1991년에 제작한 예술영화 "하얀 꽃"중의 일부 장면은 내두산촌에서 촬영되였고 장춘영화촬영소에서 제작한 "장백의 아들"도 이곳에서 촬영되였다.

내두산촌 입구에는 대면적의 무성한 억새밭이 있어 가을이면 보기드문 아름다운 억새풀풍경을 연출하고있어 발길을 사로잡는다. 《한국인의 밥상》제작팀도 이날 내두산촌 동구밖에서 외경촬영을 하면서 하얗게 덮인 억새밭의 감탄스런 자연풍경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 마을이 잘살면 떠났던 젊은이들도 돌아올것

태고연한 장백산 원시림속에 자리잡은 내두산촌은 촌민들의 적극적인 마을홍보와 함께 이제 서서히 잠에서 깨여나 세상을 향해 기지개를 켜고있다.

현재 전호산촌주임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마을에 젊은이들이 없는것이다. 마을에 50대이하 젊은 세대가 10세대만 있어도 좋을텐데… 하고 전호산촌주임은 안타까운 현실을 고백했다.

마을에 관광객들이 찾아들고 할일이 많아지면 적극적으로 뛰여다니면서 일할수 있는 젊은 세대들이 많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안타깝다는것이다.

그러나 전호산촌주임은 마을이 날이 갈수록 널리 알려지고 또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안내와 숙박, 음식 등 다양한 여건과 일거리들이 만들어지면 마을을 떠났던 젊은이들이 돌아오는것은 시간문제일것이라고 자신했다.

마을주변에 우뚝 서있는 만경대에 올라보면 백의민족의 하얀 넋인듯 장백산폭포가 눈앞에 펼쳐지는 내두산촌은 천혜의 장백산관광지의 독특한 지리적위치와 우세로 세상사람들에게 100년 조선족마을의 하얀 넋을 펼쳐보이고싶어한다.

"30여년전 연변주당위 조남기서기께서 내두산촌을 시찰하실 때 우리를 보고 '장백산아래 첫동네 내두산촌은 여러분이 개척하고 지켜왔습니다. 앞으로도 영원히 지켜나가기 바랍니다'라고 지시했수다.우리는 그 지시를 지금도 지켜나가고있으며 이후에도 영원히 지켜나갈것입니다." 로인협회 김종국회장의 의미심장한 말이였다.

"민족의 전통과 풍속을 잘 지켜나감과 동시에 장백산관광구역의 <조선족 첫동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내두산촌을 해내외 관광객들이 즐겨찾는 특색민속촌으로 가꿔나가면서 천세만세 살아가는 행복한 보금자리를 만들어 나갈것입니다."

전호산촌주임을 비롯한 내두산촌 전체 조선족 촌민들의 한결같은 바람이였다.

래원: 길림신문 (편집: 김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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